2월 22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 안국동의 느티나무 카페에서는 새만금 관련 기자회견이 있다고 해서 참석을 요구받고 시간에 맞춰 나갔다. 며칠 전 환경부의 '새만금 하구역 자연생태계 조사 보고서'가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 의해 묵살·은폐됐다는 사실이 '새만금 화해와 상생을 위한 국민회의'(이하 새만금 국민회의)에 의해 밝혀져 그에 대해 합당한 조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었다.
***보고서 묵살·은폐 행위 수수방관, 감사원·국회의 중대한 직무유기**
대통령 산하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서 일어난 일이니 그 두 기관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를 실시하도록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또한 행정부의 두 기관의 잘못을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밝혀주도록 여야 각 정당들에게 요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지하 시인, 문규현 신부를 비롯해서 새만금 갯벌 문제를 비롯한 환경 생태 문제에 관심을 보여 온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환경부의 보고서 묵살·은폐 사실뿐 아니라 해양수산부 산하 해양연구원이 새만금 물막이가 완공될 경우 얼마나 해양환경이 피해를 입는가를 장·단기적으로 경고한 '새만금 해양환경보전대책을 위한 조사연구 보고서'도 역시 묵살·은폐됐다는 사실이 함께 공개됐다.
아울러 기자회견이 끝나면 그 두 가지 요구사항을 담은 공식문서를 대통령과 여야 각 정당의 원내대표들에게 전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공개했다. 그리고 새만금 국민회의 실무팀은 같은 날 오후 이를 해당기관에 공문서로 전달했다.
그리고 신문·방송과 인터넷 매체의 보도를 기다렸다. 여야 정당들의 반응도 살펴봤다. 언론은 환경부와 해양수산부라는 새만금 관련 두 부처의 보고서가 은폐·묵살되어서 감사원의 감사와 국회의 국정조사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정당들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이미 물막이가 거의 완성단계 이르렀고 국책사업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임박했으므로 새만금 사업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시비를 따지는 것은 너무 늦었다는 태도, 둘째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이 두 행정부처의 보고서를 묵살·은폐한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새만금 물막이 국책사업은 빠른 시일 안에 완료되어야 하기 때문에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로 나눠볼 수 있겠다.
새만금 물막이 문제에 대해 찬반 어느 쪽의 입장에 서든지 간에, 행정부 안의 최고부서인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이 쟁점이 되어 있는 국책사업의 심각한 문제점을 지적한 보고서를 묵살·은폐한 행위를 따지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감사원이건 국회건 중대한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이미 상당한 시일과 예산이 투여되어 진행 중인 국책사업에 대해 그 사업의 주요 주체들인 환경부와 해양수산부가 문제제기를 했다면 당연히 재검토에 들어갔어야 옳았다.
***대법원에 맡겨진 새만금 판결의 무거운 짐, 우리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
앞으로 담수호 수질 오염과 용수 사용 불능, 해양 생태계에 대한 심각한 악영향 등의 후유증이 나타날 경우, 보고서를 묵살·은폐한 이 정부뿐 아니라 여야 정당들과 언론마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제 어쩔 수 없이 가장 무거운 짐이 대법원에게 지워졌다. 새만금 갯벌을 죽이고 살리는 판단이 대법원에 맡겨질 일은 아니었다.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얄팍한 포퓰리즘 정략에 따라 만들어놓은, 시대역행적이고 어리석은 '새만금 죽이기'가 인간 사회의 이익 다툼을 주로 다뤄야 하는 대법원에 맡겨지는 것은 애당초 우리 시대와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그래도 우리 사회의 최고의 법 이성을 대표하는 대법관들의 지성과 양식을 믿어보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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