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들은 특공대의 선내 진입을 막기 위해 인간 방패를 만들었다. 그러나 특공대의 군사작전은 단호했다. 이내 고무탄과 전기충격기를 동원됐다. 일부 민간인들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기도 했다. 제압된 민간인들은 포로취급을 당했다. 일부는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
이 선박의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유함대'라고 명명된 총 6척의 구호선단 중 한 척에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 심각한 저항에 부딪치자 승선하려던 특공대는 실탄을 발사했다. 이 과정에서 9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했다.
▲ 이스라엘 특공대원들이 구호선에 올라 총을 겨누고 있다. ⓒ자유가자운동 캡쳐 |
6척의 함대에 탄 사람들은 '프리 가자(Free Gaza) 운동'에 참여하는 민간인들이었다. 터키와 유럽인들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모인 운동가 700여명이 6척의 화물선에 나눠 타고 있었다.
친팔레스타인 국제구호단체인 이들은 사이프러스를 출발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향하고 있었다. 배에는 구호품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이들의 선박에 올라 폭력을 행사한 주체는 이스라엘 해군 소속 특공대였다.
'지구상 가장 거대한 감옥' 운영하는 이스라엘
2008년에 발족한 프리 가자 운동의 주요 활동은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전달하는 것이다. 세계적 석학인 미국의 노암 촘스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북아일랜드의 메어리드 코리건 맥과이어 등도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12월에도 이스라엘 해군함정은 가자 항구로 향하던 구호선을 들이받아 입항을 저지했다. 2009년 6월에도 이스라엘 해군의 발포 위협으로 항해를 포기해야 했다. 이번의 경우 6척이라는 대규모 선단이 파견되자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 더욱 강경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프리 가자 운동을 포함한 여러 국제 인권단체들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Gaza Strip)에 큰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이 지역을 '지구상 가장 거대한 감옥'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서부 지중해변을 따라 긴 띠 모양을 하고 있는 가자지구는 면적 360㎢의 작은 지역이다. 이곳에 약 150만 명의 난민들이 비좁게 살고 있는 곳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국가를 선포하면서 이집트의 관할통치를 받다가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으로 이스라엘에 점령됐다.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들어서면서 팔레스타인지역으로 편입됐지만 이스라엘은 2005년이 돼서야 완전히 철수했다.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2007년 6월 무장 정파 하마스가 온건파인 파타(Fatah)를 몰아내고 가자지구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이에 대해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가자의 모든 육지와 해상 출입로를 봉쇄하고 하마스 고사(枯死)작전에 들어갔다.
2008년 12월에는 대규모 군사작전을 감행해 팔레스타인인 1400여명이 죽고 건물이 초토화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이러니컬한 점은 하마스는 이스라엘 정보부가 1987년 그 창설을 도왔던 단체다. 집권세력인 파타에 맞서도록 새로운 과격단체의 설립에 이스라엘이 개입했던 것이다.
가자 지구의 생필품 재앙
▲ 한국의 우물처럼 생긴 비밀 땅굴의 입구. 이스라엘은 땅굴이 발견되는 족족 파괴하고 있다. ⓒ프레시안 자료사진(김재명) |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군사시설을 지을 수 있다는 이유로 전후 재건 물자의 조달조차 차단하고 있다. 가자의 주민들은 이집트 쪽으로 몰래 뚫은 땅굴을 이용해 건축자재나 생필품을 밀반입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무기가 반입될 수 있다는 이유로 땅굴을 발견하는 족족 파괴하고 있다.
이런 지역에 대한 국제사회의 원조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구호품의 반입조차 막고 있다. 특히 국제단체나 운동가들이 가자지구에 입국해 활동하는 것에는 더욱 민감하다. 자신들의 봉쇄조치가 인도적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이번과 같이 대규모 선단과 인력이 한 번에 이동하는 것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지중해 상에서의 군사작전은 '과도했다'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지배적 의견이다. 가장 많은 자국인 인명피해를 입은 터키의 경우 이번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터키뿐만 아니라 대다수 유럽국가와 중동국가는 이스라엘의 민간인 선박 공격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번 작전에 국제사회는 불법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에 선단이 공격당한 곳은 이스라엘 해안에서 130km 이상 떨어진 공해상이다. 이스라엘 영해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공해상에서 항해하는 선박에 대해 군사작전을 펼치는 것은 분명한 국제법 위반이다.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4개 국가도 이번 사태에 대한 비난성명을 냈다.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에도 눈 감은 나라는?
하지만 이에 동참하지 않은 국가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신중한 조사'를 요구하는 선에서 결국 이스라엘의 행동을 묵인하는 인상을 풍겼다. 패권국가 미국의 이런 '지지'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은 터키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지도 않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요구한 국제사회의 조사도 거부하고 있다. 유대인인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조차 독립적인 국제조사를 압박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여전이 '자체조사'하겠다며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중동을 연구하는 어느 학자에게 물어봐도 이스라엘의 이 같은 거만하고 독자적인 행보의 배후에는 미국의 일방적인 지지가 있다고 답한다. 점령지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 그리고 시리아의 골란고원에서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대해 이스라엘이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과 분석가들은 미국 내 유대인 로비세력의 파워로 이런 상황을 설명한다. 이스라엘이 그동안 행한 군사적 도발, 비인권적 정책, 주변국과의 마찰 등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스라엘을 감싸는 이유에 미국 내 언론, 학계, 재계는 물론 정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는 유대인 로비세력의 힘은 대단할 정도다.
▲ 미국의 친이스라엘 로비단체인 AIPAC(미국 이스라엘 공공 문제 위원회) 모임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AIPAC는 미국 정계, 사회를 막론하고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EPA=연합뉴스 |
중동이 화약고이길 바라는 사람들
그러나 로비세력의 활동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맹목적' 동맹관계를 모두 설명하지는 않는다. 미국 측에서도 현재의 긴장상황을 원하는 세력이 있다. 바로 군수 관련 로비세력 그리고 이들 배후에 있는 기업인과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중동이 '화약고'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엄청난 오일머니로 세계 최대 '무기 구매력'을 가지고 있는 중동은 이들에게 최대 시장이다. 긴장, 불안, 갈등, 그리고 궁극적으로 전쟁이 이들에게는 '군수 수요'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다.
현재 미국 무기의 최대 수입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다. 미국 군수 관련 세력에게는 최고의 고객이 있는 중동에 평화가 정착돼서는 안 된다. 중동에 분쟁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 그리고 이·팔 분쟁이 60년 넘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팔 분쟁은 중동의 무기 수요를 유지시켜주는 '기본적 긴장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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