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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일문일답〉 "노성일, 내게 서운한 게 있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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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황우석 일문일답〉 "노성일, 내게 서운한 게 있었을지도…"

"2005년 연구에 사용한 난자 550개 넘지 않아"

-논문의 DNA 지문검사 시 체세포 조작 지시는 누가 내렸나? 2061개의 난자가 사용됐다는데 논문 발표 시 난자 사용 개수를 왜 숨겼나?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구체적인 사안까지 지시하는 성격이 되지 못한다. 큰 틀만 정해주고 거기서 나오는 최종 데이터만을 받아보는, 어쩌면 과학자로서는 지적을 받아야 될 결점이 있는 성격인지도 모른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지고 DNA를 검사하라고 할 만큼 내가 모든 사안에 대해 꼼꼼히 챙기지 못했다. 대개 누가 그 역할을 맡으면 보고를 받고서야 알곤 했다.

2000여 개의 난자가 내게 공급됐다는 결과도 보고서를 통해서야 알았다. 이 또한 내가 제공받은 난자 개수를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2002년부터 2004년 초반까지 사용된 난자의 기록은 유영준 전 연구원이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파악하기 더욱 어려웠다. 다만 이 과정에서 논문에 나와 있는 난자 사용개수와 다른 부분은 내가 논문총괄책임자로서 책임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실험을 할 때 실제로 사용된 난자의 수는 과학용어를 빌자면 스탠더드(standard)를 잡기 위해, 즉 어느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많다. 난자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령 35개의 난자를 얻었다고 하면 이것들이 다 삶은 계란처럼 딱딱해서 단 한 부분의 세포질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가져온 난자를 다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2000여 개의 난자를 가져온 것이 사실일지 몰라도 논문에 사용된 난자는 논문에 밝혀진 난자 사용개수의 3배가 넘지는 않을 것이다."

(김수 연구원) "논문에 나온 난자 사용개수는 속인 게 아니다. 논문에는 그 실험에 사용된 의미 있는 데이터들을 넣는다. 그 데이터만 가지고 총계 처리를 한다. 2005년 논문에서 185개의 난자를 사용한 것이 맞다. 그리고 동물의 것이 아닌 사람의 난자는 난자 제공자에 따라 상태가 각각 다르므로 185개가 사용된 것이 맞다."

-미즈메디병원이 줄기세포를 바꿔치기 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황우석) "나도 왜 (미즈메디 병원이) 이런 행위를 했으며, 이런 결과를 초래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통탄할 일이다. 차라리 배양이 안 됐다고 그냥 이야기할 것이지. 지금에 와서 대한민국을 수치로 몰아넣고 전세계에 파문을 부를 행위를 왜 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내가 혼자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미즈메디 병원이) 왜 그랬을까 갖은 가설을 다 그려봤는데, 미즈메디 사람들은 수정란 줄기세포를 배양해본 분명한 경험이 있기에 이 복제 배반포에서 유도를 하지 못한다는 데 대해 자존심의 문제가 있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것이 모두 사실이었다면… 김선종 연구원은 원래 내게 논문의 제2저자 자리를 요구했다. 물론 노 이사장은 내가 2005년 논문에서 교신저자를 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새튼 박사의 눈문 기여도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 분께 (교신저자 자리를) 드린다고 했더니, 노 이사장이 제2저자 자리를 본인에게 달라고 했다. 저희는 김선종 연구원에게 이미 제2저자 자리를 약속했기 때문에 난색을 표했던 바 있다. 노 이사장이 메즈메디 병원의 미래에 관련해 (본인이) 제2저자 자리를 맡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며 김선종 연구원을 설득해보겠다고 했다. 다음날 노 이사장은 김선종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연구원은 이 내용을 듣고 씁쓸해하며 "할 수 없죠"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다른 연구원들에게도 섭섭한 씁쓸한 마음을 이야기해 왔다. 생각해 보라. 이 논문이 진실에 근거한 것이었다면 이는 그 분의 일생의 보증수표가 될 만한 세기적인 업적이 되었을 텐데. 그 분은 어느 사립대학을 졸업하신 분으로 사립병원 연구실에 있으면서 파트타임으로 박사학위를 하신 분이다. 그런 분이 논문의 제2저자가 되었다면 논문의 가치는 상상해볼 만 했을 것이다.

일정한 시간이 흘러도 배반포 배양 기술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이 배반포 배양 담당자를 다른 사람으로 바꿨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차병원, 마리아 산부인과 등에서 이 분야에 탁월한 업적을 가지고 있다. 외국에서조차 이 부분의 배양을 담당하겠다는 많은 요청이 있었다. 우리가 만든 복제 배반포는 2004년 논문이 나올 때까지 모두 30개로 기억된다. 또 2005년 논문 전에는 71개를 만들었다. 총 101개가 만들어졌다. 똑같은 방식을 이용해 미니무균돼지도 비슷한 비율로 만들었다. 따라서 이를 바꿔치기, 폐기, 또는 훼손을 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3~4개의 맞춤형 줄기세포는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통탄하는 심정이다"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1월 9일 생명윤리법이 발효된 날 더 많은 대가를 요구했다는데 사실인가?

"나는 여전히 노 이사장을 존경한다. 그분은 나의 인격 등 모든 것에 대해 폄하를 했지만, 나는 그분에 대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가득하다. 그분은 그런 적이 없다.

다만 이 자리에서 밝혀두고 싶은 것은 저와 문신용 교수와의 불화설, 노성일 이사장과의 불화설이 제가 일방적으로 어떻게 해서 그런 것으로 비춰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렇게 모진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2004년 말 노 이사장이 '판교 프로젝트'에 대해 내게 몇 번에 걸쳐 설명하신 적이 있다. (노 이사장은) 이 '판교 프로젝트'는 잘 되면 대한민국의 의료산업이 세계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좋은 계획이라고 내게 설명했다. 그리고 그 계획에 대해 경기도 행정을 맡은 고위 인사에게 설명을 하고 관련 부지를 확보하고자 하는데 그 자리에 내가 동행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강요는 아니고 협조해주면 분위기가 좋겠다는 부탁이었다. 이 때 나는 노 이사장의 우정과 감사에 다 협조 드릴 수는 있으나 그것만큼은 들어드릴 수 없다고 했다. 나 자신이 철칙으로 삼고 있는 것은 내가 내 이름을 빌어서, 내 연구결과를 이용해 어떤 개인적 영업 이득도 취할 생각이 없으며 그런 곳에 동원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이것이 (노 이사장에게) 서운한 계기가 됐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2005년 7월경 노 이사장이 '나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이런 체세포 줄기세포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만든 사람으로 영광을 누리고 있으니 자기가 두 번째 영광을 가지면 안 되겠냐'고 요청하기에 연세대 기관윤리심사위원회(IRB)를 거친 다음 약 50여 개의 난자를 내 쪽에 보내 여기서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어달라고 한 바 있다."

-바꿔치기 여부는 검찰 수사 결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두 논문이 조작됐는지?

"논문 조작의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2004년 논문은 흠을 잡는다면… 2004년에 만든 줄기세포로 테라토마까지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 테라토마 사진이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누가 내게 테라토마 블록(block)을, 미즈메디로부터 건네받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서울대 병원으로 넘겨 사진을 찍게 한 바 있다. 만약 테라토마 블록이 실제 사진과 달라 조작이라고 하면 논문이 조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외에는… 이제 와서 '2004년 줄기세포의 실체가 없다'라고 하기에 조작인 것이지, 이 사실을 알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논문의 진실성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2005년 논문도 마찬가지다. 데이터를 부풀린 것은 인정한다. 20여 개의 줄기세포가 원인을 모르게 오염됐다. 5년이나 쓴 가건물과 본관 6층 동물세포배양실에 오염물질이 들어오는 등 동시오염이 이뤄졌던 것이다. 그 때 결국 미즈메디 병원에 가있던 2,3번 줄기세포가 모두 다 죽게 되었다. 4개가 부풀려졌던 것은 사실이다. 9, 10번 줄기세포는 콜로니 상태까지 갔었기 때문에 데이터에 과장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에 다른 것은 그로부터 촉발돼 나온 결과가 아닌 것인가 생각된다."

-줄기세포를 다시 수립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난자만 제대로 공급된다면 6개월 정도면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물론 이 때 국내외에 계신, 이 분야의 경험이 많은 분들이 힘을 합하면 더 쉬운 길이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 팀만으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구 업적에 대한 중압감으로 논문을 조작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데이터는 조작됐지만 논문 조작은 시인할 수 없다는 것인가?

"데이터가 부풀려진 것에 대해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하고 싶지 않다. 중압감? 왜 그런 것을 느끼겠는가? 2004년도는 아무런 중압감을 느끼지 않을 때였다. 내 눈으로도 확인했는데 줄기세포가 만들어졌다. 그 기쁨은 과학자로서 맛볼 수 있는 최상의 맛이었다. 그것만 가지고도, 만약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나는 과학자로서 영예를 누리고 있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후속 논문이 안 나온다고 손가락질을 당할 위치에 있지 않다. 더군다나 자신 있는 것은 동물 복제에 관한 한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나가고 있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세계의 대표적인 연구팀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중압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2005년 김선종 연구원에 의해 꿈에도 그릴 수 없었던 저런 멋진 결과가 나왔을 때 나는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가 열렸구나' 하는 가슴 벅찬 느낌을 가졌다. 그러면 왜 김선종 연구원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느냐는 의문이 갈 것이다. 이것은 내 평생의 멍에다. 김선종은 굉장히 성실한 사람이었다. 매 일요일 오전 6시에 나는 이 세포를 (김 연구원과) 함께 봤다. 그는 항상 오전 5시 50분 전에 도착하는 성실하고 말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성실한 김 연구원이 (그럴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줄기세포를 배양해본 경험이 없어 그 배양 과정의 진실성을 진단할 만한 안목이 없었다. 그리고 원래 '저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다'라고 한번 믿으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믿는 내 단점이 이런 일을 부른 것 같다."

-서울대 수의대에서 더 이상 이 연구를 계속할 수 없다면 다른 대학으로 넘긴다고 했는데? 동국대로 갈 것인가. 향후 연구 계획은?

"태어나서 두 번째 만나보는, 〈법보신문〉과의 만남을 전한 김 이사장님께서 이 자리에 나와 계시는데…. 나는 평소에 존경하는 분이 나와서 격려차 차를 사주겠다고 하셔서, 그 당시 식사를 못할 정도로 내 상태가 안 좋았는데, 눈이 많이 오는 날 나이드신 분 3명을 만났다. 그 자리는 인터뷰 자리가 아니었고 기자도 없었다. 그저 내게 덕담으로 해주는 말로 알고 그 분이 해주는 말씀을 고맙게 들었을 뿐이다. 그 때 있었던 이야기가 그대로 전달됐는지 아니면 가감됐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것이 〈법보신문〉에 보도가 됐다. 취재윤리에 맞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대해서는 항의할 만한 기운도 의지도 없는 상태다. 그러나 동국대학 이야기가 내가 직접 하지는 않았지 싶다. 나는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를 접해본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 어디라는 제 앞날에 대한 계획을 어찌 지금 이 큰 죄를 지은 죄인이 말할 수 있겠나. 정부와 국민 여러분께 지은 이 죄에 대해 한평생 이 빚을 가지고 떠나야 한다는 빚쟁이의 심정이 저의 앞날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갚아도 갚아도 다 갚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동석한 연구원들 가리키며)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연구원들이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 미치지 않으면 다다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미쳤었다. 일에 미쳐봤다. 내 앞에는 아무 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오직 '이 연구를 통해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없을까' 그거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의 첫 번째 아내와 헤어졌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지만, 그 요인 중에 바로 이 학문을 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 가정을 포함한 모든 것을 학문에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게 됐다. 여기 나와 함께 미쳤었던 대한민국의 소중한 인재들은 아마 각각 흩어지면 다른 나라에서는 최고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기술뿐 아니라 그 정신에서도 대한민국이 간직해야 할 정말 소중한 재산일 것이다. 몇 명의 우리 연구원들은 그 동안 내가 반성과 회한의 시간을 가질 때 찾아와 '저희는 서울대 연구실이라는 이름을 보고 여기에 합류한 것이 아닙니다, 황우석이란 사람을 보고 이 지옥행에 동참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가시는 길이 지옥이라면 그곳까지도 마지막 같이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이분들을 모시고 가기에는 내 도덕적 흠결이 너무 크다. 어느 누가 저의 애소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이제 저의 남은 생은 반성과 회한뿐일 것이다. 하지만 이분들에게는 일할 수 있는 터전과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다. 이분들을 잘 가꾸시면, 비록 우리의 저 소중한 결실이 서울대 조사위에서는 실제보다 많이 평가절하 됐을지라도, 아무리 싸게 값을 매겨도 외국에 가서는 최고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기술들일 것이다. 만약 이들도 저와 함께 이 사회에서 함께 매도돼야 한다면, 이 소중한 기술만큼은 누군가 다른 연구팀에게 우리가 그대로 넘겨드리고 싶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피땀 흘려 내주신 세금으로 이룩한 이 기술이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을 밝혀주는 데에 윤활유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마음을 다잡고 나왔다. 어떻게 하더라도 오늘 감정을 표출하지 않기로 그렇게 다잡고 왔지만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기도 죄송하고 더 답변할 수 있는 염치도 없다. 마지막으로 언론인 여러분께 간곡하게 부탁한다. 이제부터 모든 화살은 저 한사람으로만 모아주라. 우리 이병천 교수, 강성근 교수, 여기 나와 있는 연구원들, 일한 죄 밖에 없다. 저를 믿고 끝까지, 이 모든 연구결과가 진실인지 알고… 마치 저처럼 말이다. 밤을 지새우면서 2006년 첫 번째 임상실험에 돌입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던 우리 서울대 병원의 임상팀들, 한양대 교수님들, 또 그 위험을 무릅쓰고 난자 채취에 적극적으로 응해준 한나산부인과 원장님 등, 이분들 다 아무 죄 없다. 이분들에게 가야 하는 손가락질이 있다면 나한테로 돌려달라. 그리고 이 소모적인 갈등, 이제 끝내주기 바란다. 칼이 필요하다면 저를 향해 내리쳐 주기 바란다. 그리고 이제 여기서 끝내고, 대한민국의 과학을 위해, 여태껏 제게 보여줬던 것처럼, 그 애정을 다른 훌륭한 과학자들에게 아낌없이 보내주시기 바란다. 국민 여러분, 정부 당국자 여러분, 언론인 여러분, 정말 죄송하다. 앞으로 참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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