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급락세를 보여온 달러당 원화 환율이 5일 990원 선 아래로까지 떨어지는 등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환율 급락세의 원인과 전망을 놓고 여러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의 원/달러 환율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8년2개월 만의 최저수준인 987.30원으로 마감됐다. 이는 전날 종가에 비해 11.20원, 지난해 연말 종가에 비해서는 24.30원이나 떨어진 것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00원 낮은 997.50원에 장을 시작해 오전에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으로 잠시 상승하는 듯했으나 오후 들어 역외시장에서 달러화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장중 한때 985.10원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이러한 환율 급락 현상에 대해 외환시장 참여자들은 "올 것이 왔다"며 대체로 차분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역외 투기세력의 원화 공격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퍼졌다. 외환당국은 환율 방어를 위해 달러 매수에 나설 채비를 갖추는 등 긴장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환율은 곧 네 자릿수를 회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일부 외환시장 전문가들 중에는 "이번 환율 급락의 원인은 국내가 아니라 미국의 영향에서 찾아야 한다"거나 "앞으로 환율이 오히려 급반등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있었다.
***"역외 투기세력의 원화 공격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 우려**
올해 원/달러 환율의 평균 수준을 900원대로 이미 전망했던 많은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이날 환율이 990원 선 이하로 떨어진 것에 대해 "하락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하락 사실 자체는 놀랍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이날의 환율 990원 선 붕괴는 환율하락 요인들을 시장이 서둘러 반영한 결과라면서, 앞으로도 환율이 1000원 이상으로 반등되고 그 상태에서 유지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의 신민영 연구위원은 "최근 원/달러 환율의 급락은 올해 환율이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시장이 그런 예측을 반영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화증권 채권분석팀의 최석원 팀장은 "과거에는 정부가 환율 하락을 인위적으로 막기 위해 대규모로 통화안정채권이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발행했지만 이번에는 속도조절 차원의 미세조정은 할지 몰라도 하락추세 자체를 막지는 못할 것"이라며 앞으로 환율이 큰 폭으로 반등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환율하락 '추세'에 대해서는 대체로 수긍하면서도 이날과 같은 급격한 환율하락 '속도'에 대해서는 의아해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환율이 낮아질 것은 예상했지만 이처럼 급격히 낮아진 데는 환차익을 노린 투기세력의 공격과 같은 특수요인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새해 들어 모건스탠리나 리만브러더스 같은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이 역외에서 선제적으로 달러 매도에 나서면서 원/달러 환율 하락을 부채질했고, 이 대열에 국내 기업들까지 동참해 원/달러 환율이 급락했다는 분석이 시장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전날부터 외국계 투자은행(IB)를 중심으로 역외에서 달러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분위기를 반전시킬 특별한 재료가 없는 한 1000원 선 회복은 힘든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경상수지 흑자로 달러가 넘쳐나는데 역외에서까지 달러 매도에 나서면 우리 외환시장의 역량으로는 그 많은 달러 매물을 다 소화할 수 없게 된다"며 "이런 불가피한 요인이 최근의 원/달러 환율 하락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외환당국 "일시적인 현상일 뿐 곧 회복" 주장**
외환당국은 전날인 4일 환율 급락을 막기 위해 최소 6억 달러에서 최대 10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달러 매수를 감행하는 등 긴장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날은 시장개입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 국제국의 이광주 국장은 "환율이 세 자릿수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며 "거시경제나 수출 면에서 보면 당장의 환율이 아니라 평균환율이 문제인데, 외환수급상 올해 평균환율은 작년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도 "연초에는 환율의 급격한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평균환율일 것"이라며 "올해 연평균 환율 전망치는 1000~1010원 가량"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번 환율 급락은 "매해 연초마다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국은행 외환시장팀의 오재권 팀장은 "환율 하락은 일시적인 균형붕괴 현상"이라며 "(연초의 환율 하락은) 연말이 되면 결제는 나오지 않고 네고는 미리 나오는 '선 매도-매입 지연'으로 인해 기본적인 수급이 깨지는 데 따른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연구원의 이윤석 연구위원도 "2001년부터 2004년부터 매년 연초에는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며 "이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며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수출이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두고 봐야 한다"…"환율 오히려 오를 수도"**
이런 가운데 환율의 움직임은 내부 요인보다는 외부 요인에 의해 더 좌우되므로 섣부른 판단을 자제하고 사태를 더 관망해 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의 허찬국 본부장은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현상에 대해 "'원화 강세'라는 말대신 '달러 약세'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며 "3일 미국 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 공개의 여파로 달러가 약세로 반전되면서 원화뿐 아니라 엔화, 유로화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달러를 예측해봤자 소용없다"며 "달러 약세 요인이 얼마나 지속되느냐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렇게 원/달러 환율이 연일 급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원화 가치는 결국 떨어질 것"이라는 정반대의 주장이 나오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 투자은행인 JP모건은 "미국의 경기가 둔화되면서 미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거나 달러 자산을 대규모로 보유한 통화들이 약세를 보일 것"이라며 "그 중에는 한국의 원화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JP모건의 한 관계자는 "한국 원화는 경상수지 흑자 축소와 함께 2006년부터 실시되는 자본자유화가 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자본자유화의 위험이 현실로 나타날 경우 원/달러 환율이 1060~1150원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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