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 성명후 미국내에서 대북 강경책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핵보유 선언을 무시하는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네오콘(신보주의주의자) 등 미국 일각에서는 남북경협 중단 등 경제제재, 심지어는 북핵문제의 유엔 안보리 상정과 군사력 사용까지 거론되는 분위기다. 반면에 북한 성명을 계기로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대화를 통한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여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북핵문제가 난기류에 휩싸이면서 별다른 대책이 없는 한-미 양국은 중국의 적극적인 행보를 요청하는 등 중국 역할론이 재부상하고 있으나,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통한 북핵문제 조기타결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중국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美일각, “부시, 보다 공격적일 필요”**
미국의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11일(현지시간) ‘북한의 공포팔기’란 제하의 사설을 통해 “북한은 국제외교에서의 레드 라인을 넘었다”면서 “부시 대통령은 ‘진정한 위협’을 다루기 위해 보다 공격적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또 “민주당과 매파 공화당은 다자외교와 중국의 압력을 활용하는 부시의 현 전략을 변화시키기 위해 부시에 압력을 가할 것”이라면서 “미국은 경제 수단으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종식시키기 위해 중국에 더 많은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뉴욕타임스도 12일 “부시 행정부는 외교를 말하면서도 일부 당국자는 북한에 대해 새로운 경제 압박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이날 익명을 요구한 한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 “미국 정부 관리들은 북한의 선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여전히 논의를 하고 있다”면서 “모든 사람들은 이제 한국과 중국에 대해 압박을 가할 때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이커 "북핵, 유엔 안보리 상정. 유사시 군사력도 사용해야"**
미국내 여론 주도층도 방송에 출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공격적인 정책을 주문하고 나섰다.
제임스 베이커 전 미 국무장관은 13일 ABC 방송의 ‘이번주(This Week)'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의 고립도 한 방법이지만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 및 세계에 한 약속을 어긴 데 대해 유엔 안보리가 제재를 가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며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상정을 주장했다. 그는 이어 “북한에 대한 군사력 사용은 극히 어려운 문제”라면서도 “그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다면 그것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심지어 북폭론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민주당의 조지프 바이든 상원의원도 이날 폭스 TV의 ‘폭스뉴스 선데이’에 출연해 “중국, 한국, 일본이 채찍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동시에 미국에 대해서도 “더 많은 당근을 제공할 용의가 있어야 한다”면서 “북한에 줄 혜택을 매우 구체적으로 밝힐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비료지원 논란 일기도**
이런 와중에 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북한에 대한 비료 지원 중단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NYT는 네오콘의 대부격인 딕 체니 부통령이 워싱턴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무역 거래를 통한 대북 보상을 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체니 부통령은 특히 수십만 톤에 달하는 북한의 비료 지원 요청에 한국이 응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체니 부통령은 그러나 반 장관에게 “미국은 북한이 거부한 6자회담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면서 “미국이 군사적 행동이나 북한 고립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지는 전혀 시사하지 않았다”고 미 관리들은 전했다.
반기문 장관은 이같은 보도에 대해 12일 워싱턴 한국 특파원단과 기자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체니 부통령이 남북관계 현황에 대해 물어서 북한으로부터 최근 비료 50만톤 지원 요청이 왔는데 정부가 아직 결정을 내린 건 없다고 설명했으며 체니 부통령은 이에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며 NYT 보도내용을 부인했다.
반 장관은 이어 “쌀과 비료는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해왔다”면서 “개성공단은 상황이 더욱 악화되지 않으면 시범 규모에 대해선 그대로 해나간다는 방침으로 안다”고 말해, 지원을 계속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네오콘은 북핵문제가 악화될 경우 우리측에 남북교류에 대한 제고 압력을 가할 개연성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반 장관은 실제로 체니 미부통령을 만난 뒤인 13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무기 능력에 대해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정보를 아직 정밀하게 분석중이며, 아직 상황을 면밀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공식 성명을 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seriously)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해, 체니 부통령과의 회동에서 적잖은 압박을 받은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뉴스위크> "부시, 김정일과 대화해야"**
그러나 이같은 강경론과 대조적으로 부시정부에 대해 적극적 대북접촉을 주문하는 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뉴스위크> 최신호(2월21일자)는 "김정일(북한 국방위원장)의 의도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가 살아남기를 바란다는 점은 분명하다"면서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걱정할 이유를 많이 안겼다"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부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를 `폭정의 종식'이라고 밝히는 등 강경노선을 날로 강화하고 있는 반면 6자회담 등에서 북한에 제공할 유인책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면서 "북한이 지난주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이 잡지는 특히 "미국이 북한의 지하 핵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벙커 버스터'와 또다른 신형 핵무기 개발을 통한 핵무기의 우위로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북한이 선전을 통해 주장하듯 미국이 새로운 핵탄두 개발을 계속하는 한 다른 국가들은 핵을 보유하지 말라고 주장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김 위원장은 적당한 유인책이 있다면 협상에 나서거나 핵개발 계획을 동결할 용의가 있을 지 모른다"면서 "그러나 이 시점에서 그는 단순한 생존 약속이상의 것을 필요로 할 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이 잡지는 따라서 "먼저 부시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고(故) 로널드 레이건 전(前) 대통령 역시 `악의 제국'으로 칭했던 옛소련 지도자와 대화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부시의 적극적 대북대화를 촉구했다.
***中 역할론 재부상**
한편 북한 외무성 선언을 계기로 '중국 역할론'이 재부상하고 있다. 한때 미국내에서도 중국의 역할에 회의적인 시각이 제기됐었으나, 북한의 성명발표후 마땅한 대북 카드가 없는 한국과 미국이 또다시 중국에 대해 돌파구 마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반기문 장관은 이와 관련,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고위 실무관계자들과 의견을 교환한 결과 상황인식과 1단계 초기 대응 조치에 관해 일치했다”면서 “중국이 북한을 설득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그런 방향으로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단계 초기 대응은 다름 아닌 중국의 외교 노력인 셈이다.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11일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과 전화통화를 갖고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기를 희망해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리자오싱 부장은 이에 “6자회담이 가능한 한 빨리 재개될 수 있도록 중국은 모든 관계국과의 접촉을 할 것이며 적극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전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이뤄질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 일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로선 거의 유일하게 대북 라인을 확보하고 있는 중국이 이번 방북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지가 앞으로 해결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국은 우선 북한의 선언이 협상용인지 실제인지를 확인하려 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앞으로의 정책도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북핵문제를 대만 문제의 지렛대로 여기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경우를 최악의 경우로 상정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북한의 속내 탐색에 1차적인 관심을 둘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 외신보도 신속보도**
이처럼 외무성 발표후 6자회담 참가국들이 당혹스런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 북한은 사태추이를 예의주시하며, 미국 등 서방언론의 반응을 극히 이례적으로 국내에 신속히 전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관영 언론들은 12일부터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언론의 북한 외무성 성명 관련보도를 신속히 전하며, 북한의 선언이 전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는 북한당국이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이 2기 정부 출범을 맞아 연두교서에서 북핵문제를 이란-시리아보다 후순위에 두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이 방침을 수용할 경우 미국의 북한 고립말살 정책이 장기화하면서 북한의 경제난이 한층 심화되고 이에 따라 체제위기가 도래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공격적 외무성 성명을 통해 북핵문제를 우선적으로 풀 것을 부시 정부에게 촉구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북한의 승부수로 부시 정부는 더이상 북핵문제를 '후순위 과제'로 다루기가 힘들어진 양상이다. 과연 부시대통령이 미국내 분출하는 강온 양론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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