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 문서 가운데 일부 내용이 공개된 뒤 강제동원피해 관련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뜨겁다. 이들은 우선 일본측이 ‘한국 내부 문제’라고 반응한 데 대해 “뻔뻔스런 태도”라며 강력히 반발했고 “양국 국가 권력의 야합”이라며 재협상을 요구했다. 양국을 대상으로 한 소송을 준비중인 이들 단체는 또 “소외받은 민초들을 무시해선 안된다”고 경고했다.
한편 정부는 ‘대책기획단’과 ‘전담심사반’을 두고 보상문제와 추후 외교문서 공개를 다룰 예정이지만 피해자에 대해 ‘보상’을 할지 ‘생계지원책’을 마련할 지에 대한 입장을 아직 정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 피해자 관련 시민단체, “日 반응, 뻔뻔스러워” **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는 18일 ‘문서 공개로 개인 보상은 한국 정부 책임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일본측 태도에 대해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뻔뻔스러운 태도”라고 일축했다.
일본 정부는 개인 보상 문제와 관련 공개적인 언급은 피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일본 언론들은 17일 청구권 협정 문서가 공개된 뒤 “이번 공개를 통해 개인의 대일 청구권이 소멸된 것이 확인됐으며 ‘한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에 대해 보상 의무를 진다’는 점이 명확해졌다”고 보도했다.
이희자 공동대표는 “65년 협정에서 한국 정부의 잘못이 분명히 있지만 그 문제의 뿌리는 일본”이라며 “일본은 협정에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사죄나 인정은 하나도 찾을 수 없으며 이러한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침략전쟁과 그로 인한 인명 피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협정을 이용한 것”이란 질책이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의 양순임 회장도 “협정 2조 1항의 ‘최종적으로 완전히 끝났다’는 단 몇 자의 문구만으로 수십만 사망자와 수백만 부상자들의 희생을 치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또 “일본은 희생자 면책을 주장하나 희생자 해결을 생각했다면 사죄의 문구가 전혀 포함 안 될 수가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양순임 회장은 이어 일본 정부의 협상 태도를 거론하며 일본 정부의 무책임하고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비난했다. 당시 피해 당사자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측은 일본이었으며 일본측은 우리 정부의 1백3만여명의 피해자 주장에 자신들의 자료를 모두 공개했어야 하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협상태도를 보인 바 있다. 이러한 태도는 협상 전략 차원에서는 몰라도 "일제의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라는 주장이다.
***“한일협정, 양국 야합 결과. 재협상해야”-“소외받은 민초 무시 말아야”**
이들의 비판은 일본 정부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한국 정부의 협상과 보상 태도, 문서 공개 범위에 대해서도 강한 질책이 이어졌다.
양순임 회장은 “한일수교회담은 양국 국가 야합의 결과”라며 “잘못된 협정이므로 반드시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협상은 희생자의 인권을 무시한, 국제법에도 위반되는 국제조약”이라며 “우리 국가는 국민을 대변해야 하는 의무와 권리를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비도덕적임을 드러냈으며 이에 따라 한일협정은 부끄러운 조약”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정부는 그동안 피해자들을 2번 죽였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일 협정 때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던 것이 그 첫 번째고 두 번째는 75년도에 보상을 하면서 사망자 8천5백52명에게만 단 30만원씩의 보상만을 함으로써 개인의 권리를 박탈한 것이 그 두 번째라는 지적이다.
양 회장의 그동안에 쌓였던 아픔은 계속 터져 나왔다. 그는 “일제시대 피해를 당한 우리 선친들은 모두 소외받은 민초들이었다”면서 “정부는 지금에 와서도 힘없는 사람을 무시하는 듯이 남의 일 보듯이 처리한다면 우리의 민족자주는 무너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일본의 일부 양심있는 분들은 이러한 정부와 국회 태도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정부의 성의있는 태도를 촉구했다.
이희자 대표도 이에 대해 “한국 정부의 불성실한 문서 공개는 피해자들을 우롱한 처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일 회담 전체 의제별 토의 개요는 총 1백61권으로 청구권만 관련해서도 57권이 되며 이 가운데 정부는 이번에 단 5권만 공개했다. 이에 따라 전체적인 협정의 문제점과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체 문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민단체들 한-일 양국 정부 대상 소송 준비 **
이들 피해자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주장 이외에 직접 소송을 준비하며 일본과 한국 정부에 대한 법적 투쟁도 더욱 강하게 나설 뜻임을 밝혔다.
양순임 회장에 따르면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유해 미송환 유가족 피해 배상 소송’을 준비중이며 양 회장은 “유가족 가운데 90% 이상은 유해를 찾지 못했으며 한일협정에서도 유해 문제는 거론한 바가 없으므로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회는 이외에 한국정부를 상대로 ‘미불노임 공탁금 반환청구소송’과 ‘후생연금 반환 청구소송’을 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70년대 박정희 정부 때 실시했던 보상에서 제외됐던 징용 사망, 부상, 생존자들의 피해 구제를 요구하는 소송과 한일회담때 잘못됐던 일제 강제동원피해자 보상 문제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하는 소송도 준비중이다.
미불노임이란 일본이 강제징발후 보수를 지불하지 않은 것을 말하며 유족회측은 군인 군속을 제외한 노무자에 대한 미불노임이 원금만 2억1천만엔에 달하고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조6천3백억만엔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소송 문제에 대해서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도 마찬가지로 이희자 대표에 따르면 협의회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유골 반환과 야스쿠니 신사 한국인 전사자 합사 문제, 공탁금 및 후생연금 미지급 급여금 소송 등 3가지를 진행중이다. 이 대표는 이와 관련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피해자를 대신해 소송할 준비가 다 돼 있다”고 밝혔다.
***정부, “보상문제 백지상태서 검토”. 보상 여부 결정 못해**
정부는 한편 피해자에 대해 ‘보상’을 할지 ‘생계지원책’을 마련할 지에 대한 입장을 아직 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수와 현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시금 4천3백만원과 함께 월 60만원이 지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식민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실시하게 되면 소요예산이 비공식적으로 적게는 5조원 많게는 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편 국조실의 노병인 일반행정심의관은 17일 정부의 피해 보상 여부에 대해 “보상 문제는 백지상태에서 검토하며 지금으로서는 보상이 있다, 없다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노병인 심의관은 이어 “피해자 단체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범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문서 공개에 따라 이해 당사자들이 단체로, 혹은 개별적으로 한국 및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집중적으로 민원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들의 다양한 민원을 파악하고 분류하는 작업에 우선 착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아울러 한일협정 문서 공개에 따른 대책을 종합적으로 수립하기 위해 17일 국무총리 산하에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 대책기획단’을 발족해 가동에 들어간 상태이며 외교통상부에도 박준우 아시아태평양국장을 반장으로 하는 ‘한일 수교회담 문서공개 전담심사반’을 구성하기로 했다.
대책기획단은 조영택 국무조정실 기획수석조정관과 최영진 외교부 차관을 공동단장으로 하고 국조실, 외교부, 행정자치부, 재정경제부, 보건복지부, 국가보훈처, 기획예산처 등 7개 부처 공무원 8명으로 구성됐다.
대책기획단은 피해보상 민원 처리 문제 및 추후 보상요구에 대한 대책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전담심사반은 앞으로 추가로 공개할 한일협정문서에서 공개-비공개 대상을 심사하는 일을 주로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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