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은 지난달 말 상원에서 수정, 가결된 북한인권법안을 4일(현지시간) 재상정해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이에 따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통령 서명절차만 통과하면 정식으로 발효하게 됐지만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서 북핵 문제 및 북-미 관계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한편 정치권은 이날도 북한인권법안에 대한 공방을 주고받았으며 일부에서는 이 법안에 대한 정부 대응이 무능력하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미 하원, 북한인권법안 재통과. 정식발효까지 대통령 서명절차만 남아**
미 하원은 이날 지난달 28일 상원에서 일부 내용이 수정돼 가결된 ‘2004 북한인권법안’을 재상정해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지난 7월 미 하원에서 통과됐었으나 상원에서 법안 내용이 일부 수정됐기 때문에 다시 하원으로 재이송돼 통과절차를 밝게 됐다.
북한인권법안은 이로써 지난해 11월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이 북한자유법안을 제출한 뒤 약 1년만에 입법절차가 마무리됐으며 이제 부시 대통령에게 이송돼 대통령 서명절차를 남겨두게 됐다. 대통령 서명 절차는 늦어도 내년 초에는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나 미 정치권에서 이 법안을 상당히 신속하게 처리하고 있어 대통령 서명절차도 빠른 속도로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인권법은 북한주민인권신장, 궁핍한 북한주민지원, 탈북자 보호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탈북자 지원 등 북한인권개선을 위해 매년 2천4백만달러 한도의 지출 승인 등을 골자로 하고 있어서 2008년까지 총 9천6백만달러(약1천1백52억원)를 사용토록 하고 있다.
북한인권법에 따라 미대통령은 북한인권담당 특사를 임명해야 하며, 이 특사는 북한당국과 인권문제를 협의하는 동시에 북한인권 개선 사항을 법 통과직후에는 반년내에, 그 후에는 일년마다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북한인권법은 아울러 북한 주민의 미국 망명 및 난민 신청 자격 허용에 대해 원칙적으로 재확인, 탈북자들의 미국망명길을 터놓았다. 이 법안은 미국의 대북 원조와 인권문제를 연계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연계돼야 한다는 것이 의회의 입장”이라는 수준에서 정리, 당초 있던 법적 구속력은 해제했다.
***北, “인권법안은 대북적대선언. 억제력 강화할 것”. 6자회담전망 더욱 불투명**
입법 과정에서 그 내용이 일부 완화되긴 했지만 법안 내용은 여전히 북한의 인권 문제를 고리로 한반도 상황을 크게 좌우할 수 있는 등 파급력이 커서 추후 어떤 영향을 끼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이 법안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나서서 북핵문제 해결이나 북-미 관계 개선에 난기류가 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실제로 4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질의 답변 형식으로 “이 법안은 북한 인권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우리 체제의 전복활동에 가담하는 단체 및 개인들에게 미국 정부 예산으로 매년 2천4백만 달러를 지출한다고 규제하는 등 시종일관 악랄하기 그지없는 반공화국 독소조항들로 가득차 있다”며 “북한인권법안은 대북적대선언이고 우리 제도 전복을 위한 본격적인 환경조성을 위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또 북한인권법이 노리는 목적에 대해 “이를 가결하기 직전 미 공화당의 한 상원의원이 ‘옛 소련의 붕괴와 마찬가지로 북한 정권의 몰락도 멀지 않았다’고 떠벌인데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주권국가인 북한을 악랄하게 중상모독하고 북한이 선택한 사회주의 제도의 붕괴를 노리는 미국의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내놓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인권유린 주범으로 낙인되고 있는 미국이 아직도 자기들 처지도 모르고 그 누구의 인권문제에 대해 가타부타 하는 것은 인류 양심을 우롱하는 도전이 아닐 수 없다”며 미국이 바로 인권유린국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라크에서 비법적인 전쟁을 일으키고 어린이들을 포함한 무고한 민간인들에 대한 살육을 매일 감행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이어 “미국은 우리와의 공존을 전면 부정하고 사회주의제도를 말살하려는 무분별한 단계에 들어섬으로써 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와 협상의 의미를 상실케 하고 있다”고 주장, 이미 기존 회담 일정을 넘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추후 개최여부가 더욱 불투명해지게 됐다. 그는 또“우리에게는 이제 핵문제에 대한 6자회담은 고사하고 미국과 상종할 그 어떤 명분도 없게 됐다”고 재차 강조하며 “미국과 힘으로 끝까지 대응하기 위한 억제력강화에 더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 억제력 강화를 다시 주장했다.
*** 정치권, 北인권법 공방. 與 "외교부 국익관 모호, 무능" 날선 질책 **
미국의 입법과정 마무리와 북한의 강력 반발로 북한인권법안이 북-미간 주요 갈등 요인으로 대두되자 정치권도 이에 대한 공방을 주고받았으며 일부 의원들은 이날 외교통상부를 상대로 벌인 국정감사에서 북한인권법이 미국 상하원을 통과할 때까지 무기력한 대응으로 일관했던 외교부를 향해 강한 질책을 쏟아냈다.
우선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은 "우리 정부는 초기에 북한 인권법이 통과되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고, 하원 통과 후엔 핵심조항이 빠져 괜찮다고 했다가 이제는 시행과정에서 미국과 긴밀 협력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혼란스러운 상태"라며 정부의 무능을 질타했다.
임 의원은 특히 "'통과안될 것', '핵심조항이 빠져 문제될 게 없다', '다 꺼진 불을 왜 살리나', '우방국에서 취한 입법활동인 만큼 우리 정부가 입장을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등의 외교부 입장은 정세 분석의 심각한 오류를 범했을 뿐 아니라 국익관마저 모호한 상태가 아닌가 의심케 한다"며 인권법안 논란을 무마하기 급급했던 외교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도 "외교부는 북한 인권법이 체제전복법이 아니라고, 이라크나 이란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듣기 좋은 해석만 내 놓고 있지만 사실 이 법안은 한반도에 재앙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위험한 법"이라며 "미 정부 내에서도 '난민 대이동을 유도해 북한의 정권 몰락을 촉진할 수 있는 법'이라는 해석이 나올 정도"라고 밝혔다. 권 의원은 이어 정부 답변을 위해 자리한 최영진 차관에게 "순수한 인권법이라는 순진한 발상을 걷어 내고 지금이라도 북한이 극단의 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있도록 현명한 대책을 강구해 내야 한다"며 외교부의 적절한 대응을 주문했다.
한편, 미 의회의 북한인권법 추진에 환영의사를 밝혀왔던 한나라당은 다른 성격의 주문을 내 놓았다.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북한 인권법의 통과는 북한인권 및 탈북자 문제에 대해 미국이 주도적으로 국제회의 등의 형태로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며 "내년 3월에는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대북결의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유력한만큼 한국 또한 입장 표명을 통해 북한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당 전여옥 의원은 "법안 통과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자못 격렬해 우려스럽다"며 "6자 회담 무산으로 대화 채널이 사실상 전무한 가운데 최악의 상태를 막기 위한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 北인권 관련 3가지 기본입장 밝힌 바 있어. 대북자극 최소화 입장**
이러한 정치권의 공방과 달리 정부는 최근 이 법안이 미 상원을 통과한 직후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3가지 기본 입장’을 밝혀 추후 접근 방식을 예고했었다. 우선 인권은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타당한 가치로서 우리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는 일반론적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이어 북한 인권문제를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개선하는데 있어서 나라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접근방식을 전략적으로 검토, 선택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정부는 이어 평화번영정책을 통해 남북간 긴장완화와 화해협력을 실현하고 그 과정에서 북한 인권의 점진적 실질적 개선을 도모하는 정책을 견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 관심이 높아가고 있지만 정부로서는 일관된 대북정책을 통해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 실질적으로 접근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정부는 최근에는 또 이같은 3대 기조 이외에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이 법의 실행으로 인한 대북자극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입장도 새로 추가했다. 북한인권법 제정으로 북-미간 갈등이 더욱 심화됨에 따라 남-북관계도 한동안 경색국면을 이어갈 수밖에 없어 정부의 곤혹스런 입장도 더욱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 따라 이 법의 영향의 최소화를 노리겠다는 심산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