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푸른 내장을 가르는 동안 뱃전에 일어나는 물보라, 이내 봉합되는 그 상처를 들여다보는데 한쪽 겨드랑이가 문득 허전하다. 파도 속에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하,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다!
군산항부터 끈질기게 따라온 잿빛 방조제, 이 시퍼런 물결 한복판에서도 군산 부안이 보이지 않는 섬기슭에서도 수평선을 볼 수가 없다. 잃어버렸다.
수평선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아름다운 전망의 상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갯벌을 잃어버리는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저 푸른 물결 너머로, 그 너머로, 한없이 보낼 수 있는 마음을 잃어버린 것.
바람에 흩날리는 저 부표들이 수평선의 죽음을 알리는 조기(弔籏)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야 알았다. 이미 28.5km의 수평선이 사라진 뒤에야.- 약력: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사라진 손바닥』등이 있으며, 김수영 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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