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김용균특조위가 지난 8월 내놓은 22개 권고안에 대한 정부 이행계획을 12일 발표했다. 고 김용균 씨 사망 등을 비롯해 '위험의 외주화' 문제에 대해 당정이 직접 나서 해결 방안을 모색한 것은 평가받을 만 하다.
그러나 김용균 사망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어 온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요구돼 왔던 '직접고용 정규직화'는 계획에서 빠져,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당정이 발표한 이행계획에는 △ 원하청 산재 통합관리제도 적용 대상에 발전산업 추가 △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산재 예방 및 작업현장 개선 요청 수용여부 반영 등이 담겼다.
발전소 노동자의 고용구조에 대한 대책은 '발전 5사가 합동으로 연료·설비운전 분야 공공기관 신설하고 정규직화 추진'으로 정리됐다. '정규직화'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공공기관 형태의 자회사를 설립해 발전소 노동자를 고용하겠다는 뜻이다. 발전소와 해당 기관이 각각 '내 노동자가 아니다', '내 사업장이 아니다'라며 안전에 대한 책임을 서로 미루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그대로 남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발전산업 안전강화 및 고용안정 태스크포스' 위원장인 우원식 의원은 이날 이행계회을 발표하며,직접고용 정규직화에 대해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게 바람직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민간정비사 파산 및 상장회사 주주 반발 등 현실적 제약 조건이 있다"며 "지난 2월 당정 협의대로 공공기관으로의 정규직화 약속이 이행되도록 내부 준비를 통해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접고용 권고가 관철되지 않았다고 당정 이행계획을 부정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특조위 이행점검위원 "직접고용은 핵심 권고안, 후퇴 안 된다"
특조위 이행점검위원들은 "'위험의 외주화' 해결의 핵심 권고안인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빠졌다"며 즉각 비판 입장을 냈다.
위원들은 당정이 특조위 조사 결과는 물론 지난 2월 스스로 내세운 취지와도 다른 입장을 내놨다고 주장했다. 위원들은 "김용균 사망 사고에 대한 2월 5일 당정 발표문의 핵심 취지는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위험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특조위 조사결과에서도 위험의 외주화가 사고의 핵심 원인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위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전산업의 민영화·외주화 정책 철회와 이와 표리관계에 있던 간접고용의 해소, 즉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필요하다"며 "당정이 외주화 관행과 차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직접고용 방안을 회피하고, 자회사라는 변형된 방식으로 외주화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권고안의 핵심 취지 및 지향과 배치되는 것으로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위원들은 "당정이 밝힌 '정규직화 원칙에 동의'한다는 입장이 한낱 장식에 불과한 말이 아니라면, 그리고 노동안전에 대한 전환점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정부와 여당의 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철학과 태도가 요청된다"며 "정부는 현실적인 제약이나 이해당사자의 합의를 이유로 특조위의 핵심 권고안을 후퇴시킬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이행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이해당사자를 설득하고 강제하는 정책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직접고용이 노동자 안전에 미치는 영향
이행점검위원들이 직접고용을 강조하는 이유는 서울교통공사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서울교통공사의 안전 업무 노동자는 구의역 김군 사망 사고 이후 사고조사와 그에 따른 대책 이행의 결과 직접고용됐다.
임선재 서울교통공사 스크린도어정비 노동자는 지난 3일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휴지조각이 된 조사보고서' 토론회에서 직접고용 이후 "위험한 업무를 스스로 거부할 권리와 의식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간접고용 관계에서 하청 노동자가 안전 문제를 제기하면 보통은 '책임 공백'이라고 불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청업체는 '내 사업장이 아니고, 내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버틴다. 안전 조치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가진 원청업체는 '내가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하청 노동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
직접고용 이후 이런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 임 씨의 설명이다. 임 씨는 "직접고용 이후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이 다니는 주간에 선로 정비 업무를 내렸지만, 노동자들이 이를 거부하고 야간에 진행한 일이 있었다"며 "외주 하청 직원이었다면 회사의 지시에 따라야 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책임 공백 문제가 사라지며, 현장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위험에 대해 노동자 스스로 그때그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의역김군 사망 사고와 김용균 사망 사고의 직접고용에 대한 대응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의역김군사망재해진상조사단의 단장과 김용균특조위 간사를 맡았던 권영국 변호사는 두 사고의 후속조치 과정에 대해 "구의역김군 사망 사고 대응 당시에는 서울시가 진상조사단의 권고안에 대해 이번에 당정이 내놓은 것과 같이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며 "당시에는 진상조사단의 권고안을 기준으로 두고, 권고안이 이행되는지를 점검하는 방식으로 후속조치가 이루어졌다"고 전했다.
권 변호사는 "구의역김군 때와 마찬가지로 권고안을 기준으로 이행을 점검하면 논란의 소지는 없을 것"이라며 "현실적 문제로 인해 권고안을 100% 다 이행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권고안을 기준 삼지도 않고, '노동자 안전에 대한 권한과 책임의 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고용하라'는 권고안의 핵심 취지에 부합하지도 않는 이행방안을 내놓은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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