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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군인의 적은 인간 내면의 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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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군인의 적은 인간 내면의 야수"

[신간] 9천년 전쟁사 다룬 몽고메리의 <전쟁의 역사>

<전쟁의 역사>(A History of Warfare)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사령관으로 롬멜 장군이 이끄는 독일군을 꺾은 것으로 유명한 버나드 로 몽고메리(1887~1976년)가 기원전 7천년전 이래 제2차 세계대전까지 약 9천년 간에 걸친 인류 전쟁의 역사를 고찰한 책으로 유명하다.

지난 95년에 두 권으로 완역되었다가 증보합본되어 이번에 1천 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4.6배판으로 재출간(승영조 옮김.책세상 간)됐다.

***전쟁지도자가 본 전쟁의 본질**

몽고메리는 평생을 전쟁의 한복판에서 보낸 자신의 경험에 비춰 전쟁의 본질로 확실한 것을 이렇게 말한다.

“합의를 도출할 방법이 없을 때 항상 중재자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전쟁이며, 전쟁에서 오직 확실한 한 가지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 뿐이다.”

저자는 “전쟁은 종식될 리가 없다”면서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핵 시대의 인류는 전쟁을 없애느냐 전쟁으로 없어지느냐의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핵 시대의 테러리즘 형태의 전쟁을 예견한 듯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한다.

“우리는 물질적.물리적인 면에서 평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결국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장한 힘이 있는 나라는 안전하게 재산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면에서 보면 무력보다 강한 것이 있다. 대규모 군대라고 해도 항상 승리를 거두지는 못한다. 대규모 군대라 해도 국민들의 마음을 영원히 장악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전쟁을 연구하다 보면 미래를 위해 가치 있는 정신적 측면을 환히 들여다보게 된다.”

최근 ‘하드 파워’에만 의존해 이라크에서 고전하고 있는 미국에게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강조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의 지적과 일맥 상통하는 통찰이다.

***전쟁 승패 가르는 요소로 ‘제너럴십’ 강조 **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요소로 장군의 리더십에 할애되어 있다. 따라서 일종의 경영서나 처세술로도 읽힌다. 세상살이가 전쟁터 같이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에 전쟁에서 체득한 리더십론이 더 실감날 수도 있을 것이다.

몽고메리는 “내 기나긴 전쟁 경험 중에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기선을 제압하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보의 가치는 바로 그 점에 있다”고 말한다.

그 일환으로 그는 전쟁에 임해서 적의 지휘관을 연구하는 것을 언제나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그러나 승리를 보장하는 단 하나의 가장 큰 요인으로 그는 ‘군인의 사기’를 꼽았다. 그리고 전시에 사기를 드높이는 최고의 길은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장군과 장교들이 반드시 숙지할 학문으로 ‘제너럴십’을 소개하면서 “나 자신의 정의에 의하면 제너럴십이란 지휘의 과학이며 기술이다. 장교들이 이론적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과학이며 그 이론이 실제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기술”이라고 말한다.

제너럴십이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이론과 기술이라는 점에서 그는 “제너럴십은 무엇보다도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고 지적했다.

***몽고메리, 정치 지도자들의 성찰 촉구**

그러나 전쟁의 근본적인 책임이 정치가에게 있다는 점에서 그는 정치가와 장군과의 신뢰와 협조관계가 ‘제너럴십’의 든든한 배경이 됨을 강조했다. 정치 지도자들이 신통치 못할 경우 전쟁을 직접 치르는 장군의 복잡한 심경을 그는 이렇게 기술했다.

“정치 지도자들이 수많은 국제 분쟁을 해결할 지각 있는 길을 모색하지 못하는 한 전쟁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한 국가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력에 호소하기로 결정할 때, 혹은 스스로 공격을 받고 있을 때, 전쟁에 대한 최종 책임은 정치 권력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정부가 동요하거나, 용기도 없고 분명한 관점도 없으며, 앞으로도 작전상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에 대한 명료한 개념도 없다면, 군 장성들이 그런 정부에 승리를 안겨주기란 어려우며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치적 목적과 전략은 오해가 없도록 반드시 단순하고 명료한 말로 표현되어야 한다. 또 현명하게 선택된 총사령관들에게 명료한 말로 지시가 내려져야 한다. 그러면 이제부터 문제는 장군에게 넘어가게 되며, 이때 장군은 최대한의 뒷받침을 받아야 한다. 그러한 점들은 자주 그리고 아주 분명하게 강조되어야 한다.”

마치 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정치지도자들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던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부 고위 장성들의 불만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몽고메리, 이순신 장군 극찬하기도**

몽고메리는 역사적으로 주요한 전쟁들을 상세히 나열해 가던중 제5부 동양전쟁에서 임진왜란을 다루며 이순신 장군을 극찬해 눈길을 모으기도 한다.

“도요토미의 야심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꿈은 이제 중국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1592년 그는 한반도를 침략함으로써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지상작전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일본 병력은 3주만에 한성까지 밀고 올라갔다. 그러나 일본은 뭍에서 성공을 거둔 반면, 바다에서는 일대 타격을 받았다.

한반도 사람들은 항해술에 능한 민족이었고, 조선에는 이순신이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전략가, 전술가, 탁월한 자질을 지닌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기계 제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아시아의 해군 전술은 여전히 화살 공격을 가하고 배를 들이받아 적선에 올라타는 차원에 머물러 있었으며, 대포는 배에 장착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순신 장군은 어떤 공격에도 버틸 수 있을 뿐 아니라 대단한 방어력을 지닌 배를 고안했다.

그 배의 선체는 속도를 낼 수 있고 작전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갑판 위에는 거북 등처럼 철갑을 씌워, 불.화살.탄환 등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며, 적이 배에 올라타지 못하도록 철갑 위에는 큰 못을 박았다. 뱃머리는 공격적으로 적선을 들이받을 수 있도록 강화했으며, 둘레 전체에 포문을 설치했다. 일본 선원들은 용감하게 싸웠지만, 이순신 장군의 철갑 전함에 저항할 수 없었다. 조선이 바다에서 승리를 거둔 결과 도요토미의 지상 공격은 마비되고 말았다.”

몽고메리는 동양전쟁사를 기술하면서 아시아 민족에 대한 두려움 특히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시아 민족에 대한 이 짧은 연구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지난날의 몽골인(그리고 20세기의 일본인)들은 용감하고 잘 훈련된 군대가 동양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서구인들에게 깨우쳐 주었다. 서구인들로서는 아시아의 힘을 결코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은 또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아시아의 광대한 지역에서 대규모 침략 세력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세계인 모두가 현재의 세계 문제를 지혜롭고 상식있게 다룬다면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우리는 거대한 중국 민족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유와 정의 없는 평화는 무가치”**

윈스턴 처칠은 “내가 이겨서 얻고자 한 최후의 보상은 평화”라고 말했다. 그러나 몽고메리는 제7부 23장 에필로그에서 ‘평화’라는 모호한 개념에서 한걸음 더 나간 야전사령관다운 통찰을 보여준다.

“자유와 정의가 없으면 겁많고 노예화된 사람들에게 평화가 주어졌다 한들 그 평화는 지상의 지옥과 같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즐기고 있는 평화는 인간 내면의 야수와 싸워 얻은 평화이며, 만일 그 평화를 쟁취하고 유지한 미덕들이 상실되면 그 승리도 더는 승리가 아닐 것이다. 인간들 사이의 자유 없는 평화, 혹은 정의 없는 자유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평화라는 이상은 나태하고 편안한 삶으로 유혹하는 것들과 지나친 공생 관계를 유지해서는 안된다. 평화라는 이상은 실천이라는 미덕을 동반해야 한다.”

그러나 몽고메리 장군도 진정한 평화가 이뤄질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날 저녁 성서를 읽다가 나는 우연히 ‘예레미아’에서 다음 문장을 보았다.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모두가 거짓을 행하며, 평화롭다 평화롭다 하나 평화가 없도다’

이 말은 아마도 거의 3천년 전에 씌여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전쟁을 충분히 음미했을 것일 테고, 세상의 조화로움이 깨어지는 소리에 귀를 막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것이다.

문명은 진보했고, 지난 2천년 이상 동안 모든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 평화에 대한 기구가 깃들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20세기에 이르러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를 맞았다. 독일 나치 정권 시대에는 로마나 몽골 제국 시대의 최악의 날들이 무색해질 만큼 잔혹한 일들이 일어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범죄가 자행되었다.

그러한 일들이 다시 재발할 수 있을까? 히틀러와 같은 인간이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우리는 국가 간의 현대전이 전면적인 야만성으로의 복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까? 그러한 문제들은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맡아 대처해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미래의 운명을 좌우할 젊은이들에게 간곡하게 호소하는 말로 필생의 역작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의 손에 넘긴 정의와 자유의 횃불에 대한 맹세를 우리는 깨드리면 안 된다. 진정한 군인은 타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인간 내면의 야수를 적으로 삼는다. 한 군인으로서 나는 희망한다. 황금빛 노을이 지고, 반목가 싸움을 잠재우는 소등 나팔소리가 울리는 그날이 오기를, 이윽고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르며 세계 온 나라의 친선과 평화를 깨우는 기상 나팔이 울리는 그 시대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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