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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역사라...우린 그런 거 모른다"

우드워드, 신간 통해 '네오콘'의 이라크침공 전모 폭로

워터게이트사건로 퓰리처상을 받아 유명한 워싱턴포스트(WP)의 밥 우드워드 기자가 조지 W.부시 대통령 등 이라크 전쟁과 관련한 핵심인사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집필한 <공격계획(Plan of Attack)>이라는 신간에서, 부시 등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이라크의 석유자원을 노려 전쟁을 감행했음을 다시 한번 파헤쳐 부시진영을 크게 당황케 하고 있다.

부시는 특히 우드워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어떨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역사라...우린 모른다. 그때즘 우리는 다 죽어있을 텐데 "라고 대답함으로써, 부시 정권의 '역사관'이 얼마나 천박한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부시, 9.11테러직후 곧바로 이라크 전쟁계획 수립 지시**

<전쟁계획>은 우드워드가 부시 대통령을 위시해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75명이 넘는 인사들과 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집필된 책이다.

이 책에는 올해초 저널리스트 론 서스킨드가 발간한 <충성의 대가(Price of Loyalty)>에서 폴 오닐 전 재무장관이 "부시 행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있었다"고 고백한 것을 능가하는 내용들이 곳곳에 담겨 있어, 가뜩이나 이라크 전황 악화로 재선가동에 제공이 걸린 부시를 크게 곤혹케 하고 있다.

우드워드는 이라크 전쟁 개전 배경과 관련, "부시 대통령과 백악관 대변인들이 '이라크 사태의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주장하던 2001년 12월말 부시는 이미 이라크 전쟁계획 수립을 위해 토미 프랭크스 장군과 국방각료들을 여러 차례 만났었다"며, 부시는 "2003년 1월 이미 전쟁을 결심해 이를 시달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 딕 체니 부통령으로 대표되는 '매파'와 콜린 파월 국무장관으로 대표되는 '비둘기파'간에 치열한 대립이 있었다.

우드워드에 따르면, 체니와 파월은 서로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의견이 달랐다.

파월은 "체니가 이라크를 알 카에다 조직과 연계시키려고 지나치게 무리했으며 부정확한 정보를 사실로 취급한다"고 생각했다. 파월은 "체니와 그 측근들-핵심보좌관 루이스 리비, 국방부 부장관 폴 월포위츠, 국방차관 더글러스 페이스 그리고 파월이 페이스의 '게슈타포'로 부른 요원들-은 별도의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네오콘이 부시정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 결과 부시는 이라크전을 결심하면서 파월 장관에게 사전의견을 묻지 않고 전쟁계획도 사후 통보할 정도로 '왕따'시켰다고 우드워드는 주장했다.

우드워드는 또 흔히 매파의 간판으로 알려진 럼즈펠즈 국방장관에 대해 "럼즈펠드는 단지 국방기술관료였을 뿐, 두뇌는 못됐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대목은 부시의 '역사관'이다. 우드워드가 부시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어떨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묻자, 부시는 "역사라...우린 모른다. 그때즘 우리는 다 죽어있을 텐데 "라고 대답했다. 부시의 '역사관'이 얼마나 천박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말해 '역사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부시정권으로 인해, 이라크전이라는 참상이 벌어지고 미국은 헤어나기 힘든 사막의 늪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백악관, "우드워드 주장은 사실무근"**

우드워드의 이같은 신간에 대해, 백악관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은 18일 CBS 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Face the Nation)' 프로에 출연해 부시는 2003년 1월이 아닌 2003년 3월에 이라크 공격을 결정했다고 즉각 반박하는 등 백악관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라이스 보좌관은 자신이 2003년 1월 텍사스주 크로포드의 목장에서 부시 대통령과 함께 있었으며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실시된 무기사찰에 대한 실망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라이스는 "대통령은 `자, 이제 우리는 전쟁을 해야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전쟁을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며 "그것은 전쟁을 하겠다는 결정이 아니었고 대통령은 그 결정을 3월에 했다"고 주장했다.

라이스는 또 부시가 파월 국무장관에게 이라크 공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국무장관이 대통령과 하는 모든 대화에 관여했으며 대통령을 위한 모든 브리핑에 관여했다"면서 "그들(대통령과 국무장관)은 거의 매일 유엔에서 일이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에 관해 접촉했다"고 주장했다. 라이스는 또 미국 주재 사우디 대사가 파월 장관보다 전쟁 계획을 먼저 알았다는 주장도 부인하면서 "파월 장관은 이 모든 것에 관여했고 전쟁 계획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라이스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미국민의 신뢰도가 높은 대기자 우드워드의 이번 신간으로 인해 부시의 재선가도는 한층 험난해졌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다음은 18일 출간된 <전쟁계획>의 일부를 WP가 소개한 내용이다.

***블레어 총리 요청으로 유엔 결의안 모색**

<전쟁계획>은 우드워드가 부시 대통령을 위시해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75명이 넘는 인사들과 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집필된 책이다. 뉴욕과 워싱턴에 9.11테러 공격이 일어난 지 72일이 지난 2001년 11월21일 부시 대통령은 럼즈펠드 장관에게 이라크 전쟁 계획 수립에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당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럼즈펠드 장관에게 지시한 지 5주가 지난 그해 12월28일 프랭크스 당시 미 중부사령관을 크로포트 목장으로 불러 이라크 전쟁계획에 관한 상세한 보고를 처음으로 받았고, 나중에 기자들에게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논의했었다"고 거짓말했다.

이 책에 따르면 2003년 1월초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에 나설 결심을 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그를 지지하다가 실각할 것을 우려했으며, 블레어 총리가 우선 유엔을 통한 해결책을 모색해보자고 요청하자 이를 받아들여 3월19일(이라크 현지시간으로는 20일)까지 전쟁 개시일을 늦춰야 했다.

부시 대통령은 나중에 블레어 총리에게 파병을 보류할 수도 있는 선택권을 주었지만, 블레어는 "함께 하겠다고 한 말은 진심이었다"면서 거부했다.

***체니와 파월, 이라크전쟁 놓고 극한 대립**

우드워드에 따르면, 딕 체니 부통령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서로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의견이 달랐다. 파월은 "체니가 이라크를 알 카에다 조직과 연계시키려고 지나치게 무리했으며 부정확한 정보를 사실로 취급한다"고 생각했다.

파월은 "체니와 그 측근들-핵심보좌관 루이스 리비, 국방부 부장관 폴 월포위츠, 국방차관 더글러스 페이스 그리고 파월이 페이스의 '게슈타포'로 부른 요원들-은 별도의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네오콘이 부시정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반면 체니 부통령은 파월이 자신의 인기만 생각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1년전 이라크 전쟁 성과를 축하하기 위해 그가 개최한 만찬석상에서 "파월은 골칫덩이이며 항상 우리가 하려는 일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비난했다.

***부시, "역사라...우린 모른다"**

우드워드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어떨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묻자, 부시 대통령은 "역사라...우린 모른다. 그때즘 우리는 다 죽어있을 텐데 "라고 대답했다. 부시의 '역사관'이 얼마나 천박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부시는 우드워드의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미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라크 전쟁을 하게 됐는지 알리기 원해서"라면서 "이 내용들은 다른 지도자들이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느낄 때 무고한 시민의 희생을 줄여주게 하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청사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 행정부 초기에 체니, 파월, 테닛, 라이스 안보보좌관 등 국가안보 핵심각료들이 논의할 때만해도 후세인을 외교적으로 약화시키는 방안이 주로 거론됐다. 그러나 월포위츠 부장관이 "이라크의 남부 유전을 확보하고 이 일대를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킬 반대세력의 교두보로 삼자"는 제안을 했다. 우드워드에 따르면, 파월은 이 제안을 "미친 짓"이라고 일축하고 부시에게 "신경쓸 거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 행정부는 전쟁을 불가피하게 하는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2002년 2월16일 CIA는 후세인 축출과 이라크에서의 작전활동을 지원하도록 지시하는 정보보고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당시 CIA는 이라크에 불과 4명의 정보요원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에게 "쿠데타로 후세인을 축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해 7월 일단의 CIA팀이 이라크 북부에 들어가 비밀공작을 위한 정지작업을 개시했다. 이 팀은 87명의 이라크인 정보원을 고용했다. 이라크인 정보원들의 암호명은 '록스타'(Rockstars)였으며, 이들은 미국에게 이라크 특별보안부대(SSO)의 인사명부가 담긴 CD롬을 포함해 이라크군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했다.

우드워드는 이러한 과정에서 "CIA는 '비밀작전이 비효율적이며,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지 않는다면 이라크내 정보원 조직이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사실상 이라크 전쟁을 이끈 단초를 제공했다"고 썼다. 또 하나 전쟁으로 가는 동력을 제공한 요인으로는 프랭크스 장군이 수립한 계획의 핵심이었던 '사전배치'였다. 이 계획에 따라 미 군부는 쿠웨이트로 미군 병력을 이동시켰다.

2002년 여름 부시 대통령은 대규모 미군 배치를 위해 비행장.기지,연료 공급선, 탄약저장고 개보수 등 걸프만 지역의 '예비 활동'에 7억 달러의 예산을 승인했다. 이 자금은 미 의회가 예산전용과 최종 비용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쟁 추가예산과 예비비에서 빼돌린 것이었다.

2002년 여름은 파월과 체니가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시기이기도 하다. 파월은 "미국은 이라크 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체니는 파월의 주장을 "시간 낭비"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우드워드는 <전쟁계획>에서 정작 부시 대통령이 전쟁 개시전 유엔 결의안을 얻어내도록 설득하는 데는 파월보다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의 역할이 더 컸다고 지적했다. 블레어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부시의 정책을 지지하지만, 유엔을 통한 외교노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호소한 것이다.

***부시, 2003년 1월 파월 제쳐놓고 전쟁 결정**

이에 따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라크 무기 사찰을 재개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점차 무기사찰단의 효율성과 사찰단 단장 한스 블릭스의 역할에 대해 인내심을 잃어갔다. 2003년 벽두인 1월에 부시는 라이스 보좌관을 크로포트 목장으로 불러 "시간이 우리 편이 아니다"면서 "아무래도 전쟁을 해야만 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시는 재선 전략을 브리핑하기 위해 크로포트에 와있던 칼 로브 백악관 정치담당 보좌관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열흘 뒤 부시는 체니, 럼즈펠드 그리고 주미 사우디대사 반다르 빈 술탄 왕자에게 이라크 전쟁 결정 사실을 알렸다. 반다르 왕자는 미국과 군사협조를 추진하면서 미국이 후세인 제거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을 경우 사우디에게 불이익이 초래될 것을 우려해 이라크 전쟁에 대한 또다른 지지자가 됐다. 파월 장관은 이 과정에 소외돼, 미국 주재 사우디 대사가 파월 장관보다 전쟁 계획을 먼저 알았다

럼즈펠드를 3시간 인터뷰한 우드워드는 그에 대해 "럼즈펠드는 구체적인 전쟁계획에 깊숙히 개입한 '국방기술관료'이며 체니와 월포위츠, 페이스 같은 럼즈펠드 부하들처럼 이라크 전쟁에 대한 필요성에 초점을 맞춘 인물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럼즈펠드는 단지 전쟁기술자였을 뿐, 두뇌는 못됐다는 지적이다.

부시는 또 이라크 전쟁을 결심하기 전에 라이스와 그의 오랜 공보참모 캐런 휴즈에게는 전쟁 결정 여부에 대해 물었으나 파월과 럼즈펠드에게는 굳이 묻지 않았다. 이들에게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뻔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부시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결정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파월의 반응을 우려해 아예 "이 문제에 대해 내 생각과 같은가? 전쟁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동의해주길 바라네"라고 말했다. 파월은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물론 각하를 지지하고 함께 할 것입니다"고 대답했다.

"91년 걸프전에서 이라크와 싸웠던 아버지 부시에게도 전쟁 결정에 대해 같은 질문을 했느냐"고 우드워드가 묻자, 부시 대통령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라크의 상황전개에 대해서는 함께 논의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는 "알다시피 그는 힘에 관해 조언을 구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아버지"라면서 "내가 호소할 아버지는 더 높은 곳에 있다"고 말했다.

우드워드는 이라크에 대해 아버지 부시가 아들 부시에게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말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아버지 부시는 '그자(후세인)을 다루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는 식의 조언을 하기보다는 '네가 겪은 일을 나도 겪어왔기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묘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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