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륙도’, ‘사오정’, ‘삼팔선’...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신조어들이다. 한국사회가 IMF를 겪으며 기존 의미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돼 회자되고 있는 단어들로 이는 어찌보면 한국사회에서 인생을 설계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각박한지 반증하고 있는 듯 하다.
작년에만도 한국사회 굴지의 기업들이 수만 명의 명예퇴직자를 양산해냈다. 통신회사인 KT는 지난해 단일 기업의 1회 감원규모로는 국내 기업사상 최대규모인 5천5백명의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최근에는 외환카드 직원 가운데 정규직 40%, 비정규직 70%가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휩쓸려 있는 상태다.
또 젊은층 중심으로는 회사생활 이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다. '투잡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발빠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의 변화에 대해 나름대로 '준비'하는 것일 터이다.
여러 이유로 회사에서 나가게 되는 많은 한국 사람들, 이들에게 퇴사 이후의 인생설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제대로 준비했는지 묻는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명예퇴직자 55인의 인생체험' <인생 2라운드>**
‘명예퇴직자 55인의 인생 체험’을 담은 <인생 2라운드>(가토 히토시 지음, 남소영 옮김, 오상 펴냄)라는 책이 번역돼 출판됐다.
90년대 초반부터 지속된 10년간의 장기불황 동안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수많은 명예퇴직자들이 있었으며 이들 또한 우리나라 명퇴자들의 애환을 똑같이 겪었다. 이 책은 이들 명퇴자들의 개인적 경험담을 담고서 명퇴자들과 퇴직후 40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인생 2라운드의 모델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 글은 <주간 요미우리>와 <요미우리 위클리>에 연재되었던 내용을 재편집한 것으로 제 2의 인생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 이 책은 전문가들의 제2의 인생설계에 대한 ‘충고’와 ‘교훈’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일반 명퇴자들의 삶의 모습과 그네들의 인생에 무릎 꿇지 않는 모습을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은 특히나 저자가 명퇴자들을 직접 취재하며 적어내려 간 글들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들의 고민을 잘 담아내고 있다. 물론 일본의 현실과 우리네 모습이 일견 다를 수는 있지만 명퇴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냄으로써 우리네 현실속에서도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다.
저자인 가토 히토시는 잡지 편집자를 거쳐 논픽션 작가로 독립한 이후 평생사업으로 일본의 샐러리맨과 그들의 퇴직후 인생을 조사하여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그들의 생활양식과 상황을 꼼꼼하게 묘사하고 신일본인론을 전개하고 있다.
***총 8 가지 큰 주제로 나뉘어 다양한, 새로운 인생 소개**
총 8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은 각 장들의 주제를 ‘모험, 불행을 딛고, 동료들과 함께, 창업, 봉사하는 새 삶, 은퇴와 꿈, 해외에서 시작하다, 나이는 상관없다’로 잡고서 55인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있다.
큰 주제별로 나뉘어져 있는 내용들은 모두 우리네 명퇴자들이 명퇴 이후에 구상하는 모습들과 유사한 부분들이 있어서 ‘그래 이런 인생 설계도 있네’라는 생각이 들 만하다. 하지만 일견 성공적으로 새로운 인생에 정착한 모습들만을 간략하게 그려내고 있어 아쉬움감이 없지 않아 있다.
8개의 큰 주제로 나뉘어져 있는 55인의 새로운 인생설계 가운데 간략히 3인의 인생설계를 소개한다.
***전직 은행원의 ‘잃어버리지 않은 20년’**
야마다 야스시게/ 1941년 생, 전 도카이은행 직원
야마다 야스시게 씨는 은행의 ‘체질’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전직은행원이다. 55세에 조기 퇴직을 하기 전까지는 좋은 은행원이 되기 위해 노력을 거듭했지만 보답은커녕 중상모략을 당했다고 한다.
야마다 씨는 50세에 제2선인 사무처리 부문으로 밀려나 일할 의욕을 잃었다. 또 은행의 기업윤리마저 무너져 가는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는 불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때마침 자격 소지자를 원하는 건설회사가 있어서 그곳에 파견되었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그는 55세에 그 건설회사를 사직했다. 그곳이 싫어서가 아니라 ‘도예’에 대한 꿈을 도저히 접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47세부터 취미 삼아 도예교실에 다녔는데 열심히 한 만큼 아마추어로서는 실력이 뛰어났다. 야마다 씨는 그 많은 자격증을 가지고도 다시 취직을 하지 않고 좋아하는 도예를 선택했다.
사표를 제출하자 기후현 가카미가하라시에 위치한 자택에서 구죠군 하치망초에 있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도방에 다니며 가마에 불 때는 일을 돕고 도자기 기술을 몸에 익혔다. 동시에 자신이 이끌어갈 도예 교실의 후보지를 물색했다.
그는 자신이 56세가 된 1997년 8월에 도예교실을 개설했다. 그의 겸손한 성격과 친절한 지도 방식은 물론이고 연금과 세금 및 부동산 상담까지 해줘서 평판이 좋아 곧 회원이 2백명을 초과했다.
사람들은 1990년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그러나 야마다씨는 40세부터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한 시간들을 회상하며 ‘잃어버리지 않은 20년’이라고 말했다.
***인간관계 공포증으로 퇴사한 후 안정을 찾기까지**
사이토 소시치로/ 1941년 생, 전 일본 IBM 직원
사이토 소시치로 씨는 일본IBM 경영기획부서에서 제품기획과 인원배치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그는 성격이 섬세하고 고지식해서 좀처럼 직장에 적응할 수 없었다. 사이토 씨는 언젠가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몰래 야간강좌에 다녀서 마흔 여덟 살에 ‘부동산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자동차 2종 면허를 땄다.
그는 결국 1992년 6월에 사직서를 냈고 그해 12월 말에 51세의 나이에 직장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실패를 여러 번 겪어야 했다. 50세를 넘긴 사람에게는 어떤 직업이 적합할까. 부동산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다녔던 학원에서 강사를 모집했다. 다행히 강사로 채용됐지만 곧바로 그만뒀다. 그러고는 경리를 배워야겠다는 결심으로 도쿄 도에 있는 직업훈련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역시 3개월후에 중퇴했다.
그런 뒤 예전 직장 동료가 임원으로 있는 일본IBM의 대리점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고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일하게 됐다. 그러나 그 일도 반년 만에 그만뒀다. 회사에서 두 번째로 ‘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해서 다음 차례의 명예퇴직자들을 대리점에 들여보냄으로써 그는 본의 아니게 저절로 밀려났다.
결국 그는 아내인 요코 씨와 함께 부동산중개업을 운영하기로 했다. 요코 씨도 남편이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활력이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기뻐했다. 사이토 씨는 또 53세에 다시 도쿄 도의 직업훈련학교에서 ‘주택서비스 학과’에 다녔다.
부동산업은 그가 51세에 일본 IBM을 명예퇴직한 지 2년후, 10월부터 시작했다. 그해에는 아는 이에게 소개받아서 겨우 두 건의 임대계약만 성사시켰다. 이것으로는 사무실 유지비도 조달할 수 없어 지출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 사이토씨도 불안했다고 한다.
그는 새해에 들어 간판에 ‘내부수리합니다’라고 끝에 덧붙였다. 예상외로 내부수리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 그래도 회사 다니던 시절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수입이지만 손님이 꾸준히 찾아와서 마음은 편했다고 한다. 새 출발한 직후, 야구에서 쓰는 말로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면 좌절감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부인인 요코씨도 회사에 다닐 때 심신증에 걸린 것 같았던 남편의 모습보다 수입은 적어도 지금의 모습이 훨씬 보기 좋다고 했다. 부동산중개업은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오랫동안 바라던 선술집 주인으로 변신**
호리 에이유 / 1947년생, 전 니혼여행 지점장
호리 에이유씨는 니혼여행에서 나고야 히로코지 지점 지점장을 지냈다.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난 호리씨는 40대 중반에 접어들었을 무렵부터 같은 세대의 월급쟁이들에게 고통의 시간이 다가옴을 예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이대로 나이를 먹으면 인건비가 급격히 상승해서 종신고용제나 연공서열제가 유지될 수 없고 기업으로서는 어떠한 방법이든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많은 기업이 ‘자회사 파견’ ,‘이적’, ‘임원정년’, 그리고 실질적으로 감봉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연봉제’를 도입하고 있다 .
호리씨의 회사에서도 이런 제도가 슬며시 도입됐고 후배가 선배의 상사가 되는 인사도 증가했다. 그리고 그가 50세가 됐을 때에는 나고야 번화가에 있는 세 지점의 회계단위를 통합하는 방침을 회사에서 내놓았다. 이로써 그는 회사를 떠나게 됐다.
그는 이미 조만간 이런 날이 닥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40대 중반부터는 일을 해야 살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하고는 친하게 지내는 선술집 체인점 주방장에게 언젠가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넌지시 말했다.
매일 오후 2시에 나와서 재료 나르기를 도우면서 생선 다루는 법을 배웠다. 익힌 음식은 조리할 때마다 맛이 달라지지 않도록 메모했다. 폐점은 오후 11시이고 뒷정리를 하고 새벽 1시에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잠이 들었다.
9개월간 배우고 나서 부인과 함께 꾸려나갈 수 있는 자그마한 점포를 찾아내고는 그곳에서 1999년 7월에 선술집을 개업했다. 부부 둘이서 일을 해보니 그럭저럭 잘돼서 걱정을 덜었다.
회사에 눌러앉아 있었다면 임원 정년을 눈앞에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조직에 매달려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질질 끌려갔을지도 모른다. “보잘 것 없는 가게지만 낭만이 가득 담겨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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