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없는 초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청년실업, 가족해체, 사회적 격차의 확대 등 국민 삶의 질을 위협하는 다양한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그동안 정부는 보수와 진보 구분 없이 복지 예산을 증가시켜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다양한 사회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된 해법을 찾아내야 하며, 이것이 지금 우리가 시급하게 복지대타협을 이루어내야 하는 이유다.
왜 복지대타협인가?
한국의 연평균 사회복지지출 증가율(′05~′15)은 11.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5.3%의 두 배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큰 확대를 보여 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OECD(′15년) 평균 사회복지지출 수준이 19%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0.2%로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니,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것은 사실이다. 이런 결과는 성장우선주의 패러다임인 이른바 '선 성장 후 복지'를 이유로 그간 정부가 사회투자에 소극적이었고, 그 결과 선진국에 비해 40~50년 정도 복지 지출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OECD에 의하면 우리나라 삶의 만족도 지수(2017년 기준) 항목 중에서 38개가 회원국 중 28위에 그쳤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향후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대와 관련 예산의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사회복지를 확대해야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방정부는 자체 지출만으로는 복지 확대가 어려운 만큼, '복지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복지 '지출'이 문제가 아니라, 지출의 '방식'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몇 해 전인 2014년에는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복지 파산(복지디폴트)이 불가피함을 선언했고, 복지 때문에 지방자치가 ‘위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몇 가지 근거를 살펴보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역할 분담이 필요한 이유
첫째, 사회복지 분야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역할 분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갈등이 매우 심각한데, 그 이유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능력에 비해 사회복지지출 부담이 너무 과도하기 때문이다.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광주광역시 기초지방자치단체 전체 예산 중 사회복지 비중이 평균 63%에 달한다. 대구, 부산, 서울도 50%가 넘는다. 사업비에서 지방의 부담이 지나치게 높고, 매년 급여액과 대상자가 확대되고 있다.
사회복지사업은 다른 분야에 비해 국고보조사업의 비율이 매우 크다. 2015년 기준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사업 중에서 91.9%가 국고보조사업이고, 지방자치단체 고유의 자체사업은 고작 8.1%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국고보조사업은 중앙정부가 추진하는데 지방자치단체도 예산 부담을 의무적으로 하고 있다. 사업 특성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일부 부담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나, 그 예산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이 문제다. 예를 들어 어르신들을 위한 기초연금의 경우, 일정 기준에 도달한 어르신은 모두 기초연금을 받는다. 여기에 지출되는 비용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분담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중앙-지방 간 부담 수준을 결정하는 국고보조율이 있는데, 이것이 정해지면 부담해야 할 예산은 지방자치단체가 의무 지출(매칭펀드)을 해야 한다.
문제는 중앙정부가 사업을 결정하고 재원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부담하도록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예를 든 기초연금의 경우, 전국적이고 보편적인 사회수당이다. 전국적인 국가 사무의 예로는 국방이나 외교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복지 부문에서 보편적 수당이나 공공부조와 같은 소득보장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범위의 사안이다. 균일한 기준으로 공급되어야 하는 성격을 가진다.
특히 기초연금 실시와 같은 경우, 지방정부는 전혀 사업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위치에 있고, 일방적인 재정 책임만 지고 있다. 왜 지방정부가 관련 재정을 부담해야 하는지, 왜 그 사무가 지방의 업무가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 재정 분담 이전에 사무 배분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그에 따라 재정 분담에 대한 근거가 부실한 것이다. 중앙정부에 사무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데 비해 재정 책임은 중앙과 지방이 공동으로 부담하도록 함으로써 사무 책임과 재정 책임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중앙과 지방 간 부담 수준을 결정하는 국고보조율의 산정 기준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국고보조율의 산정 근거가 사업마다 다르고, 일부 사업은 규정조차 없으며, 재정 책임을 분담하고 있는 지자체가 보조율의 결정 과정에서 의견 수렴을 받는 과정조차 없다. 한마디로 기초지방자치단체는 국고보조율 결정 과정에서 철저하게 '을'이 되고 있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앙-지방 간 복지 사무와 복지 재정에 대한 배분 원칙이 수립되어야 한다. 중앙이 해야 할 것은 중앙이 책임지고, 지방이 해야 할 것은 지방이 책임지는 합리적인 원칙이 수립되어야 한다. 중앙과 지방이 공동 부담해야 할 국고보조사업이 있다면, 사무 책임 수준에 맞추어 국고보조율의 합리적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국적 사업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중앙정부가 책임을 지고, 지역적 사업의 특성이 있다면 지방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일관성 있는 국고보조율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고, 이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방정부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광역과 기초 지방자치단체 간의 복지 역할 분담이 필요한 이유
둘째, 사회복지분야에서 지방정부 내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지방자치단체 간의 역할 분담 필요성 때문이다. 기존에는 중앙-지방이란 이분법적인 생각으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인 광역과 기초간의 불합리한 관계는 크게 논의되지 않았다. 그런데 재정 분권 과정에서 광역과 기초 간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단순히 지방이란 이름으로 퉁 쳐서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핵심적인 쟁점은 현재의 지방세 구조에서는 자체 재원의 증가로 인한 혜택은 주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되는 반면에, 국고보조사업 등의 이양으로 인한 부담은 기초지방자치단체에 보다 크게 지워진다는 것이다.
현재 121개의 중앙-지방 간 기준보조율 사업 중에서 국비 100% 사업을 제외한 68개 사업에 대한 광역-기초 간의 기준부담률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국고보조사업 대응 지방비의 광역-기초 간 재원 분담에 대해 지방정부 간의 자율적인 협의와 조정이 필요하며, 복지대타협 과정에서 광역-기초 간의 재원 분담과 사무 배분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의 선심성 복지 경쟁 방지해야
셋째, 기초지방자치단체들 간의 복지 확대에 대한 조정과 조율의 필요성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사업 중 90%가 국고보조사업이고, 지방자치단체 고유의 자체 사업은 고작 10% 내외에 불과하다. 향후 중앙과 지방의 재정 분담 조정이 이루어진다면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사업은 더욱 확대될 것이고, 이는 지역의 특성에 맞는 사업 추진으로 이어져 지방정부가 지역 문제에 보다 효과적으로 개입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입장에서 사회복지사업 확대는 바람직하지만, 지나침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모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선거와 정치적 지지를 의식해서 선심성(포퓰리즘) 복지 사업을 추진한 사례가 있다. 지역의 복지 욕구는 여러 계층에서 다양하게 표출되는데, 특정 대상과 특정 사업에 복지 재정을 지출하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는 인근 지자체의 복지 사업에 자극을 받아 해당 지자체에는 꼭 필요하지 않은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적으로 복지 재정을 투입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현금성 복지는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이유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방 재정 악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고, 지방 재정의 총량에 따라 꼭 필요한 다른 사업의 축소를 야기할 수도 있다. 보훈수당과 같은 특정 수당의 경우, 지역에 따라 금액이 천차만별이어서 지방자치단체들 간에, 혹은 주민 간에 갈등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적정 급여액의 조정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자체의 자체 신설 복지 사업은 2015년 중앙의 유사중복 사업 정리 이후, 사회보장위원회가 신설·변경 협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지자체가 사업을 실시하겠다고 주장한다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지자체 자율에 맡겨두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지자체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측면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과도한 남용의 경우를 낳는다. 지방정부의 지속 가능하고 보다 질서 있는 복지 확대가 필요하며, 지역 주민의 욕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자율성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현재 이런 의미에서 복지대타협을 위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 간 재정의 역할·관리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넷째, 자치분권과 재정분권의 흐름 속에서 복지 사업 대타협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연방제 수준의 분권국가를 핵심 국정과제로 설정하였다. 2018년 3월 분권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고, 국세-지방세 간의 비중 구조를 7대 3으로 개편하는 내용의 재정 분권 혁신(2018.10.30.)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2017년 기준으로 20조 원 규모의 국세를 줄이고 지방세를 확대해야 한다.
이런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 간 재정 관계 거버넌스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시도했던 취약한 지방 재정의 부분적 보완에 그쳤던 수준이 아니라, 중앙과 지방 간 수평적 파트너십 관계를 형성하는 보편적 분권이 실시되어야 한다. 특히 '자치 복지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적‧보편적 사회보장은 중앙정부의 재정 부담을 키워 정부 책임을 강화하고, 지역적‧선별적 사업은 지방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광역-기초)가 합리적인 방식으로 역할 분담을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번 복지대타협은 전국 기초자치단체장이 모여 향후 재정분권 이후 지자체가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구체적인 전략을 논의하고자 하는 의미 있는 시도라는 점을 강조한다. 지자체의 여건에 따라 각자의 이해관계가 있지만, 주민의 실질적인 삶의 질이 향상되고 결과적으로 지역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방향으로의 노력임에 동의한다. 모쪼록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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