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는 아이부터 노인, 또는 망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사회복지사의 역할이고, 사회복지시설의 존재 이유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사회복지시설에서 이용인도 사회복지사도 존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복지관에서 훼손된 엄마의 인권
몇 해전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엄마(현 82세)가 서울로 이주한 후 낮 시간에 뭐라도 해보고 싶어하셨다. 사회복지사인 나는 주저하지 않고 집 근처 복지관을 추천했다.
용기를 내어 찾아간 노인복지관. 정규프로그램들은 신청 기간이 지났기에 언제나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물리치료실을 찾았단다. 여러 노인들이 다양한 물리치료 기계를 이용하고 있었고 엄마도 그 중 한 기계를 사용하고자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런데 그 곳에서 엄마는 보이지 않는 존재였나보다.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연하게 새치기를 거듭하는 노인들, 그리고 일정 시간이 되자 우루루 밖으로 나가면서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엄마의 자켓마저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떠난 노인들. 엄마는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을 투명인간처럼 대했던 노인들에게 한마디 화도 내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날 엄마의 자존심은 바닥을 찍었다. 엄마의 존엄이 훼손되었다. 누가 우리 엄마의 존엄을 지켜야 했을까? 엄마의 존엄을 지켜줄 책임은 누구에게 있었던 것일까?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일까? 복지관을 이용하던 기존 노인들일까? 복지관의 프로그램 담당자일까? 복지관장일까? 아니면 국가의 책임일까?
옷을 입을 선택권이 없다
지난 2011년 어느 아동시설에서 만난 아이를 기억한다. 그 아이는 축구를 참 좋아하는 아이였다. 늘 빨간색 월드컵 기념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너는 정말 축구를 좋아하는구나. 그렇지? 그 티셔츠를 자주 입는 거 보면 알 것 같아?"
그러나 그 아이는 나의 예상과 달리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을 선택권이 없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놨다. 자신이 옷을 선택하고 소유하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복지시설에서 개개인의 존엄보다 더 우선하고 있는 가치가 무엇이란 말인가? 사회복지시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이 이 아이의 존엄을 침해하고 있었던 것인가?
사회복지시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몇 달 전 어느 지역 사회복지사 대상 보수교육을 다녀 온 후 한 수강생으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최근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기 위해 준비 중인 지자체에서 아동양육시설 생활지도사로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였다. 아동친화도시 인증 관련 행사에 자신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놀라운 건, 아동들에게 공연 참석 여부에 대해 선택권이 주어진 적이 없었고,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수면권, 학습권에 심각한 침해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동인권을 지키기 위한 도시의 혁신적인 계획들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아동들이 수단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동들의 인권을 지켜주어야 할 사회복지사가 누구에게도 문제제기할 수 없었다. 혹 한다해도 전해지지 않을 거라며 가해자의 위치에 놓인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사회복지사도 아동도 존엄하지 않는 사회복지현장. 누구의 책임인가? 아동과 사회복지사의 존엄을 지켜줄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사회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도,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사회복지사 포함)도 존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사회복지시설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유엔의 '기업과 인권 프레인워크'를 아시나요?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좋은 툴(TOOL) 중 하나가 바로 유엔의 '기업과 인권 프레임워크'이지 않을까 싶다. 1970년대부터 기업의 다양한 인권침해 문제를 논의해오다가 2011년 6월에 비로소 이 프레임워크가 유엔인권이사회의 결의안으로 발표되었다.
여기에는 기업을 포함한 제3자에 의한 인권침해로부터 보호할 국가의 의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피하고 인권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등 인권 존중에 관한 기업의 책임, 사법적⋅비사법적 메커니즘을 포함하여 피해자가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구제책을 마련하도록 한 기업과 인권 정책 프레임워크(보호, 존중, 구제) 등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결의안을 토대로 중앙정부와 지자체, 공기업과 공공기관에게 인권경영을 권고했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공기업과 공공기관은 권고를 수용해 작년부터 경영평가에도 반영되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공기업의 인권경영을 추진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인권경영매뉴얼을 발간 보급했다. 인권경영매뉴얼에는 인권경영추진을 다음과 같이 4단계로 1) 인권경영체계 구축, 2) 인권영향 평가 실시, 3) 인권경영 이행, 4) 구제제도 마련을 제시하고 있다.
인권경영의 추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은 “인권 실천 점검 의무”이다. 인권 실천 점검 의무는 기업(공공기관)이 자신들이 생산하거나 제공하는 서비스가 인권적인지 점검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 과정이 인권적인지 살피고, 그 생산품이나 서비스를 생산/제공하는 모든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인권을 존중할 책임이 기업에게 있음을 확인하고 점검하라는 것이다.
사회복지 노동자여, 우리 모두의 존엄을 지키자!
이 인권경영을 사회복지시설에도 적용하자. 사회복지시설도 인권경영 추진체계를 참고하여 사회복지시설의 존재이유를 묻고 우리의 실천을 인권적 관점에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복지시설은 누구의 어떤 인권을 (국가로부터 위임을 받아) 보장하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누군가의 존엄을 보장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탐색해보길 제안한다. 그 과정을 통해 이용자도 사회복지사도 함께 인권적 역량을 키우게 될 것이다.
다시 묻는다. 사회복지시설은 왜 존재하는가? 이용자, 자원봉사자, 후원자, 사회복지사를 포함한 사회복지시설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자신이 서 있는 생태계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갖도록 지원하는 과정, 이것이 바로 사회복지시설의 존재 이유이다.
스테판 에셀은 말했다. "분노하라.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 이 말을 그대로 우리 사회복지사에게 전하고 싶다.
"사회복지 현장의 노동자여, 나의 존엄과 우리가 서있는 곳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의 존엄을 지키자. 이를 위해 우리의 활동을 인권적 관점에서 되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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