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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를 통해 보는 이탈리아 예술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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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를 통해 보는 이탈리아 예술기행

[신간] 괴테의 그림과 글로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괴테의 그림과 글로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생각의 나무 간)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1749~1832)가 37세의 나이였던 1786년 9월부터 1년9개월 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두루 여행하면서 쓴 기행문이다.

지난 98년 푸른숲 출판사에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제목을 국내 출판된 적이 있으나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을 하며 직접 그린 그림들이 단색으로 축소돼 실린 핸드북 형태여서 아쉬움을 주었다.

이 책은 원본을 최대한 살린다는 의미에서 확대 판형에 그림을 컬러로 싣고 99년 이 책의 번역으로 백상출판문화상 번역부문을 수상했던 박영구씨가 다시 가다듬은 유려한 문장에 품격있는 디자인과 편집이 어울어진 일종의 '예술기행집'이라고 할 수 있다.

괴테가 직접 그린 작품이 주로 등장하지만 이 책의 내용과 관계 있는 동시대 화가의 그림을 풍부하게 삽입해 이 책은 '읽는 책'이라기보다 '보는 책'의 느낌까지 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떨치고 바이마르 공국의 추밀 고문관으로 명예와 부, 정치적 지위까지 갖추고 있던 괴테는 자신의 서른일곱번째 생일날 파티가 끝난 며칠 뒤 모든 것을 뿌리치고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시인으로서 현실에 옥죄어 상상력 고갈을 느낀 괴테가 재충전을 위해 '위대한 학교' 로마로 탈출한 것이다.

괴테는 "내가 이처럼 놀라운 여행을 하는 목적은 나 자신을 기만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대상들에 비추어 나를 재발견하자는 것이다."라면서 이탈리아 여행에서 본 수많은 자연풍광, 고대유적 그리고 갖가지 건축물, 조각, 그림 등 예술작품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한편고 삶과 예술에 대한 그의 소회를 곳곳에 기록해 두고 있다.

1786년 9월16일 마차를 타고 이탈리아 북부 볼차노를 거쳐 베로나에 도착해 고대 기념물을 접한 소감을 괴테는 이렇게 썼다.

"원형극장은 내가 본 위대한 고대 기념물 가운데 최초의 것이었다. 그리고 보존은 또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원형극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 더구나 그 위로 올라가서 가장자리로 돌아다녔을 때, 나는 웅대한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원형극장은 텅 비어 있을 때는 구경할 게 못된다...구경거리가 같은 장소에서 자주 벌어지면 관람료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간이좌석이 마련되고, 나머지 군중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구경을 해보려고 애쓴다. 이러한 일반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이곳 건축가의 임무이다. 건축가는 분화구 모양의 경기장을 기술적으로 가능한 단순하게 만들어서 군중 스스로가 경기장의 장식이 되도록 했다...타원형의 단순한 극장 형태는 누구의 눈에나 아주 편안하게 느껴졌고, 각자의 머리는 극장 전체가 얼마나 엄청난 규모인가를 측정해주는 척도의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텅 비어 있는 상태로 보면 판단할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이 극장의 크기를 가늠할 수가 없다."

괴테가 베네치아를 구경하면서 쓴 일기도 흥미롭다.

"감동을 주는 그림을 보고 나면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나의 오래된 천성은 내가 특이한 생각을 하나 떠올려 주었다. 우리의 눈은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주변의 사물들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베네치아의 화가는 모든 대상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밝고 쾌활하게 보는 것임에 틀림없다. 금방 오물이 쌓이고 금방 또 먼지로 뒤덮이는 우중충한 곳이자 반사되는 빛마저 음울한 땅에서, 더군다나 비좁은 방에서 살아가는 우리 같은 북쪽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세상을 그렇게 즐겁게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없다.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연안호를 통과해 가는 동안 가볍게 하늘거리는 화려한 옷을 입은 곤돌라 사공들이 뱃전에 서서 푸른 하늘 아래 연녹색 수면 위로 노를 저어가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베네치아 파 화가가 가장 최근에 그린 최고의 명화를 보는 것 같았다."

***볼로냐에서**

"매일같이 보고 또 보는 일에 시간을 써왔지만, 예술이란 삶과 같은 것이다. 즉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더 넓어 지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하늘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새로운 별들이 계속 나타나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카라치, 귀도, 도미니친 등과 같은 화갇르은 후기의 행복했던 예술 개화기에 등장했지만 그들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판단력이 필요한데 내게는 그런 점이 결여되어 있고 또한 그런 요소는 점진적으로 서서히 갖추어질 수 있는 성격의 것들이다."

***로마에서**

"티롤 산맥을 마치 날아서 넘어온 것 같다. 베로나, 비벤차, 파도바, 베네치아 같은 곳은 충분히 둘러보았지만, 페라라, 첸토, 볼로냐 등지는 대충 훑어보았고 피렌체는 거의 아무것도 구경하지 못했다. 로마로 가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나 강렬했고 순간순간마다 더욱 높아졌기 때문에 잠시도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새로운 세계에서 친숙한 대상과 마주친다. 모든 것이 내가 상상하던 그대로이고, 또한 모든 것이 새롭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의 관찰 방식과 관념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나는 이곳에 와서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없고 아주 낯선 것을 발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의 기존 관념이 여기서는 아주 명확해지고 생생하고 유기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11월1일)

"이제부터 소식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하더라도 벗들의 너그러운 양해가 있길 바란다. 여행 중에는 누구든지 가능한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움켜쥔다. 날마다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판단하는 일로 바쁘다. 그러나 로마에 오니까 마치 아주 커다란 학교에 온 것 같아서, 하루 중에 본 것이 어찌나 많은지 그것에 대해 감히 이야기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니 몇 해 동안 이곳에 체류한다 하더라도 피타고라스 식의 침묵을 지키며 지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11월7일)

"글이나 말로 전해지는 내용이 아무리 믿을 만하다고 주장할지라도 그것은 극소소의 경우에만 해당된다. 어떤 실체의 고유한 특성을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정신적인 문제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단 어떤 대상을 명확히 봐두면 그것에 관해 책으로 읽든지 말로 듣든지 간에 모두 즐겁다. 전달받은 내용이 생생한 인상과 연결되기 때문이며 이제 우리는 생각도 하고 판단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787년 1월2일)

***나폴리에서**

"누구나 원하는 대로 말하고, 이야기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겠지만 이곳은 모든 것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뛰어나다. 해변과 만, 넉넉한 바다. 베수비오 화산, 시내, 교외, 성곽, 유곽, 그 모든 것이 말이다!...나는 나폴리에 넋을 잃고 매료된 모든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2월27일)

***다시 로마에서**

"...성체 축일인 어제의 장엄한 축제를 구경하는 가운데 저는 다시 로마인의 대열에 끼어들었습니다. 나폴리를 떠나는 것이 저로선 상당히 애석한 일이었음을 솔직히 털어놓고자 합니다. 수려한 경관뿐만 아니라, 산정에서 바다 쪽으로 흐르는 거대한 용암을 뒤로 하고 떠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하지만 오늘, 그 위대한 자연 경관을 향한 그리움은 벌써 수그러들었습니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볼 때는 꽤 인상적인지만 개별적으로는 몰취미한 요소로 인해 때때로 감각을 해치는 그 경건한 축제 때문이 아니라, 라파엘로의 도안에 따라 만든 양탄자를 구경한 탓이 큽니다. 그 양탄자는 저를 다시 더 높은 관찰의 세계로 데려다주었습니다."(6월8일)

괴테의 여행 경로를 따라가며 그의 글과 그림을 읽고 보느라면 역시 직접 경험을 해야 한다는 괴테의 말처럼 이탈리아 여행을 하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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