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2016년 11월 23일,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지소미아, GSOMIA :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을 왜 서둘러 체결했을까? 파기 통보 시한이 며칠 안 남은 현재, '지소미아 연장이냐 파기냐'라는 이분법적 결정에 앞서 이 협정 체결의 경위와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소미아는 군사대국으로 굴기(崛起) 중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동아시아전략과 연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일간 군사 공조관계를 만들어 동아시아에서 헤게모니를 유지‧강화하고 싶어하는 미국의 절대적인 필요 때문에 우리에게 체결을 권고(사실상 압박)한 것이 한일 지소미아다. 오바마 정부 마지막 해에 체결된 것이지만 중국의 군사적 굴기를 막아야 할 필요성은 트럼프 정부 와서도 변함이 없다. 따라서 미국의 국가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일 지소미아는 유지되는 것이 좋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5년 12월 28일 "한일간 위안부 문제는 이 협정을 계기로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라고 규정한 위안부 협정도, 사실은 그 해 가을부터 미 국무부 쪽에서 위안부 문제를 빨리 덮고 넘어가라는 사인이 왔기 때문에 서둘러 마무리 되었던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압박해 들어가기 위해 한미일 3각 협력을 강화하고 이를 군사협력까지 발전시켜야 하는데, 미국은 위안부문제 때문에 한일관계가 불편하면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위안부 문제의 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한 협정체결 직후 오바마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축하(사실은 감사)전화를 걸어 왔다는 것으로도 미국이 이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2015년 12월 위안부 문제를 '불가역적으로 해결'시킨 미국은 2016년 11월에 한일 지소미아를 밀어붙였다. 즉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의 헤게모니를 계속 강화할 절대적 필요에 의해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을 하나의 덩어리로 묶을 필요가 생겼다.
즉 한일 간 군사정보 공유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대중 견제‧압박 능력을 더 키우겠다는 계산에서 가깝고도 먼 두 이웃나라의 협력, 적어도 협력하는 모양새가 미국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미국의 국가이익 차원에서 관리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다. 위안부문제, 독도문제 등 역사문제와 영토문제로 불가근불가원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제 와서 지소미아의 연장이냐 파기냐의 문제가 대두되었을까? 2017년은 북핵문제가 악화일로에 있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독자적으로 대북정책을 전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의 동아시아정책과 대북정책 틀 안에서 남북관계를 운영했다. 그리고 한일간에도 지소미아 체결 이후 특별한 문제가 없었고, 또 미국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연장하거나 파기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2018년부터 한반도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남북관계가 해빙무드로 들어서고 미북간 대화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동북아의 긴장이 해소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본 아베 총리는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아베는 트럼프의 대북압박과 제재에 편승해서, 즉 북핵문제를 핑계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면 이를 핑계로 헌법 개정으로 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그러나 한반도 상황이 변화되면서 아베는 조급해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전시 일본기업의 겅제징용 배상문제가 나오자 아베는 이를 걸고 넘어지면서 올해 7월부터 한일 간 긴장 상황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국내정치적으로 보수우익의 결집을 통해 자위대의 해외출병을 가능케하는 쪽으로 헌법을 개정하려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함으로써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도발적인 행동을 하고 나오도록 유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거사문제에 대해 철면피하게 나오는 일본과 민감한 군사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가 지소미아를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이고, 그걸 파기하면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라는 등의 우려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미 간 군사정보는 강력한 한미 동맹관계 틀 안에서 오랜 세월 철저하게 잘 공유되어 왔다. 사실 한일 지소미아는 한미동맹의 하위구조이기 때문에 공유해야 할 정보의 범위가 좁고, 지리적으로 북한과 가까운 한국이 제공하는 북한 관련 군사정보가 일본에 더 필요하다.
한미동맹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미일동맹을 통해서 북한에 대한 군사정보를 공유하지만, 한일 지소미아를 통해 공유되는 북한 정보는 촌각을 다투는 정보로서의 가치가 있다. 한일 지소미아가 파기된다고 해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한미동맹은 우리도 필요한 것이지만 미국에게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효기간 1년, 매년 3개월 전에 특별한 말이 없으면 자동연장되는 한일 지소미아 존폐문제를 코앞에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일본이 과거사문제를 가지고 우리에게 경제적 타격을 입히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나아가려 했던 미국은 한일간에 끼는 것이 불편하다고 잠시 빠져있는 상황이지만, 이번 논란을 통해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미국이 조정해서 이 문제를 봉합한다고 할지라도 앞으로 한일관계에서 우리가 일본에게 끌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설사 지소미아가 미국의 압력으로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라는 반대급부를 받고 불가불 연장되더라도 지소미아는 앞으로 한일관계에서 우리가 유력하게 쓸 수 있는 카드다. 수출규제, 화이트리스트 배제라는 고통이 오히려 동북아시아에서 우리 외교의 입지를 키워 줄 수 있는 카드가 우리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연장이든 파기든 간에 동북아시아에서 칼끝을 쥔 우리가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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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북한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원광대 초빙교수(외교안보통일), 김대중평화센터 이사 등을 거쳐 현재 민주평통 상임위원, 민화협 정책위원장,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한반도경제통일교류위원회 부위원장,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북한의 기아>(역서, 2001) <북한인권문제 : 원인과 해법>(2012), <국경을 걷다>(2013), <정세현 정청래와 함께 평양 갑시다>(공저, 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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