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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인권'이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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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인권'이 만났을 때

[한권의 책] 만화가 10인, 인권위와 손잡고 <십시일反>

국가인권위원회와 만화가 10인이 손잡고 '차별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만화로 펼쳤다. 비슷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의미있는 작업이다.

***십시일反**

<사진1> 박재동 화백의 '그런 건'

1년전인 지난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에 10명의 만화가들이 모여들었다. 한겨레신문에서 시사만평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박재동 화백을 비롯해 손문상, 유승하, 이우일, 이희재, 장경섭, 조남준, 최호철, 홍승우, 홍윤표 등이 그들이다.

나름대로 '좀 바쁜 만화가'라는 공통점을 빼고는 관심있는 주제도 다르고, 그리는 스타일도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국가인권위의 제안으로 새로운 '공동 관심사'를 찾았다. '인권'이 그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각자 흩어져 인권문제,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내려 이제는 잘 알아차릴 수 없는 차별을 찾아나섰다. 그러다 이따금씩 모여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고, 함께 강의도 듣고 모자란 자료들도 인권위에 요구했다. 이렇게 1년동안 고생고생해서 나온 것이 <십시일反>(창작과비평사 간)이다.

<십시일反>. "열명이 모여 만든 책 한권으로 차별에 맞서겠다"는 의미가 담긴 책 제목이다. 동시에 이는 만화가 열명이 모여 한술 한술 퍼담아 뚝딱 밥 한그릇을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이상한 동물'들의 사회**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은 <십시일反>의 말미에 붙인 '이상한 동물'이라는 서평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 사회의 허위적 반인권 실상을 파헤쳤다. 이 책의 성격을 제대로 압축한 빼어난 서평이다.

"이성(理性)에 눈뜬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문화를 만날 때 서로의 장점을 주고받으려고 노력한다. 또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성숙하기를 기대하며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고 싸운다.

그러나 이성에 눈뜨지 못한 인간은 자기완성이나 성숙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스스로 우월하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애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남보다 내가 더 낫다는 점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확인하려고 남과 끊임없이 견주는 것이다. 자기 성숙을 위해 내면과 대화하지 않는 사람에게 스스로 우월하다고 믿게 해주는 것은 그의 소유물이며, 그가 속한 집단이다. 소유물과 소속집단은 인간 내면의 가치나 이성의 성숙과는 무관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사진2> 손문상 화백의 '지하철'**

홍 위원은 이같은 몰이성적 '물신(物神)'이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우리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은 인간의 내면적 가치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오직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에만 관심을 두고 서로 비교하면서 경쟁한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난다'라고 했지만, 그 말이 오늘날엔 통하지 않는다. 옛말에 비해 사람들의 곳간에 재물이 차 있는 게 분명한데 사람들은 옛날에 비해 여유있는 인심을 보이기는커녕 더 야박해졌다.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가 하나의 요인이겠지만, 경쟁의식이 더 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사회구성원들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대한민국 1퍼센트'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따위의 광고를 무심코 바라보고 있다. 남보다 많이 소유하면서 만족해하는 인간의 속성을 겨냥하고 있는 이런 광고에 대해 누구도 거부감이나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흔히 말하듯 가난은 그 자체로 이미 죄가 되었다. 죄진 사람에게 인권이 무슨 대수인가.

가난이 죄가 되는 사회에서 이렇다할 학벌이 없고 내세울 집안이 없고 '빽'없는 사람들은 경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장애인, 여성, 동성애자,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손쉬운 차별의 대상이다. 비장애인, 남성, 이성애자, 내국인들의 우월성을 확인시켜주기 위한 희생양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진3> 조남준 화백의 '누렁이1' 끝부분

홍 위원은 이같은 우리 사회의 물신주의가 제3세계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월감', 백인들에 대해선 비궐할 정도의 '선망' 의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하철에서 열자리에 앉아 있는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에게 '어이, 그래 한달에 얼마 벌어?'라고 거리낌없이 반말을 건네는 내국인들에겐 분명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우월감이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내놓을 장점이 없는 사람일수록 우월한 집단에 귀속된다는 점을 강조하게 되는바, 여기에 인종적 편견이 번질 위험이 자리잡고 있다.

실상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사람들에 대한 한국인의 우월감은 백인들에 대한 비굴한 태도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실제로 제3세계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표시하는 사람일수록 비굴할 정도로 백인들을 선망한다. 이주 노동자들에겐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기 위해 은근한 친근감을 드러내는 척하는 게 고작이지만, 백인에게는 받는 것도 없이 간까지 꺼내줄 양 친절을 베푼다.

그러한 점은 미국에게는 마냥 '바치기'를 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반면, 굶주리는 북한에 대해서는 '퍼주기'라고 떠들어대는 것에 부화뇌동하는 모습과 상통한다."

<사진4> 이우일의 '아빠와 나' 5

국가인권위원회는 올초 이라크에의 한국군 파병을 놓고 우리 사회가 뜨거운 열병을 앓을 때 국가기관으로서는 유일하게 '파병 반대' 입장을 밝혀, 보수세력의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던 '소신있는 인권기관'이다. 인권위와 10인의 만화가가 모여 만든 <십시일反>은 이처럼 분명한 소신체인 인권위가 존재하기에 탄생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대의 산물이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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