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 체제'가 출범했다. 대선패배후 선장을 잃고 표류하던 거대야당 한나라당에 새 선장이 생긴 것이다. 최병렬 체제의 출범은 향후 정국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최병렬, "이회창이 총선 유세장에 서 있기만 해도..."**
최병렬 체제의 출범은 내년 4월 총선체제가 작동하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최 대표는 26일 당선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경선기간중 한 '이회창 후보 삼고초려' 발언과 관련, "17대 총선에서 우리가 과반수, 혹은 과반수에 가까운 원내 제1당을 확보하지 못하면 나라에 중대한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한다"며 "지난 대선에서 과반수에 육박하는 지지를 얻은 이회창 전 총재가 내년 총선에서 유세장에 서 있기만 해도 승리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된다면 '삼고초려'가 아니라 '십고초려'라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내년 총선을 "내 정치의 최대 승부"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최대표가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에 얼마나 강한 집착을 갖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발언이다. 아울러 총선 승리를 위해선 가용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속내도 읽을 수 있다.
여당인 민주당은 신당창당을 둘러싼 내홍때문에 진로도 잡지 못한 채 헤매이고 있는 가운데 거대야당이 먼저 총선 레이스를 시작한 양상이다.
***네거티브 물갈이 가능할까**
최병렬 대표는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몇 가지 플랜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경선승리후 가진 대표 수락연설에서 "나라가 망하는데 한나라당은 뭘 하느냐는 원망과 비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고칠 것은 고치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자"며 "나라를 구하는 중심에 다시 서기 위해선 우리부터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노무현 정부 출범후 노대통령 인기가 급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평균 25%로, 신당창당 내분을 겪고 있는 민주당 지지율 30%보다도 밑도는 현상에 대한 위기감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즉 현재의 한나라당 체제로서는 아무리 노대통령 지지층이 이반해도 그 표가 한나라당으로 오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는 위기감의 표출인 셈이다.
최대표는 경선과정에 '한나라당 개조'를 위해선 "부도덕하고 낡은 수구세력의 청산"이 불가피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상향제 공천방식을 도입하기로 한 만큼 정치철새 등 많은 구세력이 청산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의 말대로 될 지는 미지수다.
한 예로 한나라당의 대표적 극보수로 네거티브 이미지가 강한 정형근, 김용갑 의원 등의 처리문제와 관련,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들을 '전국구'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내에서는 최병렬 대표체제가 가동하더라도 이 이상의 결단을 내리기란 힘들 것으로 내다보는 시선이 많다.
과연 공천 과정등을 통해 당의 네거티브 이미지를 얼마나 개량화할 수 있을지가, 최병렬 체제가 당면할 최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최병렬의 '보수개조론'**
최병렬 대표는 이와 함께 한나라당을 '건전 비판-견제세력'으로 이미지 변신을 도모하겠다는 생각이다. "한나라당을 정쟁집단이 아닌 정책집단으로 바꾸겠다"는 그의 연설에 내포된 구상이다.
최 대표는 평소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의 이슈를 선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실제로 한나라당 의원들 가운데는 각종 현안에 대해 '분명한 제 목소리'를 내는 스타일이다.
예컨대 재벌개혁과 관련해선 "내부거래와 분식회계를 엄단하고 상속-증여도 포괄 과세를 해야 한다"는 대단히 진보적 입장이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보수의 도덕성이 정립된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논란이 되고 있는 새만금 간척은 일단 중단한 뒤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고, NEIS는 전교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해야 하며, 노동정책은 노동유연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단호하게 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대표는 이처럼 한나라당이 건전 보수세력으로서 각종 현안에 대해 분명한 제 목소리를 낼 때만 비로소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아지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대표 당선후 기자회견에서 "남의 탓이나 하는 여야 관계가 아닌 새로운 패턴을 추진할 것"이라며 "청와대가 초청 안해도 체면 버리고 찾아가서 민생관련 문제를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국회운영 등에서 한나라당 대응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예고하는 발언이다.
하지만 최대표가 과연 그의 소신을 얼마나 관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나라당이 그렇게 쉽게 개조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틀러'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추진력을 자랑하는 최대표가 얼마나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길 수 있을지 예의주시할 대목이다.
***최병렬 대표의 과거**
최병렬 대표는 자신이 '수구보수'라 불리는 것을 대단히 싫어한다. 그는 자신이 '중도우파'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과거 경력을 보면 세간의 평가를 부인하기란 쉽지 않을 성 싶다.
최 대표는 언론인 출신이다. 1963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1985년 민정당 전국구의원이 되기 위해 조선일보를 그만 둘 때까지 22년간 조선일보에서 뼈가 굵은 말 그대로 '조선맨'이다. 그는 특히 광주 학살이 있었던 1980년부터 85년까지 햇수로 6년간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맡으며, '조선의 약진'을 주도한 인물로 조선일보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기간은 조선일보가 광주항쟁의 민주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며 전두환 신군부와 유착, 고속성장을 한 시기이다. 최 대표는 또 이 기간의 업적을 높게 평가받아 전두환 당시대통령으로부터 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발탁될 수 있었다.
노태우 정권시절에는 청와대 정무수석, 문공부장관, 공보처장관, 노동부장관 등의 요직을 거치며 활약했고, 김영삼 정권시절에는 PK(부산경남)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의 후광으로 서울시장 등을 지내며 지명도를 높일 수 있었다.
또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때는 이회창 등 4명의 후보 가운데 언론인 출신답지 않게 가장 돈 많은 '재력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는 당시 본인과 부인의 재산을 30억7천7천50만원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80평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와 점포 4개, 상업용 대지 등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장남과 차남의 재산내역은 공개하기를 거부해 주위의 눈총을 사기도 했다.
때문에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최대표가 경선기간중 '보수개조론'을 펼쳤음에도 실제 이를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최대표는 논리적인 성향이 강해 총선 국면에서 다이내믹한 맛을 없을 테지만 좌충우돌하는 노무현 정부와 민주당에 비해 안정감있게 당과 정국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혁명적 변화를 기대하기란 힘들다는 관측이다.
과연 최병렬 체제가 얼마나 자기개혁을 통한 지지층 확보를 할 수 있을지, 향후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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