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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과 대통령아들에게 똑같이 법 집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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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서민과 대통령아들에게 똑같이 법 집행해야"

<박재승 대한변협 신임회장 인터뷰> 국가보안법, 노동법 개정

강금실 변호사의 법무장관 입각으로 법조계가 벌집 쑤신듯 들썩이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의 또다른 관심은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으로 쏠리고 있다. 박재승 신임회장(64)의 출현이 그것이다.

지난 24일 대한변협 수장으로 선출된 박재승 신임 회장은 39년생으로 60대 중반 나이이나, 법조계에서는 386세대 못지않게 개혁적인 연장자들을 일컫는 '신386세대'에 속하는 인물로 알려져왔다. 이때문에 국내 법조계의 대표적 보수집단이며 변호사 이익단체로 알려진 대한변협회장으로 선출되자 '의외'라는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한변협에 노무현 같은 인물이 등장했다"는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최병모 민변회장 강권으로 대한변협 회장 출마**

박회장의 이력을 보면,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1939년 전남 강진군 출신인 박 회장은 1971년 사시 13회로 사법시험에 합격, 1973년 서울지법 판사로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뎠으며 서울지법, 제주지법, 수원지법을 거쳐 1981년부터 변호사로 일해왔다. 박 회장은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과 대한변협 인권위원을 역임했고,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 민간위원, 한겨레신문 감사 등으로 활동한 이른바 '개혁성향'의 변호사로 알려졌다.

2001년부터 서울변협회장 재직하던 중 최병모 민변회장 등의 끈질긴 권유로 서울변협회장을 마친 뒤 2년을 쉬다가 출마하는 관례를 깨고 지난 24일 단독출마해 대한변호사협회 42대회장으로 선출됐다. 그의 당선에는 젊은 변호사들의 압도적 지지가 큰 힘이 됐다.

박회장 출마를 강권하다시피 한 특검 출신의 최병모 민변회장은 지난 1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로부터 법무장관 제안을 받고 고사하며 강금실 변호사를 추천, 관철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앞으로 대한변협이 어떤 길로 나아갈 것인가를 감지케 하는 의미심장한 대목이기도 하다.

박 회장은 공약으로 내걸었던"비판과 감시 기능을 갖는 법률가 조직으로 변협의 위상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하듯, 취임직후 새로 구성된 집행부에 민변 소속 변호사를 4명이나 상임이사로 발탁했다. 그가 취임 일성으로 직업인으로서의 변호사보다 법률가로서의'재야 정신'을 강조한 것도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잘 알려진 박 회장의 일면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서민과 대통령아들에게 똑같이 법 집행돼야"**

27일 법조계가 강금실 법무장관 등장으로 야단법석일 때,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 5층 대한변협 회장실에서 프레시안과의 인터뷰를 가졌을 때도 박 회장은 예의 '재야정신'을 화두로 꺼냈다.

"국민의 기본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재야정신은 시대에 따라 달리 발현된다. 과거 군사독재시대에는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정권과 맞서기 위해서 재야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민주화가 된 상황에서 재야정신은 다른 모습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불완전하고 어떤 점에서는 사악한 속성도 가진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기에 어떤 정부에서도 권력 남용, 오용이 발생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앞으로 대한변협은 적극적인 법률감시자로서 법이 잘못운용되는 것을 시정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법률단체로서 거듭날 것이다."

박 회장은 '적극적인 법률감시자'로서 특히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법이 형평성에 어긋나게 적용되는 것에 특히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법치주의 하자고 말만 많았지 법을 지키면 손해본다는 의식이 국민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 아니냐"면서 "국민들의 법에 대해 이처럼 냉소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은 법 적용이 형평성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최고 권력자마저 법을 자의적으로 집행한다" 며 "우유를 훔친 일반인은 실형을 살고 수십억원의 뇌물을 받은 대통령아들은 형이 집행된 지 얼마되지 않아 사면하면 어느 국민이 법을 지키려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박 회장은 "법조인이며 인권변호사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통령이 된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처럼 사면권 남용 등 법치주의와 어긋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대통령 차남 김홍업씨가 아직 감옥에 있는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발언이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주문으로 해석가능하다.

***"노대통령, 절반이상 공감할 수 있는 개혁을 펴나가기를"**

박 회장은 최근 대북송금 특검법안이 한나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하는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되도록 말을 아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 등 권력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안들까지 대한변협이 구체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기는 곤란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그 대신"대한변협은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는 인권문제 등에서 법의 형평성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 대법관이 법무장관 후보로 거론되자 민변이 곧바로"과거 행적으로 볼 때 법무장관 후보로 적절치 않다"는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 구체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과, 대한변협이 다른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비록 요즘 젊은 변호사들이 많아지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대한변협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적 변호사들을 고려한 신중함으로 해석된다.

박회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특별히 바라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지역간, 세대간 갈등이 많고 사안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기 쉬운 구도지만 그렇다고 개혁을 안 할 수도 없다. 절반 이상이 공감할 수 있는 개혁정책을 펴나가릴 바란다"는 의미있는 답을 했다.

***국가보안법, 노동관계법, SOFA 개정 등에 적극 나설 것**

박 회장은 국민 기본권 수호자로서의 대한변협의 감시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변협의 조직,인사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상황실, 정책개발실 등을 신설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국가보안법, 노동관계법 등 불합리한 법 개정도 인권단체로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박 회장은 우선 개폐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국가보안법과 관련해선,"특히 자의적 해석이 남용되어온 찬양고무죄 조항 등 수많은 비판이 제기되어 왔음에도 전혀 변화되지 않는 문제조항들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노동관계법과 관련해서는"특히 노사자율협상을 가로막는 직권중재조항, 가압류 남용 등에 가시적인 조치를 이끌어내겠다"고 약속했다. 요즘 가압류 남용에 대한 노동계 및 국민의 비판여론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박회장은 이밖에 "직장에서의 여성차별, 장애인 이동권 보장, 형사소송절차 개선,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부패방지법 개정 등 국민 기본권과 관련된 모든 법률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전의 대한변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개혁 드라이브 움직임이다.

***"사법연수원 졸업하면 일단 변호사로 개업해야"**

나아가 박 회장은 국민의 기본권을 중시하는 법률가로서 요즘 법조계의 큰 논란이 되고 있는 법조개혁에 대해서도 소신을 피력했다.

법조개혁이라는 주제는 매우 광범위한 것이지만 박 회장은 "국민의 기본권을 직접 다루는 검사, 판사 임용제도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면서 "우선 법조일원화만이라도 도입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회장은 "고시성적과 사법연수원 성적으로 소수점 이하로 한 줄로 세우는 현행 판,검사 임용제도는 순전히 공부하는 머리만 좋으면 되는 불합리한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법관이라면 신(神) 바로 밑에 있는 직업으로 대통령도 심판하는 자리"라며 "대학생 뽑을 때도 비중있게 적용되는 구술시험 같은 것도 없이 남을 심판하는 법관에 임용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그 대안으로 '법조일원화'를 제시했다.

"법조일원화란 사법연수원을 졸업하면 일단 변호사로 개업을 하게 하는 것이다. 변호사로서 소장 작성, 법정 태도, 의뢰인과의 관계 등을 보면 판,검사로서의 자질같은 가려진 성품이 드러나 법조계에서 금세 평가가 나오게 된다. 그런 다음에 판, 검사로서 임용이 돼야 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박 회장은 그러나 법조개혁의 일환으로 거론되는 '로 스쿨'에 대해선 "로 스쿨 만들면 가르칠 사람이나 있느냐"면서 "법조일원화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양성부터 해 놓고 나서야 가능한 장기적 과제"라고 못박았다.

***법률시장 개방에 적극 대처할 것**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대한변협을 '법조계의 전경련'에 비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경련이 재벌들의 이익단체로서 기득권을 누리려는 의식이 강한 것처럼 대한변협도 변호사들의 이익만 대변하는 단체가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이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대한변협이 법률가 단체이면서 직업인으로서 변호사 단체라는 양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익단체로서의 대한변협의 시대적 역할도 달라졌다"라고 주장했다. 2005년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내 변호사들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이 큰 현실에서 이익단체로서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외국의 대형법률회사들이 국내 변호사들을 고용하면서 조세, 특허 분야 등 모든 영역을 휩쓸면 국내 변호사업계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면서 "법률개방은 국내 변호사가 잘 모르는 외국법 자문 등에 국한돼야 한다는 것이 변협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지나치게 급격한 법률개방은 '국내 변호사 고사와 국부유출'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개방 추세가 불가피한 만큼 박 회장은 서울변협회장 시절부터 특허연구원, 조세연구원 등을 상설해 6개월~1년간 국내 변호사들이 특히 취약한 조세, 특허 분야 교육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앞으로 조세, 특허 연구원을 조세, 특허전문대학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해야**

박 회장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도 변호사 규모가 적은 것이 아니냐는 외부의 견해에 대해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매년 1천명씩 사법시험 합격자가 배출되는 가운데 변호사 1인당 수임건수가 예전에 비해 절반 정도로 격감했다. 그러나 지식서비스에 대해 적절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은 별로 변함이 없어 국제화,개방화된 시대에 걸맞는 수준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든 실정이다.

일본이 우리나라 인구의 3배이고 매년 3천명의 사법시험 합격자를 배출하면 우리나라는 1천명은 돼야 하지 않느냐는 산술계산은 현실과 맞지 않다. 법무사, 세무사, 손해사정인, 공인중개사 등 소위 변호사의 영역을 침해하는 유사직역이 우리나라에는 너무나 많다. 법률 선진국 어디에 변호사 외에 이같은 유사직역을 두고 있나."

박 회장은 "이런 주장을 펴면 '직업이기주의적인 발언'으로 치부할까 걱정이 된다"면서도 "단독사건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합의사건은 변호사를 선임해야 소송이 가능하도록 하는 '변호사 강제주의'를 도입하고 승소 여부와 관계없이 내도록 돼있는 부가세에 대한 조정 등 변호사들을 위한 대책 마련에도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젊은 변호사들의 '개혁'과 '이익 대변'이라는 두가지 요구**

진보적 성향의 박회장이 대한변협 회장이 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해마다 6백50명 가량 쏟아져 나오는 젊은 변호사들의 절대적 지지가 큰 힘이 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판,검사에 임용되는 3백50명보다 3배 가까이 많은 1천명의 사법시험 합격자를 뽑는 현행 사시제도가 대한변협의 '청년화'를 이뤄냈고, 그 결과 박회장 같은 개혁적 성향의 인물이 대한변협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에게 쏠리고 있는 젊은 변호사들의 기대는 '개혁'과 '이익 대변'이라는 두가지 요구가 병존하는 형국이다.

박 회장은 2년 전부터 마라톤을 시작해 지난해 3월엔 마라톤 풀코스를 4시간23분 만에 완주할 정도로 체력을 겸비하고 있다 했다. 과연 그가 강한 근력을 바탕으로 국민의 기본권 수호와 변호사의 이익 대변이라는'두 마리 토끼' 잡기에 성공할지, 기대를 갖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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