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그룹 사운을 걸고 인수한 두산중공업(회장 박용성)에서 극한적 노사대립 위기가 발생했다.
특히 이번 노사갈등은 단순한 일개기업의 노사갈등 차원을 넘어서 연말대선을 앞두고 재계와 노동계간 힘겨루기 전초전 성격이 짙어, 그 결과가 각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두산중공업, 사상최초로 단협 자동해지**
두산중공업에서는 반년전에 회사측이 일방적으로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한 이래 노동법 규정에 따라 6개월이 지난 23일 0시부터 단체협약이 자동해지됐다. 단체협약 해지란 사실상의 노조집행부 활동중지를 의미한다. 단협해지가 효력을 발휘하는 순간부터 노조 집행부는 비공식 전임자까지 당장 생산라인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노조 사무실도 자동폐쇄된다. 노조는 존재하되 단체협약은 존재하지 않는, 대기업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두산중공업 노사간 긴장이 급속히 고조되고 있다. 노사는 양측 모두 실력행사에 돌입하기에 앞서, 26일 막판협상을 벌이기로 했으나 결과는 안개속이다. 위기의 두산중공업이다.
이같은 극한대립이 발생하기까지 그 갈등의 뿌리는 깊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2월 두산그룹 주력계열사가 됐다. 두산그룹이 OB맥주를 팔면서 모은 돈으로 공기업이던 한국중공업을 인수하게 되면서였다. 두산중공업은 공기업이던 한국중공업 시절부터 세계 발전설비와 담수화 시설 부문에서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알짜기업이었다.
두산은 IMF사태를 전후해 미국 맥킨지사의 컨설팅에 따라 가장 공격적 구조조정을 단행한 민간기업답게 곧바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두산중공업으로 회사 이름이 바뀌기도 전에 전체 직원의 16%에 해당하는 약 1천3백명에 대한 명예퇴직과, 임원 50% 축소, 연공서열제 파괴, 성과급제, 연봉제 도입 등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앞서 두산그룹에서 단행했던 구조조정의 리바이벌이었다.
노조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두산중공업 노조는 지난 87년 노조 설립이래 지난해까지 27차례에 걸친 파업을 했을 정도의 강성노조였다. 이에 2001년 3월 노조는 임금·단체협약 교섭을 금속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집단협약'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하면서 파업의 계기를 만들어 갔다. 회사의 답은 당연히 'NO'였다.
***박용성 회장 초강경 입장**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월드컵 열기가 한창 뜨겁던 지난 5월 22일 노조측은 기본협약을 무조건 수용하라는 통지를 보냈다. 이에 사측은 단협 해지를 일방통고했다. 두 기관차의 정면 충돌이었다.
노조는 이날부터 즉각 파업에 들어갔고, 회사측은 노조간부와 노조원 등에 대해 월급 및 재산가압류, 형사고발 조치 등으로 맞섰다. 파업은 장장 47일간이나 계속됐다.
47일간의 파업으로 하루 90억원대 매출 손실이 발생하고 있고 5백만 달러가 넘는 수출이 차질을 빚는 등 총 3천억원의 손실이 초래됐다고 사측은 추산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당초 올해 매출을 2조9천5백억원으로 잡았었다. 그러다가 지난 6월 파업 휴유증으로 이를 2조6천억원, 영업이익 1천억원 정도로 낮춰 잡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어려울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어렵게 파업이 끝난 직후에도 단체협약 협상이 제자리를 맴도는 등 노사갈등은 계속됐다.
두산중공업의 단체협약 협상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이유는 '월드컵 파업' 기간중 노조 간부 22명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등 1백여 명에 이르는 고소 ·고발을 취소하라는 노조의 요구를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노조측이 "무차별적인 노조 간부 탄압은 노조파괴적 행위이며 고의로 협상을 기피하려는 술수"라고 주장하는 데 반해, 사측은 "고소·고발, 징계건 등은 항상 임·단협 끝무렵에 결론짓는 부분인데 협상단계에서 이 건을 들고 나오는 것은 협상을 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는 등 평행선을 그어 왔다.
이같은 갈등의 장기화에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겸하고 있는 박용성 회장의 소신도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우리 사회에서 법과 원칙보다 생떼를 부려 일을 해결하려는 분위기를 고쳐야 한다"며 노조의 무리한 요구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막대한 피해를 입어가면서까지 회사측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조에 밀리다가는 끝장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그 결과 "해고자 복직, 고소·고발, 징계, 급여.조합비 가압류 등 현안과 임단협은 별개 사항"이라는 회사측과, "현안은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임단협 타결과 동시에 해결할 사안"이라는 노조측의 견해차는 평행선을 달려왔다.
그러던 중 23일 단협해지 시한이 도래했다. 그러자 노조는 당초 요구했던 단협안을 대폭 철회하고 22일 오후부터 시작한 쟁의행위 돌입을 위한 조합원 찬반투표도 일시 중단하는 등 유화적 모습을 보였다. 회사측도 단협 해지에도 불구하고 일정기간 집행을 보류하면서 협상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어서 26일로 예정된 막판 협상이 향후 고비가 될 전망이다.
***재계와 노동계의 전초전**
두산중공업은 2000년 2백48억원 적자에서 민영화 첫해인 지난해 2백51억원의 흑자로 돌아서는 등 비교적 성공적인 민영화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두산그룹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핵심역량으로 기대를 걸었던 두산중공업의 안팎 사정이 예사롭지 않은 시점이다.
재계는 이번 두산중공업 사태를 향후 노사관계의 풍향을 결정할 중요한 바로미터로 여기는 분위기다.
대그룹의 한 임원은 "차기정부에게 재계가 바라는 경제적 요구사항 제1호는 노동시장 유연화"라며 "두산중공업 사태야말로 앞으로 노사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여줄 가늠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말대선을 앞둔 현시점에서 전개되고 있는 두산중공업 사태가 재계와 노동계의 전초전 성격을 띄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이같은 재계측 입장에 대해 노동계는 두산그룹의 주력업종이던 서비스부문의 사업성격과 거대장치산업인 중공업의 사업성격이 다른 점을 들어 두산의 경영접근 방식에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서비스부문이야 인센티브제도등이 곧바로 도입가능하나 제조업의 경우는 여러 단계를 거쳐 도입해야 함에도 두산은 노조 등을 무시하고 일방적 통고형태로 구조조정을 단행해왔다"며 "현장을 무시한 일방적 경영독주가 계속된다면 갈등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오너그룹의 전환사채(BW) 편법발행에 따른 부당상속 및 오너지분 확대 의혹 등으로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게 된 데 이어, 그룹의 사활을 걸고 인수한 두산중공업마저 장기적 노사갈등의 늪에 빠져듦에 따라 두산그룹의 앞길은 먹구름만 가득해보인다. 위기의 두산그룹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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