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차기 권력구도를 확정짓는 중국 공산당 제 16차 전국대표대회(16전대)가 14일 폐막됐다.
16전대의 최대 화제는 장쩌민 국가주석(江澤民.76)이 퇴진하고 후진타오(胡錦濤.59)가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으로 뽑힐 것이 확실시되었다는 것이다. 폐막일에 실시된 당 중앙위원 선거 본투표에서 장쩌민 국가주석, 당 서열 2위인 리펑, 주룽지 총리 등 현행 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후진타오를 제외한 전원이 재선임되지 않은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15일 열리는 제16기 1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후진타오를 총서기로 정식선출할 예정이다.
***실상은 '장쩌민 1인독재시대'의 개막**
외형상으로는 '장쩌민 시대'가 가고 '후진타오 시대'가 열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도리어 '장쩌민 1인 독재시대'의 개막이라는 게 국제외교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외교전문가들은 공산당 서열 5위인 리루이환(李瑞環) 정협 주석의 퇴진을 이번 16전대의 최대 미스터리로 보고 있다. 그는 서구에서 중국의 의회인 전국인민대표회의를 장악하고 후진타오에 이어 2인자로 올라설 것이라고 예상해 왔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공산당 내부 개혁성향 인사들도 리루이환에 대해 장쩌민이 손도 대지 못한 정치개혁을 이끌 유일한 지도자로 기대해 왔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14일(현지시간) "장쩌민 주석이 중국에서 가장 정치개혁적 지도자인 오랜 정적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장쩌민의 후계자인 후진타오만 당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남겨두어 완벽하게 정권을 이양했다"고 전했다.
중국 소식통들에 따르면 장쩌민은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심복들로 가득 채운 새로운 권력구도를 창출하고 여기에 가장 걸림돌인 리루이환을 제거했다는 것이다.
그 대신 장 주석의 심복들인 쩡칭훙(曾慶紅) 정치국 후보위원, 자칭린(賈慶林) 베이징시 전 서기, 우방궈(吳邦國) 부총리, 황쥐(黃菊) 상하이시 전 서기 등이 차기 중앙위원회 후보 명단에 포함됐다. 이들은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돼 차세대 선두 주자로 부상하면서 장쩌민의 영향력 유지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리루이환은 장쩌민 등 공산당 원로들이 5년전에 70세로 설정한 퇴임연령에 못미치는 68세로 2년이나 앞두고 본의 아니게 밀려나게 된 배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리루이환의 측근에 따르면 지난달 친척들과 자신의 은퇴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의 한 외교관은 IHT와의 인터뷰에서 "리루이환이 장쩌민과의 협상 끝에 물러나기로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쩌민은 지난 여름 계속 권좌에 머물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는데, 리루이환도 함께 물러나면 장쩌민 자신도 당 총서기와 국가 주석 등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동의했다는 것.
***"중국에서 가장 개혁적이고 인상적인 지도자가 사라졌다"**
리루이환은 원래 직업이 목수이며 톈진 시장을 거친 노동자 출신으로 중국의 이너서클에 들어간 유일한 관료이며 그만큼 권위적인 공산당 관료의식을 탈피하고 유머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IHT는 "중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도자가 사라지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리루이환은 평소 장쩌민을 무시해왔다. 그는 고위외교관 모임과의 만찬에서 중국의 지도자들을 열거하면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다음에 장쩌민의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척해 참석자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리루이환은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중국 정부의 과격한 진압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했던 인물로, 이때부터 장쩌민과는 숙적으로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장쩌민이 권좌에서 물러나면 중국의 의회에서 강력한 정치개혁안을 추진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룽지 총리의 참모 출신으로 보이는 익명의 저자가 최근 출판한 책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리루이환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 잘 나와 있다.
당 존안자료에 접근할 수 있어 이를 살펴봤다는 저자에 따르면, 리루이환은 선거 확대와 국영매체의 검열 완화 등을 포함하는 정치개혁에 가장 적극적인 중국의 고위지도자로 언급돼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중국의 새 지도자들:비밀파일'이라는 영문자료도 들어있는데, 여기에서는 1986년 중국 전역에서 발생한 학생시위에 대해 리루이환은 온건한 대응을 촉구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재작년에 대학생들이 소요사태를 일으켰다. 그게 뭐 대수인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 대학생들에 불과하다. 군인, 노동자, 특히 8백만명의 농부들은 가담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리 야단법석인가"라는 것이 리루이환의 발언이었다.
이밖에 리루이환은 예술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 "당이 저지른 오류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후진타오 앞에 산적해있는 난제들**
리루이환이 정계 은퇴를 하게 되고 장쩌민은 막후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방식으로 중국의 차기권력 구도가 짜여지게 된 것을 바라보는 중국 안팎의 시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21세기에 걸맞는 중국의 정치개혁이 물건너 갔다는 것이다.
후진타오는 16전대에 이어 15일 개막되는 중국공산당 제16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당 총서기로 선출된 후 내년 봄 치러질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 주석으로 추대될 것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장쩌민의 통제아래 있는 후진타오가 눈앞에 산적한 각종 난제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선이 더 많다.
중국 소식통들에 따르면, 부패한 청나라의 유교관료주의와 전제. 봉건정치를 타파하고 집권한 공산당이 지금에 이르러선 명나라, 청나라 시대보다 더 부패해있고 인민들과 유리돼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도 정치개혁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 분위기다.
우선 "인사가 엉망인 것이 이번에도 드러났다"는 비판이 거세다. 일부 전문가들은 "능력과 실적은 참고사항이고 인맥이 우선"이라는 말이 중국 인민들에 회자될 만큼 이번 16전대야말로 78년 개혁개방후 최대 정실인사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중국경제의 상황도 겉으로는 크게 발전하고 있으나 인민 대부분이 의료비, 주택, 실업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의료비는 서구처럼 비싸졌고, 아파트가격은 폭발적으로 올랐으며, 실업 문제로 당 지도부와 정치에 대한 불신은 가중되고 있으며 지역간, 민족간 소득 격차도 점차 벌어져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서방쪽에서 중국의 차기지도자 후진타오가 개혁성이 별로 없는 인물로 일찌감치 한계를 긋고 있다. 중국의 앞날이 순탄치 않다는 '중국 위기론'을 해결할 주체세력이 보이지 않고 과거의 연장선에 있다는 평가다.
과연 50대의 젊은 제4세대로 권력을 재편한 중국이 서방의 우려와 달리 장쩌민 등 구세대의 영향력에서 탈피,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중국을 건설할 수 있을지 앞으로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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