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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제일 재수없는 감독, 조엘 슈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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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제일 재수없는 감독, 조엘 슈마허

작년엔 9.11테러, 올해는 저격살인범 때문에 개봉 보류

미국 영화제작사 20세기 폭스는 미국 워싱턴 교외에서의 연속 저격사건 때문에 다음달 15일 개봉 예정이던 조엘 슈마허 감독의 <폰 부스>(공중전화 박스)의 개봉을 당분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영화는 공중전화를 받던 사람들을 정체불명의 저격범이 무차별 인간사냥의 표적으로 삼는다는 내용의 스릴러물. 지나가다가 벨이 울리는 전화를 우연히 받은 이에게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저격당할 것"이라는 써늘한 목소리를 들려오고 실제로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와 살해된다.

***조엘 슈마허의 연이은 불운**

이 작품은 현재 미국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무차별 저격사건'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에서 영화사측이 '현시점에서의 개봉 부적절'로 판단, 개봉 보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사는 대변인을 통해 "오는 11월15일 개봉될 예정이었지만 일정 기간 연기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엔터테인먼트 전문지 '데일리 버라이어티'는 영화사 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1천2백만달러의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는 내년초에나 개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영화는 2년전 시나리오가 공개되면서 탄탄한 구성과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로 빅히트작이 될 것으로 예견됐던 작품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 전역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스나이퍼(저격범)가 이 시나리오를 본 것인지, 이 영화와 흡사한 인간사냥 행각을 저지름으로써 개봉 보류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실제로 지난 한달여간 스나이퍼에게 당한 12명 가운데에는 영화 스토리와 마찬가지로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걸다가 살해된 피해자도 있다.

로이터 통신은 17일(현지시간) 이 사실을 보도하며 "미국의 저격범이 그의 첫 번째 할리우드 희생자를 지목했다"고 표현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조엘 슈마허 감독은 할리우드로부터 '억세게 재수없는 감독'이라는 동정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에는 핵무기를 탈취하려는 테러리스트와 수사관이 대결하는 <배드 컴퍼니>(앤소니 홉킨스 주연)를 만들어 지난해말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9.11테러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개봉이 무기한 연기됐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올해 6월에야 가까스로 상영됐으나 결국 흥행에 참패했다.

지난 해에는 9.11테러로 당하고, 올해는 스나이퍼에게 연이어 당한 셈이다.

***슈마허는 할리우드의 최대 흥행메이커**

일각에서는 그러나 슈마허 감독이 이같은 비운을 겪는 것은 그가 할리우드계의 주류 감독답게 미국 사회 안팎을 흐르는 불길한 기류를 동물적 감각으로 읽어 영화화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정반대 평가도 하고 있다.

슈마허 감독은 <배트맨> 시리즈 3,4편과 <타임 투 킬>, <의뢰인>, <폴링 다운> 같은 히트작의 감독으로 국내 영화팬들에게도 이름이 익숙한 할리우드의 대표적 흥행메이커였다.

1942년 뉴욕생으로 집에 TV조차 없는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닥치는대로 영화를 보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는 뉴욕의 유명 디자인 학교인 파슨즈 디자인 스쿨을 졸업한 뒤 헨리 밴델 백화점 등에서 디스플레이 디자인으로 돈을 벌었다. 디자인 경력을 바탕으로 그는 의상 디자이너로 영화계에 입문, 우디 알렌 감독의 일을 돕다가 영화감독으로 전업한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1981년 코미디영화 <엄마가 작아졌어요>로 본격적인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그는 감독·원작·각본을 모두 맡은 두번째 영화 <DC 택시>(83) 등으로 코미디물에서 뛰어난 감각을 발휘했다.

93년에는 한국인 비하 내용으로 국내에서 물의를 빚은 <폴링 다운>을 만들었고, 이후 존 그리샴 원작의 <의뢰인>의 흥행 성공 이후 할리우드의 주류감독으로 자리를 굳혔다. 워너 브러더스의 배트맨 시리즈 세번째 영화 <배트맨 포레버>(95)는 기존의 배트맨 이미지를 전면수정, 오락적인 요소를 강화해 가족 단위 관객들을 끌어모았다. 존 그리샴의 <타임 투 킬>과 배트맨 시리즈 네 번째 영화 <배트맨과 로빈> 등도 그의 작품들이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그가 액운이 끼었는지 지난해부터 연이어 개봉 보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테러와 암살로 할리우드 휘청**

하지만 저주를 받은 것은 그뿐이 아니다.

지난해 9.11테러 때문에 테러를 소재로 다룬 죄로 개봉이 연기된 할리우드 영화들은 한 두편이 아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컬래터럴 대미지> 배리 소넨펠드 연출의 <빅 트러블> 등이 그것이다.

현실사건과 겹치는 바람에 타격을 받은 경우는 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만이 아니다. 어린 소녀의 납치사건을 그린 컬럼비아 픽처스의 <트랩트(Trapped)>도 당초 9월에 개봉을 강행했지만, 지난 여름 어린이 유괴사건으로 미 전역이 떠들썩했던 뒤라 예상대로 흥행에 참패했다.

<폰 부스>와 유사하게 또다른 저격범을 취급한 닐 버거 감독의 새 작품도 무사히 개봉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미 해병대 출신이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했다고 가정한 영화 <인터뷰 위드 어새신(살인 청부업자와의 인터뷰)>은 오는 11월22일에 암살된 케네디 사망 39년주년에 맞추어 11월15일에 공개될 예정이지만, 스나이퍼 사건이 그때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개봉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게 할리우드의 전망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속 사건의 연속으로, 할리우드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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