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용 수석은 들은 대로 막힘없고 거침없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일어서면서 원고를 잘 다듬어 달라는 인사를 할 때까지 그랬다. 인터뷰는 김태일 교수가 던진 "지역주의 화두"로 시작되었다.
▲ 광주시장 출마 선언한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 ⓒ프레시안 최형락 |
"지역주의, 넘을 수 있을까?"
"지역주의가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조장을 해대는 자들이 있어서 그렇지 조장만 하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해소된다. 별로 어려운 벽이 아니다. 그걸 팔아 이익을 취하는 자들이 확대 재생산하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뿐이다."
"명쾌하다. 김태일 교수도 그 점을 많이 강조했다. 지역주의에 편승한 기득권 수구세력과의 투쟁이 핵심이라는 얘기였다."
"대구와 광주의 보수성과 폐쇄성이 비슷하다. 지역 수구세력에 의해 보수성이 만들어졌다. 광주는 진보적 도시라면서도 매우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다. 보수 세력들이 일궈낸 문화다."
"김 교수가 제안한 '달빛 포럼(달구벌 대구와 빛고을 광주의 교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좋은 제안이라 생각한다. 그런 노력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실제로) 조그맣게 하고 있다고도 한다. (앞으로) 규모를 키워야 한다. 지리산에서 하면 좋겠다. 교류가 중요하다. 우리가 하는 교류는 대부분 행사 위주의 교류로 그치고 만다. 서로 이해관계가 걸린 교류를 해야 한다. 달빛 좋은 날 술 마시고 하면 좋긴 하겠지만 거기서 더 나가야 한다. 구체적 일을 갖고 해야 한다. 대구 직장인이 광주로, 광주 직장인이 대구에 가서 살아보는 것도 좋다. 교수들은 이동이 쉽지 않겠나. 1년에 30명 씩 교환 근무 해보는 거다. 영남대 전남대가 합의하면 된다. 서로 이해하게 되고 그런 식으로 달빛 교류가 구체화 되었으면 좋겠다."
김 교수가 던진 공을 정 수석이 다시 받아 던졌다. 대구의 김 교수가 이 공을 어떻게 받을지 궁금하다.
"참여정부 솎아낸 MB정부, 지역주의 극복 의지 있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10년 동안 대구 경북의 지역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다. 김대중 정부는 동진정책을, 참여정부는 TK 인사들을 주요 요직에 발탁하는 방식이었다. 지난 번 인터뷰에서 김태일 교수는 둘 다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참여정부에서 고위직 인사를 총괄한 정 수석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 "참여정부 때는 부산에 교차출마 했어도 당선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레시안 최형락 |
정 수석의 설명을 들으면서 불현듯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만지작거렸다던 '광주 부산 교차 출마' 카드가 떠올랐다.
"참여정부 때 광주 부산 교차 출마 얘기가 있었는데..."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에 나가라고 하셨다."
"어디?"
"광주에. 2004년에도 대통령이 "총선에서 지면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출마를) 고민을 해야 할 것 아니냐"는 말씀을 하셨다. 나도 고민이 됐고 당에서도 나를 계속 공격했다. 염동연 씨가 '두 사람(문재인, 정찬용)은 고고한 척 말고 나서라. 청와대에서 1년 반 일했으면 전선에 뛰어들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나중에 제안했다. '지역구도 혁파'가 대통령의 큰 뜻이니까 내가 부산에, 문재인 수석이 광주에 교차 출마 합시다' 대통령께서 그렇게 좋아하시더라. '드디어 답이 나왔다'고. 그렇게 얘기가 진행이 됐는데, 탄핵 때문에 다 물에 떠내려갔다. 내가 부산에, 문재인이 광주에서 나왔으면 재밌었을 것이다. 그 때 문재인 수석이 그랬다. '나는 광주에 가면 당선이 되겠지만 당신이 부산에 가면 당선이 안 될 텐데, 국회의원 문재인은 서울서 살면 되지만, 정치인 정찬용은 선거에서 떨어졌다고 금방 올라올 수도 없고 힘들지 않겠냐' 이런게 노무현 방식이다."
"정 전 수석은 전라도 사투리가 강하다. 교차출마 했으면 볼 만 했겠다."
"교차 출마를 했어도 당선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경상남도 거창에서 17년을 살았는데 그 때도 전라도 사투리를 많이 썼다. 17년 살면서 양쪽 사투리를 다 쓸 수 있게 됐다."
"거창에서 전라도 사투리 쓸 때는 어땠나?"
"처음에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영남 호남 접경이고 산골이어서 배타성이 있다. 처음에는 고통을 겪었다."
"어떻게 극복했나?"
"계속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거다. 나중에는 좋아하더라. 때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 서운해 했다. 정찬용이 '밥 문나'가 아니라 '밥 무거버렀어?'라고 해야 좋아했다. 나는 언어학을 한 사람이다. 말을 매우 중요시한다. 자기 말을 갖는 게 중요하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도 나오지 않나. '자기 말을 지키는 것은 감옥에 있는 죄수가 열쇠를 손에 쥐고 있는 것과 같다'고. 사투리도 지역의 정신을 담고 있는 소중한 말이다."
"MB, 과거 정부 성과 싹 독식하는 것은 모양새 없는 짓"
정찬용 전 수석은 참여정부의 핵심 인사다. 청와대 경력이 만만치 않은 그에게 이명박 정부에 대해 물었다.
"작년 연말에 이명박 대통령이 원전수출 한다고 급하게 UAE까지 갔다 왔다. 그런데 그게 참여정부 때부터 추진됐던 거라고 하던데?"
"정권은 계속 바뀐다. 하지만 정부는 계속 있는 것 아닌가. 원전은 참여정부에서 시작 했다. 원전뿐만 아니라 철도도 수출해보자고 했다. 프랑스와 KTX 계약할 때 앞으로 수출할 때는 같이 간다고 계약했다. 철도 말고 전기도 수출했다."
"정부가 계속되는 것이라면, 몇 년도부터 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정부 기록에 다 나와 있지 않겠나.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도 이 사업은 원래 참여정부 때 시작된 건데 우리가 이렇게 마무리 했다고 설명하는게 기본 아닌가?"
"기본도 못 갖춘 사람들이니까 기대하지 않는다. 정부 정책의 연속성에서 보면 그런건 밝히고 가는 것이 사람의 기본 도리고 대통령의 도리라고 언젠가 누군가는 얘기할 것이다. 88올림픽 유치한 주역들을 보라. 전두환 정부가 유치했고, 정주영 회장이 열심히 했다. 역사에 남고 알려진다. 월드컵도 누가 유치했는지, 4강 가는데 누가 공을 세웠는지 다 남는다. 그런 게 원칙이다. 그런 것을 싹 독식하는 것은 모양새 없는 짓이다."
정 수석은 인사가 "전문"이다.
▲ "정운찬 총리, 한나라의 지성으로서 해선 안될 짓거리를 많이 하고 있더라." ⓒ프레시안 최형락 |
"인재 중에는 나라를 부흥시킬 인재도 있지만 나라를 망하게 할 인재도 있다. 불행한 것은 우리나라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분들의 도덕성에 그렇게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 정부에서도 그렇지만, 찾아보면 그런 사례는 많이 있다. 대단히 우수한 인재라고 하는데 내용적으로는 안 그런 경우가 많았다."
"정운찬 총리도?"
"그 외에도 많다. 한 나라의 '지성'으로서 해선 안 될 짓거리를 많이 하고 있더라. 군대, 위장전입, 세금탈루, 자녀 문제 등. 그런데 대부분은 아무런 도덕적 부담감 없이 잘 지내더라. 모럴헤저드가 심각하다. 그래서 문제 되는 것이다. 나라 망칠 인재와 나라 살릴 인재로 구분돼야 한다. 그 구분이 엄격해야 한다."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노무현 대통령은 '적재적소'를 '적소적재'로 바꾸라고 하셨다. 자리를 먼저 보고 사람을 보라는 뜻이었다."
"정권이 바뀌면 정치적 인사가 불가피하지 않나?"
"정도의 문제지만 어느 정도는 용인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낙하산 논란이 나오는데?"
"낙하산도 좋을 때가 있다. 허장강, 박노식이 낙하산 타고 후방교란 하는 영화도 있지 않나?(웃음) 낙하산은 필요하다. 없앨 수도 없고 없애서도 안 된다. 필요한 곳에 투입해야 한다. 공모하면 70점 짜리는 오지만 90점 짜리는 안 온다."
"90점 짜리는 어떻게 했나?"
"삼고초려도 하고 강권도 했다."
"호남, 균형발전 정책 전면 폐기에 강한 거부감"
"세종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북한의 굶주린 애들 사진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가. 그런데 남한에서는 많이 먹어서 어린이 병이 생기기도 한다. 수도권은 과밀로 '말기암'에 걸려있다. 사회적 병리현상이 나타난다. 청소년, 주택, 교육, 환경의 문제가 한계를 넘어버렸다. 서울은 세계에서도 경쟁력 떨어지는 도시로 치부된다. 차량 속도도 느리다. 과밀로 말미암은 영양과잉 때문에 많은 병이 생긴다. 12% 넓이의 수도권에 인구의 반이 사니까 과밀로 문제점이 어마어마하게 생긴다. 반면 지방은 사람이 없어서 빈혈상태다. 과소로 인한 빈혈이다. 이것을 제대로 고쳐보자는 게 균형발전정책이다. 대표적인 것이 세종시다. 여야 합의와 헌재 재판을 거쳐 확정된 것이다. 그것을 몇 달 만에 뒤집어엎는 것은 맞지 않다. 세종시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입장은 앞날을 전혀 보지 않는 단견이다."
"호남에서는 세종시 수정 반대 비율이 높다. 왜 그럴까? 충청권 당사자도 아닌데. 정치적으로 봐서 그런가?"
▲ "세종시 논란? 수도권은 현재 말기 암에 걸려있다." ⓒ프레시안 최형락 |
"정부는 안 그럴 거라고 하는데?"
"자본이 어디 그런가. 이해관계에 따라 가는 것이지. 균형발전정책 전면 폐기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호남이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4대강 사업, 영산강은 다른 방식으로 할 것"
"얼마 전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박광태 시장, 박준영 지사가 준공식에 참석해 논란이 됐다. 민주당 당론과 다르다는 논란도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광역단체든 기초단체든 특별하고 확신에 찬 철학이 있지 않는 한 자기 지역에 예산이 수조 원이 온다는데 거부할 장사가 많지 않을 것이다. 물신주의의 망령들이다. 4대강 사업으로 누가 돈을 버냐 토목업자들이다. 나는 4대강 사업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현직 단체장들은 영산강 수질개선과 준설사업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던데?"
"영산강은 추월산에서 발원하는데 수원 자체가 약하다. 태백산에서 발원한 한강은 길게 와서 물이 좋다. 영산강은 '기럭지'가 짧아 수원이 약하다. 그런데 그동안 잘못된 개발 때문에 물길이 숨어버렸다. 그러니 '또랑'일 수밖에 없다. 영산강을 제대로 하려면 물길을 살려내야 한다. 그게 영산강 살리기다. 제 물길을 찾아줘야 하는데, 그냥 포크레인으로 6미터, 10미터 파내면 쓰나. 옷은 더우면 벗으면 되지만, 허리의 척추는 갈아 끼울 수 없다. 4대강은 척추이자 대동맥이다. 건드려버리면 안 된다. 언론악법은 다시 정권 잡으면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척추를 긁어버리면 고칠 길이 없다. 나라의 앞날을 어둡게 만드는 일이다."
"광주시장이 되면 4대강 사업을 보이콧 할 건가?"
"우리끼리 (그 예산을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할 수 있다."
"선거공약으로 걸 것인가?"
"그럴 생각이다."
"광주 선거 잘해야 한다…변곡점마다 중요한 메시지 보낸 곳"
"우리 식대로 4대강 사업을 하겠다"는 정 전 수석은 지난해 12월 21일 광주 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왜 출마했나?"
"광주 선거를 잘 해서 광주가 광주다운 도시, 이름 값 하는 도시라는 것을 전국적으로 알리고 싶다. 광주는 한국사회의 변곡점마다 중요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광주도 변해야 한다. 광주가 전국에서 개혁적 가치와 민주주의와 인권이 가장 잘 살아 있는 모범 도시가 돼야 한다."
"지역 반응은 어떤가?"
"(선거철이 아니어서) 지금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현재는 식자층에서나 관심이 있지 100만 유권자는 아직 관심이 없다. 식자층 사이에서긴 하지만 정찬용에 대해 참신한 사람이라는 반응이 있다."
"출마를 선언했으면 사람들에게 열심히 알려야 되지 않나?"
"그런 거 잘 못하겠더라. 자기 자랑도 해야 된다고들 하던데 머쓱해서 잘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러셨다. 참여정부 사람들이 대체로 그랬던 것 같다."
"이해찬 총리는 아주 적극적이었던 것 같은데... (웃음)"
"그 분은 다르다. 정치를 오래해서 정치물이 들어 있지 않나.(웃음)"
▲ "광주를 바꾸기 전에 경제의 틀부터 바꿔야 한다. 미국 일본 위한 '부산축'은 낡았다. 이제 중국 위한 '서해안축'이 중심을 맡게 될 것이다." ⓒ프레시안 최형락 |
"당선되면 광주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광주를 바꾸기 전에 경제의 틀부터 바꿔야 한다. 일본과 미국을 주요 교섭국으로 생각하면 부산축이 맞다. 그런데 낡았다. 50년간 집중돼 산업 폐해가 나타난다. 포항, 울산은 산업재해는 물론 자연이 파괴됐다. 부산축은 낡았다. 이제 중국 세상이 온다. 중국, 인도가 성장하고 있다. 당연히 서해안 축이 중심을 맡게 된다. 바다가 중심인 세상이 온다. 그동안 육지를 파먹었다. 그러나 이제는 남해안이다. 제주-부산-목포로 연결되는 남해안 시대를 열어야 한다. 육지는 1년에 두 철만 이용하지만 바다는 사시사철 '해먹을 수' 있다. 우리는 바다를 자꾸 무시해왔다. '뱃놈', '섬놈'이라고. 그런데 대통령도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섬놈'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구상을 가다듬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것만이 한반도가 50년 뒤에 먹고 살 성장 동력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총리실에 추진단을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
"이 구상을 이어 받는다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 이 정부 들어와 후속작업을 다 했다. 위원회도 구성했다. 위원장은 총리다. 그런데 싹 뭉개고 있다. 예산도 투여하지 않고 사문화 시키고 있다. ABR(anything but roh)은 곤란하다. 나라의 앞날에 필요하면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그런 철학을 안 갖고 있다."
"그와 같은 계획의 연장선에서 광주시장 출마를 결심하게 됐나?"
"문화중심도시라는 걸 노무현 대통령이 강하게 추진했다. 그런데 잘 안 되고 있다. 이 일을 성안하는데 고심을 많이 했다. 대통령과 함께 열심히 했던 내가 나서서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5+4' 통해 큰 틀로 큰 판을 만들자"
광주 시장 출마 선언을 했지만 정작 정 수석은 요즘 서울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다. '5+4 모임'(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 희망과대안, 2010연대, 민주통합시민행동, 시민주권) 때문이다. "큰 틀로 큰 판을 만들자"는게 정 수석의 생각인 듯 했다. 정 수석은 인터뷰 내내 "통 크게"를 강조했다.
"민주당 사람들과 자주 대화하나?"
"평소에도 서운한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박주선 최고위원이나 원혜영 의원을 자주 본다."
"민주당 지도부는 정국을 어떻게 보는 것 같나?"
"어렵게 보는 것 같다. 심각하게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돌파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는 무기력한 것 같다. 자신 없어 한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오랫동안 지켜왔던 당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독특한 카리스마를 갖고 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결정할 권한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협상을 해도 당 중심을 이루는 분들이 결정을 딱딱 해야 한다. 안 그러면 국민들이 실망한다. 민주당이 맏형이라면서 통합 원칙을 제시했나, 절차를 제시했나, 방법을 제시했나, 시기를 제시했나. 아무것도 제시 안 해 주고 있다. 누가 제시해야 하나. 몇 날을 새더라도 무엇이든 책임있게 결정을 짓고 가야한다."
▲ "민주당이 맏형이라면서 통합 원칙을 제시했나? 아무것도 제시 안 해 주고 있다. 민주당이 몇 날을 새더라도 무엇이든 책임있게 결정을 짓고 가야한다." ⓒ프레시안 최형락 |
"시간이 많지 않긴 하지만, 회사나 정부나 조직은 다 공통점이 있다. 데이터베이스를 많이 마련해 놔야 한다.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마음먹고 DB를 만들어야 한다. 청와대가 인사수석을 두듯이, 참여정부가 중앙인사위를 운영했듯이 당도 인사 관련 당료를 임명해 이 일을 전문적으로 시켜야 한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영입대상자 DB는 언론사에 많이 있다. 돈 주고 사면 된다. 다 살 필요는 없고 필요한 사람만 추려낸 뒤 보강하면 된다. 막말로 1000원씩 주고 뽑으면 된다. 다만 기준을 둬야 한다. 필요한 기능, 필요한 연령, 필요한 직업, 이런 걸 걸러내서 DB에 넣어둔 뒤 계속 보완해 가야 한다. 그래야 쌓인다."
"'이명박 정부 제어해달라'는 것이 국민의 뜻"
6월 2일 지방선거와 관련해 정 전 수석은 "'5+4' 중 '4'들이 노력을 더 많이 하고 '5'는 수용하려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정당과 시민단체들에게 고루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실현될지는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애써 '희망'을 가지려는 모습이었다.
"지난 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되면 우리가 잘 먹고 잘 살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뽑았다. 2년 지나니 착각이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는 마음대로 종횡무진 악정과 실정을 거듭하고 있다.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하는 게 야권이다. 그런데 아무도 제대로 못 걸고 있다. 말은 많은데 효과가 없다. 국민에게 어필할 수 있는 틀을 짜야 한다. (야당과 시민사회의) '5+4 합의'가 과연 실효성 있게 이명박 정부를 제어하는 데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의 뜻을 무시하고 2%의 부자들에게는 엄청 기분 좋은 정책 펼치고 98%의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속상한 정책을 쓰고 있다. 하다 안 되면 중도실용이라고 했다가 또 다시 역행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이명박 정부를 '뜻을 모아서 제어를 해주세요'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다. 그래서 '5+4'가 제대로 돼야 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국민경선제로 할지, 당원경선제로 할지, 배심원제로 할지. 그것을 여기서 합의해야 한다."
"길게 봐야 시간이 석 달 밖에 안 남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잘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5+4'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광주시장 출마 문제는 어떻게 되나. 민주당 출마인가, 민주대연합 후보를 목표로 하나?"
"민주대연합 후보를 목표로 한다."
"지난 10.28 재보궐 선거 당시 안산 케이스를 어떻게 보나?"
"거기서 민주당이 실수했다. 상대방이 발표내용을 누설했다는 것은 핑계다."
"맏형으로서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는 뜻인가?"
"포용했으면 훌륭한 정당이라고 국민들이 지지했을 것이다. 작은 걸 놓고 큰 걸 얻는 것이 정치 셈법이다."
"민주당 내부가 어수선하다. 정돈될 때 까지 기다려야 하나?"
"기다릴 시간이 없다."
"'5+4'가 역으로 민주당을 정돈시켜 줄 수도 있을까?"
"그것도 기대할 수 있다."
"'4'에 대해 어떤 기대가 있나?"
"NGO와 재야가 그동안 시절이 좋아서였는지 전투력을 많이 잃었다. 술도 마셔야 는다.(웃음) 작심하고 몇 사람이 헌신해야 한다. '5+4'를 통합의 틀로 확 밀어 넣어야 한다."
"'정치하지 말라'는 것은 '사람사는 세상 만들라'는 역설"
정 수석은 참여정부시절 문재인 실장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과 가장 토론을 많이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인사라는 일의 속성상 인사권자인 대통령과의 토론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였을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바보 노무현'과 '촌놈 정찬용'의 인간적 신뢰와 친밀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나?"
"그 양반 일 욕심이 많았다. 심지어 두 군데에 동시에 회의를 열어놓고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내가 레이건과 카터를 비교해 말씀 드린 적이 있었다. '카터는 자신이 모든 서류를 본다. 그러다보니 서류가 쌓였다. 미합중국의 중요한 서류 수천 개가 대통령 손을 못 거쳤다. 반면에 레이건은 매일 저녁 파티 다니느라고 서류 챙겨볼 시간이 없었다. 레이건은 "장관, 부장관들이 나보다 더 잘 알 것 아니냐"고 했다. 세상은 레이건이 일을 더 잘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대강 이런 취지로 말씀을 드렸더니 "나보고 어쩌란 말이요" 하면서 답답해하시더라. 그래서 "대통령이 다 하지는 말라는 얘깁니다"라고 다시 말씀드렸다. 대통령이 터놓고 들으셨기 때문에 그런 조언도 드릴 수 있었다."
"결국 대통령이 직접 다 챙기지 않았나?"
"임기 마지막까지 일일이 다 봤다. 어찌 그렇게 잘 읽는지 몰라."
"도덕적 순결주의 같은 것인가?"
"결벽증 비슷한 게 있었다."
"그런 점이 비극적 최후까지 연결된 걸까?"
"그렇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 만들기'라는 큰 화두를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했다. 그러나 '다 못 이루고 뛰어내린다. 여러분이 만들라'며 가셨다. 그 날 '정치하지 말라'고 하신 건 큰 역설이었다." ⓒ프레시안 최형락 |
"서거 소식 접하고서 어땠나?"
"머리가 하얗게 샌다고 하나? 머리 속이 텅 비더라. 어찌할 줄을 몰랐다."
"벌써 10개월 가까이 지났다. 이제는 좀 무뎌졌나?"
"세월이 약이다. 시간이 지나니 아픔도 가라앉고, 대신에 싸워야 할 일들이 보인다. 대통령은 여러 차례 나에게 정치를 하라고 하셨다. '17대 총선에 출마하라'고 하셨을 때다. 내가 '정치는 힘들기도 하고, 약간 협잡 기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노 대통령이 '그럼 나도 협잡 있는 사람이요?'하며 약간 짜증을 내시더라. 그래서 '대통령께서는 협잡을 세탁하시는 독특한 분'이라고 말씀 드린 기억이 난다.
결국 대통령 물러나시고, 오만가지 압박을 받으시다 4월 30일 검찰청에 출두하셨다. 그날 아침에 봉하마을에 갔다. 십여 명이 둘러앉아 차 마시고 위로해 드렸다. 권 여사는 계속 우셨다. 대통령이 여러 가지 얘기 하시다가 '여러분들 정치하지 마세요' 하시더라. '정치라는 게 참 힘들고 더러운 것입니다'라면서. 나는 '대통령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정치하지 말라 그러셨을까' 생각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때 '정치하지 마세요' 하신 말씀의 충격이 아직도 남아있다.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것은 우리에게 사람 사는 세상 만들라는 뜻이었다.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 만들기'라는 큰 화두를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했다. 그리고는 '나는 다 못 이루고 뛰어내린다. 여러분이 만드세요.' 라고 하고 가셨다. 그 날 '정치하지 말라'고 하신 건 큰 역설이었다."
정찬용 수석은 다시 전선에 나선 예비군 같은 느낌을 줬다. 전투라면 이골이 난 고참병의 여유와 이제 막 전선에 투입된 신병의 긴장감 같은 것이 같이 느껴졌다. 노무현 대통령만 돌아가시지 않았어도 지금쯤 남도의 어느 시골길을 걷고 있을 것이라는 말에서 '노병'을 다시 불러내고 있는 전선의 급박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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