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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푸어'더러 '하우스푸어' 되라고요?"

[시민정치시평] 투기집단 아닌 집 없는 서민을 위한 정부를 바라며

요즘 집이 있는 사람들 중 일부(하우스푸어)는 집이 있어 고통이고, 집이 없는 사람들(렌트푸어)은 세입자라서 너무나 큰 고통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새 정부의 주거정책은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 문제를 해결해 국민들이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근혜 정부는 인수위원회 단계에서부터 잘못된 인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인수위는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며 관련 규제를 정비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실제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분양가상한제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 처리를 강하게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야당의 반대로 해당 상임위원회에 법안 상정이 되지 못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집값이 계속 떨어져서 걱정', '부동산 경기가 냉각되어 비정상'이라며 분양가상한제뿐 아니라 부동산 투기와 건설사 폭리를 규제해 집값을 안정화시키는 최소한의 규제 장치들을 폐지해 나갈 기세입니다.

국민의 절반쯤이 집 없는 서민들이고, 열심히 일을 해도 빚을 내지 않고는 내 집 마련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따라서 부동산 거래를 정상화하겠다고 한다면, 무주택자들이 자신의 소득으로 집을 살 수 있도록 오히려 분양가가 더 낮아지도록 해야 합니다.

렌트푸어와 하우스푸어들이 바라는 것은 부동산 규제완화가 아니라, 기본적이고 지속적인 주거공간의 확보입니다. 이들은 △어렵게 마련한 1가구 1주택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거나 마련할 수 있게 해달라 △집을 마련하는 것이 정 어렵다면 지금 살던 집에서 전월세 폭등 없이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해달라 △또는 '시프트'처럼 낮은 전셋값으로 장기간 살 수 있는 공공 임대주택을 제공해 달라 △그 중에서도 요즘은 1~2인가구가 많으니 1~2인 가구 맞춤형 공공원룸텔이나 소형 임대주택을 제공해 달라 △또 대학생이나 1인 워킹푸어들은 꼭 주택단위가 아니라 '방' 단위도 좋으니 저렴한 월세에 살 수 있는 '공공 임대 방'을 적극 공급해달라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렌트푸어와 하우스푸어들이 바라는 것은 부동산 규제완화가 아니라, 기본적이고 지속적인 주거공간의 확보입니다. ⓒ뉴시스
누가 보기에도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와 바람이나 현실에서는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에는 권력층, 국회, 그리고 주거 정책을 다루는 이들 대부분이 집 부자들이나 투기꾼들이지 렌트푸어나 하우스푸어는 아니라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들은 집 부자의 눈, 부동산 투기의 기준으로 세상을 살지, 집 없는 국민들처럼 세입자의 처지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안중에는 세입자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지인들, 그리고 자신의 지지자들의 집값이 떨어지는 것이 걱정이고 집에 나오는 세금이 불만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집값을 올리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종부세·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집에 나오는 세금을 무력화시키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특히 집값을 건설자본이나 투기목적의 보유자가 맘대로 매길 수도 없고, 주변 시세를 상승시킬 수도 없게 되어 있는 분양가상한제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분양가상한제 하에서도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고 주택 공급량은 꾸준히 늘고 있어서 분양가상한제를 푼다고 해서 아파트가 분양이 잘되고 공급량이 더 늘어나지도 않을 텐데, 일종의 '상징 파괴'로 분양가상한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도 대부분 인정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상징 파괴에다가,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집값 상승의 계기 및 신호로 삼으려 하고, 또 재개발·재건축 지역에서는 조합원 분양분 부담은 낮추고 일반 분양분 분양가는 분양가상한제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건설자본의 달콤한 꾐수로 사람들을 자극하고 있고, 혹시라도 그렇게 하면 주변 시세도 뛰어서 집값의 상승을 어떻게 해서라도 꾀해보겠다는 투기꾼, 집 부자들의 집념이 분양가상한제 폐지를 마구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와 건설사는 지금과 같은 경기 침체기에 분양가가 높으면 미분양이 속출하게 되므로 분양가를 높게 설정할 수도 없다고 하면서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해도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양가 자율화 이후에는 예외 없이 가격폭등이 일어났습니다. 1998년 주택경기를 살리기 위해 취해진 분양가 자율화 조치 이후 서울 아파트 평당 분양가는 1998년 512만 원에서 2006년 1546만 원으로 8년간 3배 이상 급등했습니다. '고분양가→주변 집값 상승→이를 바탕으로 한 또 다른 고분양가'의 연쇄반응이 나타난 것입니다. 정부와 건설자본의 주장대로 분양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면(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윤추구를 최고목표로 하는 건설자본과 그들의 광고에 의존하는 일본 언론들이 오랫동안 분양가 폐지를 앞장서서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위험하고도 탐욕스러운 인식은 널리 퍼져 있어서, 박근혜 대통령도 '집값이 싸지는 것을 기대하고 집을 사지 않는 이들이 많아서 전월세난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즉 집값이 더 올라가야 사람들이 집값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전월세로 가지 않을 것이고, 집값 올라가니 어서 빚을 내서 집을 사면 전월세난도 줄어들 것이라는 황당한 인식입니다. '렌트 푸어'들에게 빚내서 '하우스푸어' 되라고 하는 것과 같고, 지금의 집값 하향 안정화가 비정상적이니 어서 집값을 더 올리는 것이 정상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죠. 참으로 한심하고 걱정스러운 대목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비정상적이라고 여기는 지금의 집값마저도, 다른 의미에서 여전히 매우 비정상적입니다. UN의 PIR(Price Income Ratio :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으로 UN은 3-4년의 연간소득으로 집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권고하지만 대한민국 수도권은 한 푼도 쓰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연간소득으로 집을 살 수 있는 기간이 10~11년 안팎이 걸리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지수를 거론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에서는 보통의 국민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아예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 버렸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현재 주택가격과 주택거래량이 하락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주택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명박-박근혜 집권 세력, 그리고 건설자본만큼은 모르는 척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거래 정상화를 위해서는 집값과 분양가가 더 낮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높은 분양가로는 실수요자인 무주택 서민들은 분양자격이 주어지더라도 자기 소득으로는 분양받을 수 없게 됩니다. 그나마 2005~2008년 마지막으로 집값이 오르던 시기에 중산층들이 2~3억 원씩 빚을 내서 집을 샀지만, 매달 이자만 150~200만 원씩 내는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것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또 분양가 상승은 무주택자들이 아니라 자금력을 가진 투기적 수요자들만 분양시장에 참가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 뻔합니다.

정부 정책으로 집값을 상승 또는 유지시키면서 서민들에게 빚내서 집 사라고 요구하는 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도 올바르지도 않습니다.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을 넘어서고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 문제가 심각한 현재 △공공임대주택의 획기적 확대 △전월세상한제 및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통합 세입자 보호 △1가구 1주택 하우스푸어들의 개인회생 지원(파산법 개정을 통해 집을 지키면서 빚을 장기간 나눠 갚도록) △저소득층 서민들에 대한 주거비 지원 확대 등 종합적인 주거안정 대책이 절실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올인'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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