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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화 비리'라는 음모론

[기자의 눈] 문제가 '가족 채용'인가, 文정부 노동정책인가?

서울교통공사를 시작으로, 공공기관 '가족 채용' 비리 의혹이 대형 쟁점으로 떠올랐다. 서울교통공사는 수도권 지하철 운영사인 서울시 산하 공기업이다. 논란의 핵심은 교통공사가 지난 3월 정규직으로 전환 채용한 1285명 가운데 108명이 기존 직원의 친인척이고, 나아가 공사 직원 전체 1만7084명 가운데 1982명이 사내 가족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16일 이같은 의혹이 처음 제기된 데 이어, 19일에는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국토정보공사에서도 기존 직원 친인척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공항공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정규직 전환 추진 1호 사업장으로 방문했던 곳인데, 이 곳에서 14건의 친인척 채용 사례가 있었다는 것이다. 국토정보공사에서는 지난해 6월 비정규직 284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는데, 이 가운데 19명이 기존 직원의 배우자·자녀·형제였다고 한다.

보수정당과 일부 언론에서는 이같은 문제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때문이며, 이 정책을 이용해 민주노총이라는 "강성 귀족 노조"(홍준표 전 한국당 대선후보)가 자기 조합원들의 배만 불리려 했다고 비난한다. 과연 그럴까?

문제가 됐던 서울교통공사의 '108명'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됐던 김모 인사처장 부인의 사례를 보자. 그가 회사 구내식당 종업원으로, 사실상 비정규직 형태로 고용됐던 것은 지난 2001년이다. 당시는 비정규직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을 때였고, IMF 사태 여파로 공공부문 정규직화는커녕 있던 정규직도 줄이던 판이었다. 당시 서울시장은 후에 국무총리가 되는 고건 씨였고, 고 시장 후임은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이 전 대통령 다음은 오세훈 시장 재임기였다.

'정규직 전환을 노리고 채용'된 게 아니니까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IMF 이후 시기에, 기존 직원의 아내가 공사에 추가로 채용됐다는 것은 고용 형태나 업무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 적절성을 검증해 볼 만한 일이다. 채용 과정만 '공정'했다면, 만 17년이나 한 직장에서 일한 사람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지 못할 이유는 없겠지만 말이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108명' 중에는 "구의역 사고 이전에 (정규직) 전환자로서 13년에 걸쳐 누적된 인원"이 34명 포함돼 있다고 한다. 이들이 채용되고 정규직 신분으로 전환된 것은 이명박·오세훈 시장 재임기다. 한국당의 주장대로라면, 이들 전임 시장들도 "민주노총의 권력형 채용비리를 방조·묵인"했다는 말인가.

문제의 핵심이자 본질은, 공공기관에서 알음알음으로 기존 직원들의 친인척·선후배·지인에게 비교적 손쉽게 일자리를 주는 잘못된 관행이 존재했고 지금도 일부에선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적폐 청산' 대상이다. 관행을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이 더 이상 통용되는 시대가 아니다.

서울교통공사나 서울시 측에서는 직원 가족이라고 해서 특혜를 준 바 없이 공정하게 채용했다고 해명한다. 회사 내 가족 비율이 높은 것은 사내 결혼이 많은 사정, 구 메트로·도시철도 통합 이전 양 공사에 흩어져 있던 가족이 통합 이후 '사내 가족'이 된 사정 등이 작용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채용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할 것이라는 신뢰를 가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게다가 공사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108명 중 70명은 구의역 사고 이전부터 지하철 시설 안전관리 업무를 하던 사람들이지만 38명은 그 이후에 공개채용을 거쳐 새로 선발한 이들이다. 구의역 사고로 '직접고용' 요구가 높아지고 관련 논의가 진행되던 때에, 직원 가족을 추가 채용한 것은 오이밭에서 군화 끈을 새로 맨 꼴이다.

일각에서는 이들 사업장 노조의 상급단체가 민주노총이라는 점을 비판의, 사실상 음모론의 소재로 삼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그럴듯하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장교·부사관 등 직업군인이나 경찰도 사내 가족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은 민주노총은커녕 노조 결성 자체가 불법이다.

공공기관이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고용의 안정성 때문이다. 이른바 '잘릴' 위험이 없다 보니 회사 측이나 상급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노조에 자유롭게 가입하는 게 가능하고, 기왕이면 조합원 권익을 더 강경하게 대변해주는 조직을 선택하는 것 역시 매우 자연스럽다.

따라서 민주노총 노조 사업장에서 고용을 불안정화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는 없다. 반대로 전반적으로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한 해법이고, 바로 그런 취지에서 도입된 것이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다.

이 정책에 따라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공공기관 직원들 가운데 기존 직원의 가족이 많은 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일 수 있다. 모수, 즉 분모가 되는 '전체 직원 가운데 가족 비율'이 높으니, 정규직 전환자 중에도 가족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서울교통공사 인사처장 부인 건에 대입하면, 문제는 그가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게 아니라 17년 전 직원 가족이 공사에 채용된 과정이라는 얘기다.

본질을 외면하고 "정규직화 비리"(19일자 모 조간신문 사설)라는 프레임을 씌우려 하는 것은 그래서 정치적인 주장이다. 물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전환에 반대하는 입장의 주장도 공론장에서 제기될 수 있는 하나의 정당한 정치적 의견이기는 하다. 다만 그러려면 '가족 채용 비리'에 대한 여론의 분노에 슬쩍 묻어가려 하지 말고 정정당당히 주장할 일이다. 문제는 '가족 채용'이지 '정규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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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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