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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부실한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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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안철수는 부실한 건축물이다

[기고] <안철수의 생각> 읽고 세 번 놀라다

책을 읽고 세번 놀랐다.

첫째, 국가경영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채 1년을 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온갖 설화(舌禍)의 공장인 공약집(?)을 과감하게 냈기 때문이다. 둘째, 생각의 주요 줄기 내지 틀이 부실하고, 고용, 복지, 교육, 의료 등 부문별 세부 정책들도 실사구시에 게으른 좌편향 학자들의 현실인식을 많이 수용하여 "안철수다움"을 잃었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중간 쯤에 위치한 줄 알았는데, 책을 보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중간 쯤에 위치한 것 같더라는 소감은 일리가 있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진보 논객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구절만 골라내어 일방적 찬사, 공감을 쏟아냈고, 보수 논객들은 책 내용이 아닌 다른 것으로 안철수의 인격을 어떻게든 폄훼하려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안철수의 착각이나 오판을 지적하면 평소 온건 중도적인 정치 성향을 보였던 많은 사람들이 사납게 볼멘 소리로 묻는다.

"그래서 안철수는 안 된다는 얘기 아뇨?" "그러면 도대체 누구죠?" "그래도 야권에 안철수 만한 사람 있나요? 안철수 말고 박근혜를 이길 사람이 누구죠?" "왜 비판만 하죠?"

졸지에 나는 이적 행위를 하는 자, 다른 후보를 우회적으로 지지하는 자, 안철수의 높은 인기를 시기질투하는 찌질이, 기성 정치권에 환멸을 느끼며, 획기적인 변화를 갈구하는 대중의 정서를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갑갑한 글쟁이 취급을 받곤 한다. 안철수에 대한 뜨거운 기대와 환호는 역사에 종종 등장하는, 미륵불이나 메시아에 대한 열망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는 대한민국에 좋지 않고, 야권에 좋지 않고, 안철수가 바라는 것 같지도 않다. 안철수가 이미지 조작 등을 통해 묻지마 지지를 결집하여 대통령이 되려고 했다면 절대로 자신의 가치관, 세계관, 비전과 정책 등을 상술한 책을 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농경적 마인드 내지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 마인드가 몸에 밴 안철수는 책을 통해서, 자신의 가설(비전정책)에 대한 평가, 비판을 구하고, 자신의 향후 진로를 물었다. 안철수는 이렇게 썼다.

"내게 기대를 거는 분들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고 내가 가진 생각이 그분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것인지, 또 내가 그럴 만한 최소한의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는 많은 분들께 우리 사회의 여러 과제와 현안에 대한 내 생각을 말씀드리고 그에 대해 의견을 듣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6쪽)"

당연히 대한민국과 안철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또 그 누가 됐든 차기 대통령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엄청난 정치적, 정책적 관심을 받는 이 책을 차분하고 꼼꼼하게 점검하고 비판해 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한다.


안철수 현상의 뿌리

▲ <안철수의 생각> ⓒ김영사
안철수는 이른바 안철수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자신에 대한 기대로 나타나는 것"(11쪽)

"저에 대한 기대는 민심을 대변하지 못하는 정당에 대한 불만이 제게 쏠린 것" "정당정치가 아니라 정당이 문제"(36쪽)


이는 대부분이 공감하는 진단 일 것이다. 그런데 5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총선 전에 야권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그렇게 되면 야권의 대선후보가 제자리를 잡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수순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총선이 예상치 않게 야권의 패배로 귀결되면서 나에 대한 정치적 기대가 다시 커지는 것을 느꼈을 때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 열망이 어디서 온 것인지에 대해서 무겁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좀 이상하다. 야권이 총선에서 승리했으면 (민심을 대변하지 못하는) 정당과 정치의 문제가 해소되나? 지극히 비생산적인 한국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해소되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안철수 현상의 절반은 지역에 기반한 거대 양당의 대립구도, 철지난 보수와 진보의 적대적 의존체제에 대한 염증의 표현이다. 나머지 절반은 야권에 마땅한 박근혜 대항마가 없어서다.

내가 알기론 초기 멘토 그룹이 안철수에게 제3당을 만들라, 4월 총선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라고 간곡히 부탁한 것은 안철수의 개인적 욕심을 챙기라는 얘기가 아니었다. 한국 사회의 만악의 근원인, 비전정책 경쟁을 할 필요가 없는 정치독과점 체제, 지역주의에 뿌리 박은 거대 양당의 적대적 의존 체제, 부실 정치의 뿌리인 부실한 정당과 황폐한 정치생태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을 적극적으로 받아 안으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십자가 고행이다. 안철수가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기에 몸을 던져 모세와 같은 역할을 해 보라고 요구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낡은 정치와 정당 구조를 혁파하고 정치의 신기원을 구축하는 것은 안철수가 5년짜리 대통령 하는 것 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일이다.

물론 이는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대역사이기에 안철수가 거부했다고 해서 감히 욕할 사람은 없다. 다만 몸을 던져 정치적 신기원을 열어제끼려는 책임의식과 결기가 부족한데 대해 아쉬워 할 뿐이다.

그런데 안철수는 이런 부탁내지 권유를 자신은 "개인적으로 무엇을 얻거나 무엇이 되겠다는 욕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한다. 이렇듯 책에는 안철수가 역사적 기회를 놓치고, 역사적 소명을 저버린데 대한 아쉬움이나 부채감을 찾을 수 없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은데 대한 부채감과 해명은 있었지만. 이런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안철수 현상을 낳은 민심에 안철수가 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후진적 정치와 정당 어떻게?

책에는 안철수 현상을 낳은, 후진적 정당 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이 흐릿하다. 안철수는 36쪽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권자들이 정당 위주로 투표를 하다 보니 정당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들 내부의 이해관계에 따라 후보를 공천하고, 정치인들도 국민보다는 소속 정당의 눈치를 봤죠. 그러니 정당 자체가 또 하나의 강고한 기득권이 되고, 민심에서 멀어지게 된 것" "정당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지지 정당의 후보라고 해서 무조건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냉정히 평가해서 투표하는 게 출발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과연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꼼꼼하게 따진다면 정당이 국민을 무서워하면서 유권자의 눈높에 맞는 좋은 사람을 영입하려 노력할 것이고, 그러면 정당정치가 복원될 수 있으리라 생각" "흠이 많아도 특정 정당의 '텃밭'에서 공천만 받으면 자동적으로 당선되는 구조에서는 정당들이 민심을 살릴 이유가 없어"

'묻지마 정당/진영 투표 하지 말고, 좋은 사람 찍으라'는 안철수의 주문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여 모든 언론과 지식인들이 줄기차게 주문한 것이다. 하지만 별무신통이었다. 이번에 안철수가 나서서 "지지 정당의 후보라고 해서 무조건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냉정히 평가해서 투표"하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꼼꼼하게 따져서" 투표하라는 주문을 한다고해서 얼마나 바뀔까?

물론 이는 훌륭한 청년 멘토, 영혼이 있는 CEO로서는 계속 강조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서 정치와 정당의 정상화 방안으로서 이런 식의 주문을 한다면 좀 무책임하고 나이브 한 것 아닌가? 순환출자 폐지, 문이과 통합, 국사·세계사 필수과목화, 튜더링시스템 등 아주 구체적인 정책 대안까지 얘기 하면서, 안철수 현상의 뿌리인 정치와 정당의 후진성을 혁파할 방안을 원론적으로라도 얘기하지 않는 것은 무척 의아하고 아쉬운 일이다. 지역주의와 결합한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득표제, 결선투표 없는 5년 단임 대통령제, 기형적 선거법과 정당법, 황폐한 정치생태계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 말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빠진 것은 책 지면이 좁아서가 그런 것 같지가 않다. 정치인 중의 정치인인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 정치와 정당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낮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정의에 대한 착각


안철수는 자신의 핵심 가치(시대적 과제)를 정의, 복지, 평화로 요약하였다. 정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개념화 하였다.

"정의란 같은 출발선에 설수 있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 경쟁 과정에서 특권, 반칙을 허용하지 않고 공정한 규칙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 운이 나쁜 패자도 재기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것"(115쪽)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8·15 경축사의 공정 개념 보다는 확실히 진일보 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라고 한데서 보듯이,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강조했지만, 패자를 재기할 수 있게 만드는 사회안전망 개념은 흐릿했다. 그런데 진일보 한 안철수의 정의 개념 역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결론만 먼저 말하면 정의의 핵심은 안철수가 말한 '출발선의 평등(공평한 기회)-반칙 배제-패자에 대한 배려(사회안전망)' 세트가 아니다. 결과 혹은 결승선에서의 합리적 격차(불평등)이다. 이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안철수 식으로 정의 개념을 잡으면 대한민국의 핵심적인 모순부조리가 잘 포착되지 않고, 당연히 제대로 된 비전정책이 잘 나오지 않는다.

사실 정의의 핵심은 경쟁 출구(finish line)=결과에서의 합리적 격차(불평등)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는 승자・강자의 권리/이익 수준과 패자・약자의 권리/이익(배려=사회안전망) 수준을 결정하는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내장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합리적 격차 혹은 승자도 패자도 억울함 없이 그 결과에 승복하는 사회적 상벌(incentive-penalty)체계는 많이 생산, 기여한 존재는 많이 먹고, 전혀 생산, 기여하지 못한 존재는 굶어 죽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안철수가 말한 대로 "패자도 재기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잘 갖춘다고 해서 해결 되는 문제가 아니다. 시장만 자유롭고 공정하게 관리하기만 하면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아무리 시장이 잘 작동해도, 또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도 국가가 전략적으로 배분해야 할 자원이나 가치는 많이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관료의 권능(특권)과 처우, 세금이나 형벌이 그런 것들이다. 따지고 보면 시장도, 규제도, 권능도, 세금도 하나같이 국가의 전략적 판단이 낳은 산물인데, 이 판단의 주요한 기준은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뒷받침하는 합리적 격차이다.

경쟁 참여자 혹은 승자와 패자의 권리/이익 수준을 정하는 시스템이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이라면, 안철수의 말대로 국가의 조세, 재정, 복지 정책을 통하여 패자부활전이 가능하도록 사회안전망을 깔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은 시장이 아닌 국가=규제를 통해서 분배되는 가치와 자원이 너무나 많다.

예컨대 양극화의 촉진자가 될 수도 있고, 양극화 완화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금융은 어느 나라나 철저한 규제 산업이다. 그런데 금융안정성, 건전성을 위해 은행의 대형화를 추구하다 보니 과점산업이 되었고, 이로 인해 엄청난 부가 은행으로 빨려갔고, 이는 금융산업(특히 은행)의 높은 수익(배당)과 종사자들의 높은 임금으로 나타났다. 애초부터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영역은 이 외에도 수두룩하다. 방송, 통신, 교육, 의료는 물론이고, 가계 자산의 70~80%를 차지하는 부동산-건설산업도 마찬가지다. 금융 규제와 부동산 관련 규제가 잘못 조합되면서 부동산 투기판, 거대한 불로소득, 가계 부채, 하우스푸어 문제 등이 나타났다. 이는 하나 같이 양극화를 촉진하는 요인들이다. 청년들의 최고 선망의 직업/직장인 공공부문과 전문 자격사의 권리, 이익(면허증 숫자, 독점권, 근로조건 등)도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결정한다.

한편 한국은 노동조합, 직능협회, 재벌, 행정사법 관료 등도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요컨대 한국은 공공성과 연대성을 쌈싸먹은, 공평(합리적 격차) 개념을 상실한 수많은 특수 이익집단에 의해, 또 혼미하고 무능한 정치의 방관에 의해 시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국가도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합리적 격차, 즉 공평 개념이 상실된 한국은 유달리 불로소득이나 경제적 지대가 넘쳐나는 사회이다. 자동차, 정유, 금융, 보험, 교육, 유통, 설탕 등 너무 많은 산업이 독과점이다. 당연히 소비자 선택권=공급자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너무 적게 생산, 기여, 부담하고 너무 많은 권리, 이익, 혜택을 누리는, 귀족 같은 존재들이 넘쳐나고, 이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원래 산업차원에서 적용되고, 노동의 양질에 따른 합리적 격차(직무직능급)를 당연시 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완전히 상실되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직장의 귀천이 있고, 직업의 귀천이 있다. 재벌대기업, 공공부문, 규제산업(금융, 방송, 통신 등) 종사자, 그리고 국가가 수량과 독점영역을 통제하는 전문자격사는 일종의 귀족이고,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은 천민이다. 이런 모순부조리가 패자에 대한 사회안전망만 잘 제공하면 해소되는 것인가. 사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핵심 중의 핵심 문제인데 안철수의 정의 개념으로는 이것이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소통과 합의 이전에 문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나라

대한민국은 고통, 불만, 단말마는 넘쳐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대체로 자신의 문제가 아니면 극히 둔감하거나 외면한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힘 있는 존재, 특수 이익집단, 편향된 이데올로기 집단의 문제 의식이 과잉 대표된다. 전체를 균형적으로 살피고, 풀 수 있는 문제와 풀 수 없는 문제를 분별해야 하는 정치와 지식사회가 혼미한 것이 결정적이다.

안철수 생각과 달리 대한민국은 문제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당연히 해법도 잘 모른다. 특히 문제해결의 중심고리(킹핀)를 잘 모른다. 킹핀은 모순부조리 전체를 알고, 그 연관구조를 알아야 하고, 이는 핵심을 찌르는 연속적인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다양한 부문, 층위의 전문가들의 소통・융합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데 이것이 잘 안되기 때문이다.

설사 킹핀을 안다 해도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소통, 공감, 융합을 강조하는 정치 지도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정치시스템의 부실 때문이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치적, 정책적 지식, 지혜를 생산, 축적, 공유하는 시스템의 핵심인 정당의 부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유효기간이 한참 지난 헌법,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과 부실한 지식사회(전문가, 학자, 언론)와 얽히고 설켜있다. 이런 총체적 부실이 안철수 현상을 낳았는데, 안철수는 문제의 뿌리를 제대로 보는 것 같지가 않다.

아무리 말 잘하는 사람도, 말을 길게 하면 오류와 편향을 수두룩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말' 때문에 황당하게, 혹독하게 당한 노전대통령 사례에서 보듯이 말은 원래 적대적 언론이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뒤틀어 버릴 수 있는 여지가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학습 성과와 주요한 정책적 견해를 상술한 책을 과감히 낸 것은 높이 평가받을만한 일이다. 이는 유력한 대선 후보를 두 번이나 하면서도 아직도 변변한 정책서 한권 내지 않는 박근혜 의원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안철수는 연단이 필요하다

<안철수의 생각>은 부실 건축물이다. 주요 건축 자재(부문별 세부 정책)들도 부실한 것을 의외로 많이 골라 썼고, 정의관, 현실인식, 정치관 등 생각의 주요 틀도 부실하다. 정책 각론을 자세히 뜯어보면 그가 (평화재단과 인연으로) 비교적 오랫동안 고민한 것 같은 대북(통일)정책 분야는 괜찮아 보인다. 그리고 그의 경험과 고민이 가장 많이 녹아 있는 경제민주화 부분은 그 어떤 대선 주자들 보다 참신한 시각과 아이디어가 많다. 하지만 이 부분 조차도 여전히 기업인의 좁은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국가경영자의 시각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통일과 경제민주화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체로 핵심을 짚지 못하고 있다. 또한 헛발질을 하거나, 곁가지를 건드리거나, 그 누구도 긍정도 부정도 할 수없는 '공자말'을 늘어놓고 있다. 고민과 공부가 한참 부족하다는 얘기다.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듯이, 국가경영 경륜이나 비전정책도 몇 개월 간의 정책 과외와 집중적 고민, 토론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비전과 정책도 오랜 고민과 숙성 기간을 요구한다. 따지고 보면 안철수의 정치적 매력도 몇 개월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안철수의 감동적인 인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안철수의 높은 인기가 높은 경륜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 정치권을 극도로 혐오하고, 획기적인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기에 안철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실한 건축물을 재건축 수준으로 리모델링하지 않는 한 실패한 대통령 명단에 이름 하나 추가할 수밖에 없다. 이는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안철수는 아직 젊고, 정치 경력 1년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호흡을 길게 하고, 경륜을 쌓으면 얼마든지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안철수라는 명품철이 강고한 모순부조리를 베는 명검이 되기 위해서는 뜨거운 불과 유능한 대장장이의 연단이 더 필요하다. 깨어있는 시민들, 전문가들의 비판과 조언이 많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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