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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미군 유해 송환이 美-베트남 수교의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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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미군 유해 송환이 美-베트남 수교의 계기였다"

홍익표 의원과 대담집 <평화의 규칙> 펴내…"변화에 저항하면 몰락"

7월 중순, 미국과 북한은 판문점에서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미국 유해 송환 문제를 놓고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과 폼페이오-김영철 고위급 회담 결과로 구성된 비핵화 워킹그룹(실무단) 회담도 조만간 개최가 예상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도 16일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 등이 방북을 시작했고,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준비 작업도 진행 중이다.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한반도 정세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최근 펴낸 대담집에서 북미 간 유해 송환 문제는 "북미 수교로 나아가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지난달 28일 발간된 <평화의 규칙>(바틀비 펴냄)에서, 대담 상대인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전사자·실종자 유해 문제는 단순히 그 가족 차원 문제가 아니고 미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국가적 정체성이자 인권 문제"라며 "북미가 유해발굴 및 송환을 적극적으로 진전시킨 뒤 김정은이 미국을 방문하면 모양새가 아주 좋을 것"이라고 말하자 동감을 표하며 "그 정도 되면 북미수교 단계로 나아가는 확실한 이정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특히 "미국-베트남 관계 개선도 처음에는 베트남전 사망 미군 유해발굴 문제로 시작했다"며 "이것이 계기가 돼 베트남과의 관계가 호전되고 양국 수교로 가게 된 역사적 경험이 있다"고 언급했다.

워킹그룹 차원의 논의가 예정된 북미 비핵화 문제에 대해, 문 교수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라는 표현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과감한 주문을 한다. 그는 "지난 2015년 7월 타결된 이란과 주요 6개국 간의 핵 협상에서도 'CVID'는 적용되지 않았다"며 "현실에 들어가면 CVID가 그렇게 쉽게 합의하고 도장 찍을 수 있는 간단한 사항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CVID를 명기하지 않았다고 북미 합의를 비판하는 것은, 핵 문제를 협상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북한으로부터 항복문서를 받아오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CVID는 부시 행정부 실무자들이 만든 용어이지 무슨 대단한 원칙이나 국제적 합의가 있어서 나온 게 아니다. 미국이 원하는 핵 폐기 방향을 일방적으로 담은 일종의 슬로건"이라고 설명했다.

"이걸 신줏단지처럼 생각하고 북한과의 모든 협상마다 'CVID 집어넣었느냐'를 따져 묻는데, 핵 문제 해결이라는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슬로건에만 매달리는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그는 꼬집었다.

그는 평화체제 논의에 있어서는 군사·외교적 보장보다 경제 교류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종잇조각에 불과한 조약과 협정보다는. 이를테면 평양을 비롯해 북한의 주요 도시에 맥도널드 햄버거 점포가 개설되고, 스타벅스가 들어가고, 미국·일본·유럽 관광객 수만 명이 북한을 여행하는 상태가 훨씬 더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담보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일민족 1국가 강박, 평화 침해될 수도…'핵 가진 통일 한반도?' 축복 아니다"

대담집에는 남북관계의 미래에 대한 전문가들의 자유로운 토론 내용도 그대로 담겼다. 문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남북관계 및 국제관계 전문가이고,. 홍익표 의원도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북한대학원대 교수를 지낸 북한 전문가 출신이다. 대담을 진행하고 정리한 이는 김치관 <통일뉴스> 편집국장이다.

홍 의원은 "역대 정권의 경험을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통일 문제를 앞장세울 때일수록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가곤 했다"며 "그래서 저는 통일 문제가 화제로 떠오르면 '지금은 그냥 통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답하곤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통일 문제가 전면에 나서면 필연적으로 '누가 주도하느냐', '어느 체제 중심으로 되느냐' 이런 논의가 나오지 않을수 없다"고 이유를 댔다. 홍 의원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재임기간 중 통일을 가장 적게 언급한 분이 누군지 아느냐? 김대중 대통령이다"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통일은 단일민족국가, 연방제, 낮은 단계의 연방제, 남북연합(이라는) 4가지 길이 있다"며 "하나의 주권을 가진 국가가 되는 것만이 통일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히면 평화와 공존이 침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우리가 통일을 '주권을 하나로 합하는 것'만으로 상정하지 않고, '주권국가 간의 연합'으로 규정하면 평화공존과 통일은 병행 가능한 것"이라며 "김대중 대통령의 뜻도 이것이다. 남북연합은 '사실상의 통일'"이라고 말했다.

▲ <평화의 규칙>(문정인·홍익표·김치관 지음, 바틀비 펴냄) ⓒ바틀비
섣부른 오해는 금물. 문 교수가 '통일 하지 말자'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남북연합은 거쳐가는 단계"라며 "법적·제도적으로 하나의 주권을 가진 단일 정부를 만들고 싶으면 남북 주민이 다양하게 문제를 논의하고 투표에 부쳐야 한다. 그러려면 그 이전에 충분히 교류하고 자유 왕래하면서 신뢰가 만들어지고 경제적으로도 긴밀하게 연관돼야 한다. 여기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통일은) 우리가 결론내릴 사안이 아니고 우리 후대들이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문 교수의 전제는 "흡수통일이나 무력통일은 우리 국민이 원하는 방식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통일이 '후대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 지금 당장 남북한 주민 총투표 같은 방식으로 통일을 달성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지극히 '상식적'인 설명을 했다.

"지금 같으면 북한 체제에서 투표라는 것은 100% 같은 방향으로 나올 텐데, 그럼 그게 투표겠느냐? 남한과의 대결이지. 현실적으로 북한도 어느 정도 민주주의가 정착돼 주민들이 각자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할 수 있는 상태가 돼야 남북이 동시에 국민투표를 할 수 있다."

'통일은 도둑처럼 올' 것이라는 주술적 전망과, 이를 위해 '통일 항아리'를 미리 만들어 돈을 쌓아놓아야 한다는 조바심보다 너무나 현실적인 접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 교수를 '이상주의자'로, 도둑·항아리론(論)을 '현실주의'로 불러온 관행이 의아하다.

문 교수는 덧붙인다. "환상을 깨야 하는 게, 핵을 가진 통일 한반도라는 것은 우리에게 결코 축복이 아니다. 그건 재앙"이라고 그는 말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팬들을 시무룩하게 만들 이같은 일침에 대해 그는 "주변국들이 계속 문제를 삼을 거고, 또 한국이 핵을 보유하면 일본은 가만 있겠느냐"고 또 한번 '팩트 폭행'을 감행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한반도 주변의 군비 경쟁은 끝이 없는 것이고, 동북아에 핵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면서 강도 높은 대결과 전쟁 위기만 고조된다"며 "이게 바로 냉전 시대의 국제관계다. 평화를 원한다면서 전쟁만 준비하던 구시대의 규칙이다. 우리는 '평화의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자"고 말한다. 책의 제목이 여기서 나왔다.


▲문정인 특보와 홍익표 의원 ⓒ바틀비

"기존 주류 이론, 강대국 힘의 논리 정당화하는 세력균형론 벗어나자"

대담자들이 책의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강조한 주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문 교수는 "기존 주류 이론, 노멀 사이언스 패러다임의 교체는 이 주류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발생할 때 생겨난다"며 "냉전 대결의 관점,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생명선이고 남한은 미국 핵우산을 쓰거나 한반도에 전술핵을 들여와야 한다는 관점으로 설명이 안 되는 현상들이 도처에 나타나고,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과거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조금씩 균열을 내고, 올해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거치고 나자 '어쩌면 예전 생각이 틀렸을 수 있다'는 각성이 시작됐다.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것"이라며 "변화를 보지 못하거나 이전 패러다임에 갇힌 사람들은 변화에 저항하지만, 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몰락은 패러다임 변화를 거부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문 교수는 책 머리말에서 "나의 말 한 마디를 앞뒤 문맥도 사실관계도 다 무시하고 기다렸다는 듯 색깔론으로 매도하는 일부 언론과 보수 집단의 행태를 몇 차례 겪으면서 이래서야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열릴지 걱정도 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국제정치학을 배웠다는 이들이 내세우는 냉소주의에 대해 국제정치학계의 최고 권위자이자 원로 학자로서 경고성을 내기도 했다. 그는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 세력의 교차점이기 때문에 양 세력의 역관계에 따라 운명이 바뀔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정치학에서 말하는 세력균형론"이라며 "제국주의 시대에 나온, 강대국 힘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주장인데 이 해묵은 이론을 너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좀 가져도 될 때"라며 "너무 오랫동안 인식에 뿌리박힌 세력균형 결정론, 강대국 결정론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동맹을 신줏단지로 모시는 관성도 좀 벗어나자"고 말했다.

홍 의원도 "아직도 '강대국 결정론'같은 현실주의 정치학 이론의 영향력이 큰 데는 구조적 이해관계도 있다"며 "우리나라 자체 이익보다 이해관계가 밀착된 주변 강국의 시각에 더 관심을 두는 일각의 사람들, '검은 머리 외국인'이 존재한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학자에서 정치가가 된 홍 의원은 "강대국 정치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으나, 그것을 어떻게 우리의 이해관계에 맞게 조정하고 타개해 나갈 것인지 생각하는 게 외교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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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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