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와 30대 초반의 여당 국회의원 비서들이 자신의 고향 친구를 동원해 저질렀다고 검찰이 결론 내린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해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이 내린 규정이다. 정두언 의원은 18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같이 규정하며 이제까지 알려진 일들이 "빙산의 일각"이라고 주장했다.
불법사찰 사건과 선관위 공격 사건의 공통점
두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았다. 무엇보다 두 사건은 검찰 조사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의혹투성이다. 뭐라 이름 붙이기도 애매하다. 사실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이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다. 사찰의 피해자에는 "국정농단"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정두언 의원도 포함된다. 정 의원 만이 아니라 남경필, 정태근 등 현 정부 탄생에 역할을 했던 일부 여당 의원들과 그 가족들이 사찰 대상으로 보여지는 증거가 나오기도 했다. 또 '총리실' 불법사찰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윗선'이 어디인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 대해 '무혐의' 처리를 했지만, 최근 재수사를 결정하면서 적어도 이 전 비서관이 법망을 피해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총리실의 사찰이 아니라 청와대의 사찰이 된다. 권재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했고, 당시 '영포회'(영포목우회) 실세로 지목됐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연루 가능성도 재수사에서 따져볼 문제다. 또 최근엔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최종석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을 시켜 이 사건으로 구속된 이인규 지원관과 진경락 과장 가족에게 금일봉을 전달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전 지원관과 진 전 과장은 그해 7월 말과 8월 말 각각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대통령실장이 돈까지 챙겨줬다면, 이건 정말이지 정권 차원의 일이다. 임 전 실장 측은 "고용노동부 출신으로 총리실에 파견됐던 두 사람이 구속까지 돼 가족들이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듣고 명절에 위로금 차원에서 전달한 돈"이라고 해명했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도 '디도스 테러냐, 아니냐'를 놓고 진실 공방이 계속 되고 있다. 이 사건도 마찬가지로 '윗선'이 어디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자신의 비서관이 주범이 최구식 의원조차 모르는 일로 결론 내려졌다. 그저 최 의원의 9급 비서관과 8급 국회의장 비서관이 엄청난 '애당심'에 1억 원의 사비를 들여 저지른 일이라는 게 검찰 조사 결과다. (그래서 이 칼럼에서는 편의상 각각 확인된 사실만을 앞세워 '선관위 공격 사건'과 '불법사찰 사건'으로 부르고자 한다.)
둘째, 두 사건 모두 고향 친구들이 의기투합해 저질렀다. 선관위 공격 사건은 경상남도 진주 출신들이, 불법사찰 사건은 경상북도 영일과 포항 출신들이 주로 등장한다. 정 의원이 '소지역주의'라고 비판한 대목이다.특히 불법사찰 사건은 동향 출신들을 총리실, 청와대 등으로 영전시켜 사건을 도모했다. 권력의 사적 유용이라는 점에선 더 악질적이다.
셋째, 둘다 과거회귀형 사건이다. 선관위 공격 사건은 여권이 선거 결과를 자신에게 유리하기 위해 조작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승만 정권에서 일어났던 '3.15 부정선거'를, 불법사찰 건은 정권을 보위하기 위해 국가기관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사찰하고 그 증거를 은폐, 익멸하려 했다는 점에서 과거 군사독재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넷째, 정권을 보위한다는 목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훼손'까지 감행해 결국 정권의 안정을 위헙하는 차원까지 치달았다. 선관위 공격 사건은 여권 관계자가 국가기관인 선관위를 해킹해 국민의 투표권을 침해하려 했다. 불법사찰 사건은 국가기관이 민주주의의 기본인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했다. 뿐만 아니라 사찰에 대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증거를 은폐한 사실은 법치를 강조하는 정권이 그 스스로 사법권을 무시한 행위다. 두 사건 모두 선관위와 검찰을 기망했다는 점에서 "국정농단"이라 비난해도 크게 과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공통점들이 있다보니 두 사건 모두 검찰 수사가 미진했다. 선관위 공격 사건은 그래서 여야 합의로 특검이 도입됐고, 불법사찰 사건은 지난 16일 검찰이 재수사를 결정했다. 재수사는 검찰 차원에서는 치욕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 사건과 관련해 증거인멸 혐의로 1심 유죄를 선거 받은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녹취록'이 연일 언론과 민주통합당을 통해 공개되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장 전 주무관은 검찰 수사를 앞두고 최종석 전 행정관이 자신의 입을 막기 위해 "취직을 시켜주겠다"는 등 회유를 했다고 폭로했다. 또 이영호 전 비서관 측으로부터 현금 2000만 원을 받았다가 돌려준 일, 총리실에 있을 당시 이영호 전 비서관 등 청와대 포항 출신 간부 3명에게 매달 280만 원의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일 등을 증언했다. 법조계에선 이 전 비서관이 줬다는 현금 2000만 원의 출처만 추적해도 충격적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행시 29회 출신으로 노동부 감사관(3급)으로 있다가 2008년 8월 공직윤리지원관(2급)으로 총리실에 입성한 이인규 지원관은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 등 정권 실세 라인으로 분류된다.ⓒ문화방송 PD수첩 |
벌써부터 불거지는 재수사 회의론
문제는 검찰 재수사가 본격화되기도 전부터 회의론이 나온다는 점이다. 검찰이 과연 진실을 밝혀낼 의지가 있냐는 지적이다. 검찰은 박윤해 형사3부장검사를 팀장으로 하고 형사1부와 형사 3부, 특수 3부에서 차출해 4명의 검사로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에 이 사건을 배당한 것을 놓고 민주당 MB정권비리특위의 유재만 변호사는 "형사부장은 고소사건, 일반 형사사건들을 처리하기 때문에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맡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또 특별수사팀을 지휘하는 박윤해 부장검사가 경북 상주 출신이라는 점도 뒷말이 나온다. 이 사건이 경북 영일, 포항 출신 인사들 중심으로 저질러졌고, 2010년 당시 이 수사를 지휘한 노환균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경북 상주 출신이었다. 또 현재 서울중앙지검장인 최교일 검사장도 경북 영주 출신이며, 이 사건의 배후 인물 중 하나로 이름이 나오고 있는 권재진 법부장관은 대구 출신이다. 어렵사리 결정한 재수사 역시 핵심 지휘, 보고라인이 모두 TK 출신이다. 일을 저지른 이들과 이를 밝혀내는 이들이 모두 같은 고향 사람인 기막힌 '일치'가 또 일어난 셈이다.
때문에 벌써부터 "특검 불가피론"이 나온다. '대포폰 의혹'을 제기했던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18일 "지금 검찰 재수사는 도둑한테 도둑을 잡으라는 격"이라면서 권재진 법무장관, 노환균 법무연수원장 등 당시 수사라인에 있었던 핵심 인사들을 먼저 해임한 뒤 재수사할 것을 요구했다.
두 사건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선관위 사건과 불법사찰 사건이 공통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철부지들"의 나이와 신분이 현격히 차이가 난다. 한쪽은 20-30대 초반의 말단 비서들이었고, 다른 쪽은 나이와 지위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아직 모른다. 대통령 바로 밑의 인사까지도 실명이 나왔다.
그래서일까?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두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선관위 공격 사건은 단호한 태도를 밝히며 특검까지 합의해줬지만, 불법사찰 사건에 대해선 원론적인 입장 이외에 별다른 언급이 없다.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뒤 최근 공천을 통해 'MB와 거리두기'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그러나 장 전 주무관의 폭로 내용의 수위와 야당이 특위까지 꾸려가며 연일 폭로전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사건이 여권의 기대만큼 조용히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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