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동희오토에 입사하고 나서야 비정규직의 현실을 체감했다. 그전까지 다니던 부천의 영세한 공장에서는 비정규직이 특수한 경우였다. 모두가 정규직이었다. 그런데 동희오토는 아예 처음부터 생산직 전원이 비정규직인 공장이었다. 관리직·기술직 167명만 정규직이고, 나머지 1,250여 명은 16개 사내하청 업체 소속으로 일한다. 기아차 모닝, 레이, 스토닉을 만들지만 기아차 소속도, 동희오토 소속도 아니다. 20여 년간 450만 대 넘는 완성차를 찍어낸 이 공장에, 나는 20년째 몸담고 있다.
자본에겐 꿈의 공장, 노동자에겐 죽음의 공장
2005년 8월, 동희오토 현장에 처음 민주노조가 섰다. "뭘 해도 씨알도 안 먹히니 답은 노동조합밖에 없다"는 말이 마침내 현실이 된 날이었다. 사측의 대응은 신속하고 집요했다. 이미 만들어져 있던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노조를 되살려 한국노총 소속으로 갈아 끼우고, 신입사원에게는 근로계약서와 동시에 한국노총 가입서를 내밀었다. 고용노동부는 여기에 "하나의 사업장에 두 노조가 있으면 복수노조"라는 행정 해석을 얹어주었다.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하루아침에 '불법노조'로 낙인찍히는 순간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전형적인 탈퇴 공작이었다. 시골 부모님을 찾아가 "아들이 불법노조에 가입해 주민등록증에 빨간 줄이 그인다"고 겁을 줬다. 임신한 아내에게는 "해고는 물론 블랙리스트에 올라 이 지역에서 다시는 취업 못 한다"고 협박했다. 그래도 버티면 다니던 업체 자체를 없애버렸다. 조합원 대부분이던 차체 라인 업체 하나가 통째로 폐업했다. 800여 명 중 350명 넘게 있던 금속노조 조합원은 그렇게 무너져 2명만 남았다. 그 2명이 시내 커피숍에서 사측과 두 차례 '교섭'을 한 것이 당시 우리가 쥘 수 있던 전부였다.
대대적인 사측의 탄압과 비정규직의 설음
2008년 추석 전날, 나는 징계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때 이렇게 썼다. "제가 3년간 일한 곳은 '자본에겐 꿈의 공장, 노동자에겐 죽음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동희오토'입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동료들과 함께 안정적인 일터, 보람찬 일터를 만들고자 했던 것뿐인데도 말입니다." 그해 한국노총 소속 업체에서 민주파 위원장이 당선됐다는 이유로, 당선 확정 3일 만에 업체가 폐업하며 21명이 또 해고됐다. 2009년 마지막 조합원 2명마저 해고되면서 각 업체 노조는 '유니온샵'으로 전환됐다.
이 시기까지 공식 해고만 135명, 회사의 탄압을 못 견디고 스스로 그만둔 사람은 300명이 넘는다. 그 빈자리는 조선족 이주노동자들로 채워졌다. 한때 이주노동자 비율이 40%에 달했는데, F4 비자로 영주권을 준비하던 이들에게 업체 존속과 업체장의 추천은 생계와 직결된 문제였다. 그들에게 민주노조 조합원은 함께 싸울 동료가 아니라 자신의 생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비쳤다. 사측은 그 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교섭권 없이는 단결권도 없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의 굴레
2010년 해고자들이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복직 농성을 벌였고, 2011년 7월 7명이 복직했다. 그러나 그해 복수노조법이 시행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생산연계 14개 업체 전부가 유니온샵으로 노동자 전원을 묶고 있었고, 창구단일화 절차 앞에서 소수노조인 우리는 교섭권 자체가 없었다. 지금은 지역노조 형태의 한국노총 '동희오토 협력업체 노동조합'이 유일한 교섭 당사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 구조의 본질은 간단하다. 창구단일화는 다수노조에게 교섭권을 몰아주는 대신, 소수노조에게는 노동3권 중 단결권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노동조합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헌법은 말하지만, 현장에서는 "금속노조는 안 된다"는 것이 유일한 노무관리 원칙이었다. 신입사원 교육 때마다 "불법노조 출신은 해고된다"는 유언비어가 반복됐다. 금속노조에 가입하면 재계약을 거부당하거나, 업체가 폐업하며 고용승계에서 배제된다고 협박했다. 교섭권이 없으니 힘으로 맞설 수 없고, 힘이 없으니 가입을 주저하고, 가입이 줄어드니 교섭권은 더 멀어지는 악순환. 우리는 이 악순환의 늪 속에서 15년을 발버둥 쳤다.
노란봉투법을 앞두고, 오픈채팅방으로 모이기 시작
작년(2025년) 개정 노조법 시행을 앞두고 동희오토분회는 조직화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거창한 방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25년 하반기부터 조합원들과 일상적인 소통 채널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하나 열었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모아, 2026년 3월 10일 조합원 120여 명을 공개하며 현장에 다시 등장했다.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과, 어용노조와의 교섭단위 분리를 동시에 요청했다. 예상대로 사측은 다시 부당노동행위로 응답했다. 온갖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조합원을 힘든 공정으로 전환배치하고, 해고와 업체 폐업 협박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고용노동부 진정과 현장의 단결로 버텨낸 결과, 조합원은 오히려 330여 명으로 늘었다. 그리고 4월 충남지노위, 6월 중앙노동위원회가 잇달아 우리 손을 들어줬다. 동희오토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자이며, 어용노조와 우리의 교섭단위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결정이었다. 20년 만에 국가기관이 "동희오토가 진짜 사장"이라고 두 번이나 확인해준 것이다. 지금 동희오토 현장엔 골병이 만연하다. 쉴 틈 없이 편성률 100% 가까이 돌아가는 노동강도,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받는 현실. 우리가 바라는 건 많지 않다. 이 노동강도를 조금이라도 바꿔보자는 것이다.
교섭에 나오라 하니, 법원으로 도망갔다. 한정이 없다.
법적 절차가 마무리됐다고 사측이 순순히 교섭에 나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동희오토는 노동위 결정에 불복해 행정법원에 소송과 집행정지(가처분)를 신청했다. 행정소송으로 가겠다는 것은 결국 대법원까지 가보겠다는 것 아닌가.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7월 말부터 지금까지 일곱 차례 교섭을 요청했다. 사측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법원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같은 시기 한국노총 소속 노조는 갑자기 사측 본사 앞 1인시위와 선전전에 나섰다. 요구 내용은 우리와 비슷했지만, 목적은 달라 보였다. 원청이 법원에서 다투고 있는 논리 — "굳이 교섭단위를 나눌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최근 확보한 한국노총 정기대의원대회 자료집에는 더 노골적인 문구가 있었다. 2026년도 사업계획(안) 홍보부 사업과제 항목에 인쇄된 문장은 이랬다. '제2노조 제제 홍보활동' 이것이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현실이다.
오늘, 노동자의 무기를 움켜쥔다. 원청 교섭 쟁취하자!
2026년 9월 3일, 분회는 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접수했다. 대화로 풀리지 않으니 국가기관이 나서라는 절차다. 이 절차가 끝나면 파업권을 포함한 합법적 쟁의권이 우리 손에 들어온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당장 라인을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필요할 때 세울 수 있는 힘, 사측이 더는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이번에는 우리 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10월에는 업체별 임금·성과금 협상이 시작된다. 인원충원과 노동강도 완화를 위한 근골격계 투쟁도 본격화할 것이다.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시 금속노조를 선택하는 것은 여전히 해고와 불이익을 감당하겠다는 큰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다. 그 결단에 교섭권마저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원하청 사측의 힘 앞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교섭에 나오지도 않는 상대와 대화로 문제를 풀 수는 없다. 그래서 이제는 쟁의조정신청으로 파업권 획득에 한 걸음 다가간다. 20년 넘게 이어진 이 설움을, 이번에는 우리 손으로 씻어낼 것이다.
원청 교섭의 출발, 정당한 쟁의권을 보장하라!
20년 전, 고용노동부의 동희오토 복수노조에 대한 행정 해석 하나가 산별노조를 불법노조로 만들었다. 그 대가로 135명이 해고됐고, 우리는 20년을 창구단일화의 늪에서 보냈다. 더구나 지금도 사측은 지노위 두 번, 중노위 두 번의 결정을 아예 무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사건 처리 실무 가이드'(26년 3월)에 따라 '조정중지' 아닌 '행정지도'를 내릴 것으로 추측된다. 지긋지긋하다. 이번에도 고용노동부, 그리고 노동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노동3권에 손발이 묶여야 하나? 20년 전에는 단결권이 봉쇄당했고, 지금은 단체행동권이 제약당하는 것이다. 이제는 이 악연을 끊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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