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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종길 교수, 53년만에 국민훈장…아들 최광준 "아버님 한 분 예우로 그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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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종길 교수, 53년만에 국민훈장…아들 최광준 "아버님 한 분 예우로 그치지 않기를"

[인터뷰] 최광준 경희대 교수 "국가폭력 사건에 소멸시효 항변 말아야"

박정희 정권 당시 중앙정보부 조사를 받던 중 의문사한 고 최종길 서울법대 교수에게 지난 6월 10일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됐다. 1973년 10월 세상을 떠난 지 53년 만이다. 최종길 교수는 당시 '간첩 자백 후 투신자살'로 발표됐으나,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를 통해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사망임이 밝혀졌다.

아들이자 학문적 후배인 최광준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이번 추서 소식을 들은 소감과 지난 세월, 그리고 남은 과제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지난 6월 10일부터 30일까지 최광준 교수와 서면으로 인터뷰 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고 최종길 교수 ⓒ최종길 교수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모임 제공

"기쁨보다 먼저, 아직 예우 받지 못한 분들 생각났다"

최 교수는 추서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을 묻는 질문에 "감사한 일"이라면서도 "기쁨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아버님 외에도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되신 수많은 분들"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아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국가의 예우를 기다리고 있는 희생자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그분들과 유가족들께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이번 추서가 "아버님 한 분에 대한 예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많은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오랜 시간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싸워온 가족들의 감회를 묻자, 그는 2015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렸다. "미국에 살고 있는 동생과는 기쁨을 나눌 수 있었지만, 그리운 어머니와는 더 이상 이 순간을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마음 아팠다"고 전했다. 행사장에는 고인의 진상규명을 위해 오랜 세월 힘써온 함세웅 신부도 함께했다. 최 교수는 "식이 끝난 뒤 신부님의 두 손을 꼭 잡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신부님도, 저도 쉽게 말을 잇지 못했고 서로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다, "간첩 누명이 더 견디기 힘든 상처"

최종길 교수는 1973년 10월, 중앙정보부 조사를 받던 중 의문사했다. 정권은 이를 간첩죄를 자백한 뒤 투신자살한 것으로 발표했다.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2002년에 이르러서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사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최광준 교수는 당시 만 아홉 살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버님이 간첩이라는 누명까지 쓰고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어린 마음에도 견디기 힘든 상처였다"고 그는 전했다. 어머니는 남매에게 늘 "언젠가 정권이 바뀌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주었고, 그 믿음으로 긴 세월을 견뎌왔다고 한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어도 진실은 쉽게 밝혀지지 않았다. 1988년, 당시 살인죄 공소시효(15년) 만료를 앞두고 함세웅 신부를 비롯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평화신문 김정남 편집국장의 도움으로 검찰에 진상규명을 요청했지만, 검찰은 타살의 증거도 자살의 증거도 찾지 못했다는 결론만 남기고 사건을 종결했다.

최 교수가 가장 절망적이었던 시기로 꼽은 것은 바로 이때, 공소시효마저 지나 형사처벌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순간이었다. "이전에는 말조차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희망은 있었다. 그러나 1988년 이후에는 아버님의 억울한 죽음을 말할 수는 있었지만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더 컸다"고 그는 전했다.

2000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다시 희망이 생겼다. 2002년 위원회는 고문 등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인한 사망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구체적인 사망 경위까지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최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아버님의 사건은 규명되었지만, 진실은 아직도 완전히 밝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생전의 최종길 교수와 가족들. ⓒ최종길 교수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모임 제공

"국가폭력 사건에 소멸시효 항변 말아야"

2006년 대법원은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지만, 소멸시효 등을 이유로 유족들이 온전한 배상을 받는 데는 법적 한계가 있었다. 법학자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묻자, 최 교수는 단호하게 답했다. "국가폭력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서는 국가가 소멸시효를 이유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형사법상 공소시효와 민사상 소멸시효의 차이를 짚었다. "공소시효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국가가 더 이상 형사소추를 할 수 없게 되는 제도이지만, 민사상 소멸시효는 피고가 항변할 때에만 비로소 효력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국가는 소멸시효를 주장할 수도 있고, 주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을 통해 국가 스스로 과거 국가폭력의 진실을 규명하면서도, 동시에 피해자들에게는 소멸시효를 내세워 배상책임을 부인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모순"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최 교수는 2002년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처음 제기했을 때부터 정부를 상대로 소멸시효 항변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전달해왔다고 밝혔다. "여러 차례 내용증명도 보냈다"고도 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국가가 이러한 사건에서 소멸시효 항변을 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권리구제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반드시 새로운 입법이 있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진실화해재단과 기억관 설립이 과거청산의 완성"

최종길 교수의 사건은 규명되었지만, 한국현대사에는 여전히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수많은 의문사와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남아 있다. 국가의 책무가 어디까지 이어져야 하는지를 묻자, 최 교수는 "국가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무엇보다 진실을 끝까지 규명해야 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에게는 합당한 배상과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국가폭력의 역사를 사회가 잊지 않도록 기억하는 일 역시 국가의 중요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진실화해재단(가칭)'과 '기억관' 설립을 제안해왔다고 밝혔다. "진실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과거청산이 완성되지 않는다. 그 진실을 다음 세대가 기억하고 배우도록 하는 것까지가 진정한 과거청산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을 사랑한 스승으로 기억되길"

오늘날 젊은 세대와 로스쿨 학생들에게 '최종길'이라는 이름이 어떤 귀감이 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마지막 질문에, 최 교수는 아버지가 남긴 육성 녹음을 들려주었다. 1973년 2월, 캐나다에 거주하던 여동생 최종례에게 보낸 녹음테이프에는 이런 말이 담겨 있었다.

"내일의 희망인 젊은 청년들과 이렇게 같이 대화하며 같이 생활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난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더욱 더 깊게 굳게 느끼게 됐지."

최 교수는 "저는 이 한마디에 아버님의 교육관과 삶이 모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며 "법학자이기 이전에 학생을 사랑한 교육자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 정신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추모 사업에 대해서도 "아버님의 정신을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정한 의미의 과거청산을 완성하는 것"이라며, '진실화해재단'과 '기억관' 설립을 향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최광준 경희대 교수 ⓒ최종길 교수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모임 제공

최종길 교수는 1932년 태어나 1955년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57년 스위스로 유학을 떠난 뒤 독일로 건너가 쾰른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4년 서울대 전임교수가 되었으며, 1973년 중앙정보부 조사 중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로 일부 밝혀졌으나, 구체적 사망 경위는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최광준 교수는 1964년생으로, 부친인 고 최종길 교수가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방문교수로 재직하던 1972년,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부친이 수학했던 독일 쾰른대학교로 유학하여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4년 부산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를 시작으로, 1999년부터 현재까지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민법, 국제사법, 비교법 분야의 연구와 교육에 힘쓰고 있다. 또한 세계법률가협회(World Jurist Association) 한국대표와 독일 훔볼트 재단 한국 주재 학술대사를 역임하였으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현재도 국내외 학술교류와 인권·과거사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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