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누구를 위한 반도체 붐인가…풍요의 그늘에 소외된 사람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누구를 위한 반도체 붐인가…풍요의 그늘에 소외된 사람들

[시민건강논평] AI·반도체 호황 속 연구원의 죽음과 일자리 대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으로 국가 재정이 들썩이고 있다. 반도체 기업의 사상 최대 실적과 성과급 지급으로 100조 원 이상의 역대 초과 세수를 기록할 전망이라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국제 금융 무대에서 한국 경제의 장밋빛 미래를 설파하기 바쁘다. 초과 세수를 로봇, AI인프라, 소형모듈원전(SMR) 등 인공지능 대전환에 대응하기 위한 혁신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방침도 공식화됐다. 숫자만 보면 이 나라의 앞날은 밝다. 하지만 이 서사는 어딘가 낯익다. 수출이 늘면 국가가 부강해지고, 우리도 잘 살게 된다는 발전국가의 논리가 지금의 반도체 호황을 바라보는 시선과 닮아 있다. 무엇이 성장을 의미하는가? 누구의 관점에서 성장인가? 이 질문이 빠진 자리에서, 국가의 호황은 늘 모두의 것처럼 쓰인다.

반도체 붐 이전에는 삼성전자 반도체에서 반올림을 떠올린 이들이 많았다.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씨의 죽음을 계기로 결성된 이 단체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 5월 6일 반올림은 삼성전자 서초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HBM(고대역폭메모리) 반도체 칩을 연구하던 고 김치엽 연구원이 입사 1년이 채 안 된 2025년 3월, 과로와 성과 압박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에 대해 산재 신청을 제기하며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한 자리였다(☞보도자료 바로가기). 19년 전 생산직의 백혈병에서 시작된 반도체 잔혹사는 2026년 현재 최첨단 R&D 연구직의 과로사로 진화했다. 사측은 지금까지도 침묵하고 있다. 호황의 한복판에서 터져 나온 이 비극은 반도체 호황의 어두운 그늘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나라가 좋아지고 있다는 서사에 가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반도체 대기업의 울타리 밖에 존재하는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임금과 고용 불안은 호황 이전과 다르지 않다. AI에 영향 받는 사람들(affected person)은 말할 것도 없다(☞시민건강논평 바로가기). 플랫폼·서비스직 노동자들이 겪는 일자리 대체 속도와 정신적 압박을 살펴본다면, 이것은 호황이 아니라 재앙에 가깝다. 반도체 호황과 무관하게 오래된 문제들은 여전히 제자리다. 도입된 지 22년이 다 되어가는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를 산업재해 위험의 최전선에 내몰았고, 올해에만 벌써 16명의 이주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이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농촌의 계절 이주노동자들은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한 채 24시간 감시와 위협 속에 일하고 있다. 기후 재난의 고통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은 2021년 공공개발 발표 이후 5년이 지난 지금도 0.5~1.5평의 좁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국가의 성공과 무관하고, 어떤 성장 지표에도 집계되지 않는다.

이같은 소외가 우연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 국가는 즉각적인 이윤을 창출하는 반도체는 미래를 위한 투자로 규정하지만, 무너진 지역의료를 살리는 일은 물론 아픈 이를 돌보고 취약계층의 생계나 주거를 보장하는 일은 비용 혹은 시혜적 지출로 취급한다. 성장의 과실은 국가 경쟁력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자본의 확장으로 순환되고, 사람의 생존을 지탱하는 사회적 기반은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난다. 그 결과 불평등은 심화되지만, 국가의 성장 지표는 계속 오르면서 그 간극은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는다. 지방선거에서도, 초과세수 활용 논의에서도, 보편적인 사람의 삶이 중심 의제로 다뤄지지 않는 이유다. 이것은 누군가의 악의가 아닌 체제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국가 경제지표와 개인의 삶을 동일시하는 정부의 투자는 물적 토대 측면에서 불평등을 극도로 심화할 뿐만 아니라 인식과 문화 영역에서도 심각한 사회적 불안을 낳는다. 호황의 온기가 나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감각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심어주고, 점차 사회적 분열과 갈등으로 표출되어 국가 통치 차원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위기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의 공론장에서 상대적 박탈감의 목소리가 대기업에서 고연봉을 받으며 자신들의 권리를 조직적으로 표명할 수 있는 집단에 치우쳐 있어 발화 권력의 불평등이 공고히 자리한다. 이 격차를 방치한 채 사회적 갈등은 결코 해결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국가 통치의 방향성은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을 먼저 살피고 보장함으로써 성장을 도모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인식 측면에서도 AI 반도체 산업의 초과이윤이 개별 기업의 기술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위험을 감내해 온 수많은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들, 노동자를 키워낸 지역의 학교와 병원, 그 노동자의 부모와 아이를 돌봐온 인력,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이주민들의 일상과 노동, 세제 혜택과 공공 인프라, 국가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교육과 사회 기반의 집합적 기여가 켜켜이 쌓여 반도체 호황이 가능했다. 반도체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논의는 사회적으로도 필요하다. 그러나 기술적 논의에 앞서, 반도체 호황이 누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누구의 삶을 소외시키고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성장이 곧 좋은 삶이라는 등식, 국가의 번영이 곧 나의 번영이라는 서사가 일종의 집단적 착시는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 이 질문이 공론장의 중심에 설 때, 반도체가 호황이건 위기이건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와 각자가 어떤 삶을 상상하고 있는지를 묻는 일이 국가와 시민 모두의 과제가 될 수 있다.

ⓒ시민건강연구소
시민건강연구소

(사)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비영리독립연구기관입니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연구소가 발표하는 '시민건강논평'과 '서리풀 연구通'을 동시 게재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