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3일 실시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벌이고 있는 공천 파동은 단순한 내부 갈등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이는 정당 정치의 기본인 ‘신뢰’ 자체를 흔드는 심각한 위기다. 특히 보수 텃밭으로 불려온 경북 포항에서는 그 파장이 더 크고 깊게 번지고 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묻지마 지지’의 균열이 이번 사태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선거판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명확하다. 바로 ‘공천과정에서 보여준 공정성의 붕괴’다. 경선 과정에서 중량급 후보들이 잇따라 탈락한 뒤, 반발 기자회견과 재심 청구, 법적 대응까지 이어지는 상황은 정상적인 경쟁의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
국민의힘은 이번 공천에서 납득 가능한 기준은 보이지 않았고, 절차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다.
여기에 사법 리스크가 거론되는 후보 문제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정당이 그동안 스스로 내세워 온 ‘공정’과 ‘상식’이라는 가치는 이번 공천 과정에서 사실상 공허한 구호로 전락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후 대응이다. 이 정도 사태라면 책임 있는 설명과 정리가 뒤따라야 마땅하다. 그러나 중앙당은 침묵하거나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 무책임한 대응은 곧바로 지역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포항 시민들이 느끼는 분노의 핵심은 특정 후보나 계파가 아니다. “어차피 찍어줄 것”이라는 인식, 즉 유권자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에 대한 분노다. 만약 이번 공천이 그러한 안일함 위에서 이루어졌다면, 이는 단순한 전략 실패가 아니라 유권자에 대한 명백한 무시다.
정치는 결과 이전에 과정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 과정이 무너진 순간, 어떤 명분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이 틈을 타 더불어민주당은 정책과 재정 지원을 전면에 내세우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무소속 출마 가능성까지 더해지면서 이번 포항시장 선거는 더 이상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다. 과거처럼 정당 간 단순 구도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실제로 포항은 지난 1995년 제 1회 동시지방선거 당시 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의 전신인 민자당 공천잡음이 불거지면서 어부지리로 민주당의 박기환 후보가 시장에 당선된 사례가 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보수 후보가 승리하긴 했지만, 주요 생활권에서는 진보 진영이 우세를 보였다. 이는 포항이 더 이상 절대적인 정치 지형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분명한 신호였다.
지금의 민심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철강 산업 침체와 지역경제 둔화 속에서 누적된 피로감과 불만이 정치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 특정 정당을 지지해왔지만, 그에 걸맞은 변화와 성과를 체감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 유권자들은 질문을 바꾸고 있다. “어느 당인가”가 아니라 “누가 더 준비된 인물인가”를 묻는다. 능력과 도덕성, 지역에 대한 이해와 비전을 기준으로 선택하겠다는, 이른바 ‘인물 선택’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이번 공천 사태를 가볍게 여기고 넘어간다면, 그 대가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지금 포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보수 정치 전반에 대한 경고이기 때문이다.
정당이 스스로 긴장하지 않는 순간, 유권자는 반드시 그 긴장을 대신 만들어낸다. 선거는 그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다.
포항이 특정 정당의 ‘안방’이라는 인식이 유지되는 한, 정치의 경쟁은 사라지고 변화는 멈춘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이번 공천 파동은 바로 그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사건이다.
포항이 처한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산업 구조 전환, 인구 감소, 지역경제 활력 저하라는 복합 위기 속에서 필요한 것은 정당 간판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력이다.
이번 선택은 단순한 한 번의 선거가 아니다. 포항의 향후 수십 년을 좌우할 방향을 결정하는 분기점이다.
유권자의 한 표는 분명한 메시지다. 오만한 정치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고, 변화를 요구하는 선언일 수도 있다. 이제 공은 완전히 시민에게 넘어왔다.
그리고 그 선택은, 더 이상 ‘묻지마’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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