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혐의로 논란에 휩싸였던 장경태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서 자진 탈당했다. 피해자가 언론을 통해 사건을 공론화한 것이 지난해 11월 말, 장장 4개월 동안 이어져온 당 윤리심판원의 비상징계 논의는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중단됐다. 장 의원의 탈당이 징계 회피를 위한 것인지는 결국 당이 판단할 것이다. 다만 수사심의위원회의 송치 결정 직후 도망치듯 당을 나가면서도 "당에 누가 되지 않겠다"고 비장하게 선언하는 장 의원의 모습을 보면 뒷맛이 씁쓸하다. 수사기관의 판단 전까지 그의 성추행 논란은 '누'가 아니었던 걸까? 적어도 민주당 내에선 실제로 아니었다는 점이 이 씁쓸함의 정체일 것이다.
'누를 끼치다'란 표현에 사용되는 한자 累(묶을 누)는 '남의 잘못으로 받는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뜻한다. 윤리심판원의 징계 논의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장 의원은 국회 활동에 어떤 제한도 받지 않았다. 심지어 장 의원은 공천관리와 직결된 서울시당위원장직은 물론 당원주권TF위원장직 등 당직도 이날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수행해 왔다. 당 동료 의원들로부터 "그 여자가 어깨에 손 올리고 있는 것 못 봤나"(서영교), "1년이 지나서 고소가 된 사건"(김기표)이라는 등 2차 가해성 발언이 횡행하기도 했다.
장 의원이 피해자를 무고죄로 맞고소하고, 본인 사건에 대한 '정치공작설' 따위를 주장하며, 심지어 피해자를 조롱하듯 생일잔치 사진을 SNS에 올리며 억울함을 주장하는 사이, 국회가 일터인 피해자는 "이렇게 많은 의원들에게 낙인을 찍힌 상태로 제가 계속 근무를 할 수 있을지 그런 생각이 든다"고 고통을 호소했다.(2025년 12월 4일 TV조선 인터뷰) 민주당 지도부는 "사건을 가볍게 보고 있지 않다"(박수현 당시 수석대변인, 같은 해 12월 5일 브리핑)는 말만 반복하면서 어떤 조치도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지도부는 피해자가 직접 호소한 당내 2차 가해 발언들에 대해서도 "그 이상은 현재로서 말씀드리긴 어렵다"며 답을 피했다.
성폭력 피해자가 직장이나 생활공간 내에서 고립되는 것은 여전히 흔한 문제다. 사건 대응의 양상이 피해증명과 진실게임이 되어가면서 많은 경우 피해자는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검증을 요구받는다. 가해자에게 선을 긋지 못했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나, 사건 당시로부터 시간이 지난 뒤 나오는 '늦은 결심' 따위가 피해자 비난하기(victim blaming)의 소재로 귀결되는 모습을 우리는 지난 '미투' 국면에서 이미 몇 번이고 봐 왔다. 우리 사회가 그 '가해자 논리'를 일부나마 극복하게 된 계기 역시 민주당 내 위계 성폭력 사건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작금의 상황이 더욱 아연하다. 그 시절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온데간데없다.
공교롭게도 이날 민주당은 허위·조작 정보에 대한 강력 대응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조폭 연루설'이 대법원 판결로 허위로 판명나면서 가속화된 흐름이다. 이 대통령은 '조폭설'을 제기한 방송 프로그램의 PD에게 "사과와 반성"을 요구했고, 전날엔 이규연 청와대 홍보수석이 의혹 관련 추후보도를 요청하며 "본인들이 보도했던 걸 들여다보시라"고 일침을 가했다. 민주당에선 "가짜뉴스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무기가 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확실히 마련하겠다"는 다짐이 나왔다. 맞다. 대통령은 억울할 것이고 가짜뉴스는 배격해야 한다. 다만 그럴 수 있는 자들은 왜 항상 정해져 있나. 자신의 입장을 쉽게 피력하거나 관철하는 이들은 언제나 권력자들뿐이다.
'미투 운동'이 한국에서 시작된 2018년, 대검찰청은 성폭력 수사 매뉴얼을 개정했다. 가해자의 무고 고소로 피해자가 신고를 주저하는 경향성을 인정해, 성폭력 사건에 한해선 수사가 끝나기 전까지 무고 사건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만들었다. 얼핏 '쌍방'처럼 보이는 성폭력 고소와 무고죄 맞고소 사이의 권력관계를 인지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일이다. 성폭력은 여성의 몸을 여성으로부터 소외시킨 채 규정하고 해석하는 남성권력으로부터 발현하고, 그래서 성폭력 피해 공론화는 그 남성권력을 공유하고 있는 사회 '구조'와 맞서는 일이다. 사회는 끝없이 피해를 의심하고, 피해자의 말과 행동을 '가짜'로 규정한다. 피해자의 말과 행동은 물론 그 의도에 대한 수많은 '허위·조작 정보'가 생산된다.
언론개혁을 외쳐온 민주당이 스스로 강조해왔듯, 이 같은 허위·조작된 정보들은 쉬이 수정되지 않는다. 당장 민주당에서의 일만 봐도 그렇다. 국회보좌진협의회 게시판에는 장 의원 사건 피해자에 대한 출처를 알 수 없는 모욕과 비난이 들끓었고, 강성당원들에게선 안희정·박원순 사건의 피해자들을 향한 날선 비난과 음모론을 여전히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지난 2월 박정현 충남 부여군수의 출판기념식에 얼굴을 비춘 안희정 씨에겐 박범계·장종태 등 당 의원들이 덕담을 건네 화제가 됐다.
이 같은 이유로 오랫 동안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은 '발화될 수 없는 피해'였고, 수십년의 노력으로 이뤄진 제도와 인식의 일부 개선에도 불구 이 권력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성폭력 피해에 대해 더 단호하게, 더 확실하게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윤리심판원에서 징계조치를 논의 중이다"라는 말만으로는 피해자의 안전과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허위·조작 정보 근절을 연일 부르짖는 민주당에 묻고 싶다.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진영 내의 부당한 평가와 공격들은 허위·조작 정보가 아닌가. 그 '정보'들이 멈추지 않고 유통되면서, 결국 이미 존재하거나 앞으로 존재할 수 있는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의 '발화할 권리'를 앗아가는 일은 민주주의의 훼손이 아닌가. 피해자가 여성폭력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회복할 권리는 민주주의의 기본 권리와는 별개의 것인가. 지도부가 당내 2차 가해에 침묵하면서 벌어지는 이 같은 일들은 가짜뉴스에 대한 방치 혹은 재생산이 아닌가. 그리고, 그리하여 국민주권정부와 당원주권정당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당이 "사건을 무겁게 보고 있다"고 이미 말했음에도 진영 내부를 비판하는 이런 말도 '가짜뉴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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