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갈등의 사회적 부작용: 정치불신부터 청년 문제 외면까지
'이대남'과 '이대녀'라는 말이 언제부터 우리 정치권의 단골 메뉴가 됐을까? 지난 대선에서 20대 남녀의 투표는 정반대 방향으로 향했고, 정치인들은 이 틈새를 파고들어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문제는 선거가 끝나도 젠더갈등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력을 얻기 위해 뿌린 갈등의 씨앗은 이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라나고 있다.
한국리서치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64%가 젠더갈등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한국리서치, 2024). 1년 전보다 4%포인트 감소하긴 했지만(68%→64%), 여전히 과반을 넘어서는 수치이다. 한편 40대를 기준으로 온도차가 나타난다. 18~29세의 87%가, 30대의 83%가 젠더갈등을 심각한 것(매우 심각 + 대체로 심각)으로 인식했으나 40대는 66% 정도였다. 18~29세와 30대에서 젠더갈등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2023년에 비해 다소 늘어난 한편 40대부터는 다소 낮아졌다는 점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향후 젠더갈등이 지금과 비슷하거나, 더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하는 수치는 81%나 되었다.
이러한 젠더갈등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그 부작용은 단순한 불화를 넘어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정치불신과 혐오의 극대화
젠더갈등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면서 국민의 정치불신과 혐오가 심화하고 있다. 젠더 이슈는 본질적인 논의보다 정치적 이득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선거 시기에만 부각되고 당선 후에는 실질적인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향이 유권자들의 정치불신을 키운다.
정치권이 '이대남'과 '이대녀'를 분리하여 자극적인 메시지로 소구하면서, 젠더 이슈에 대한 담론이 극단화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의견이 존재함에도 '찬성/반대'의 이분법적 구도로 단순화된다. 정치인들이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히 성별 대결 구도로 환원시키는 모습을 보며 많은 시민들은 '어차피 정치인들은 표만 얻으면 된다'는 냉소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사회통합 저해와 불필요한 대립 격화
젠더갈등은 남성과 여성 간의 대립 구도를 강화하여 사회통합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는 성별에 따른 커뮤니티가 분화되고, '남성/여성 혐오'라는 프레임 속에서 상대 성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단순한 의견 차이도 곧바로 성별 혐오로 규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건설적인 대화와 타협의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러한 온라인 상의 분리와 대립이 현실 공간에서의 상호작용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젠더갈등은 세대 간 인식 차이도 키우고 있다. 4050세대와 2030세대 사이의 젠더 인식 차이가 커지면서 세대 갈등까지 중첩되는 복합적 갈등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사이의 대화단절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청년층의 실질적 문제에 대한 정책적 논의 저해
큰 문제중 하나는 젠더갈등이 과도하게 부각되면서 청년층이 공통으로 직면한 실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가로막힌다는 점이다. 고용 불안정, 주거 문제, 교육 격차 등 청년층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들이 '남성 vs 여성'의 프레임으로 재해석되어 통합적 해결책 모색이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청년 실업 문제가 '여성 우대 정책' 혹은 '남성 역차별' 논쟁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젠더갈등에 대응하기 위한 단기적, 상징적 정책들이 증가하면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한다. 정치권은 당장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젠더 이슈에 집중하며, 주거비 폭등, 취업난, 교육 불평등과 같은 청년층의 실질적 고통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모습을 보인다.
같은 세대 내에서도 젠더에 따른 분열이 심화되면서 청년층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된다. 이는 청년 세대가 공통으로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정책적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청년 유권자들이 성별에 따라 분열된 상황에서, 정치권은 청년 정책 전반보다는 특정 성별의 청년을 겨냥한 정책을 내놓는 데 집중하게 된다.
또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가 젠더 프레임을 통해 개인 간 대립으로 치환되면서, 근본적인 해결책 모색보다는 상대 성별 탓하기가 만연하다. 예를 들어, 채용 과정에서의 불공정 문제가 기업의 채용 시스템이나 노동시장 구조의 문제가 아닌 '남성 vs 여성'의 문제로 환원되는 경향이 있다.
갈등 극복을 위한 방향
젠더갈등은 단순히 남녀 간의 의견 차이를 넘어, 한국 사회의 정치 신뢰도 저하, 사회적 분열 심화, 그리고 실질적 정책 논의 저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적 접근을 지양하고,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건설적인 대화와 함께 청년층의 공통 과제에 대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젠더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형식적 대화를 넘어선 구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북유럽 국가들의 성평등 정책은 주목할 만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들 국가는 성평등을 단순한 구호가 아닌 예산, 법률, 교육 시스템 전반에 통합적으로 적용한다.
미디어 환경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 책임 있는 보도와 건전한 담론 형성을 위한 미디어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선정적이고 대립적인 프레임보다는 상호 이해와 존중을 촉진하는 보도 방식이 필요하다.
정치권의 변화도 필요하다. 현재 정치권은 젠더 이슈를 표를 얻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경향이 크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선거 과정에서 정당들이 젠더 갈등을 조장하는 발언을 자제하고, 성평등을 위한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도록 하는 사회적 압력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교육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비판적 미디어 리터러시와 젠더 감수성 교육을 어린 시절부터 공교육에 통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젠더갈등을 완화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를 통해 다음 세대는 젠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상호 존중의 태도를 기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젠더갈등 해소는 개인의 의식 변화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정치, 미디어, 교육, 법제도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권력을 위한 갈등 조장이 아닌, 모두의 권리와 존엄을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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