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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만 바라보는 윤석열 정부, 한국 외교 설 자리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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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만 바라보는 윤석열 정부, 한국 외교 설 자리 없어진다

[현안진단] 두 개의 전쟁이 촉발한 국제질서 변환, 능동적 행위자로 나서야

두 개의 전쟁과 세계전쟁의 위기

유럽과 중동에서 두 개의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정전은 여전히 요원하다. 오히려 전선이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고, 전술핵이 사용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가자의 참극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5월 말 바이든 대통령이 내놓은 정전 안은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오히려 이스라엘은 인질구출 명목으로 대량살상을 감행했다. 나아가 네타냐후 총리는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교전중인 북부에서 공세를 강화할 생각임을 피력하고 있다. 이는 이란을 크게 자극할 수 있어서, 실제로 감행될 경우 상황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더하여 동아시아 어딘가에서 제3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인류는 바로 세계 전쟁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핵전쟁이 수반될 가능성이 크며, 그 결과는 지구의 완전한 파괴가 될 것이다. 지금 인류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부터 불과 '몇 센티미터' 앞에 서 있다.

그런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도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오히려 제3의 전쟁 가능성을 쉽게 부정하지 못하는 건, 세계정치에서의 '궐위' 현상 때문이다. 기존의 질서는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가운데 아무도 진지한 중재자가 될 수 없는 혼돈의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힘에 의한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힘에 의한 평화'는 공허하다. 뿐만 아니라 그 용맹스러운 울림이 '신중함'의 영역을 소거하기 때문에 위험하기까지 하다.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8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대통령 전용 숙소인 '아스펜'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쟁 위협의 장이 되어 버린 아시아 안보회의

그 위험의 수위가 동아시아에서, 그리고 한반도에서 고조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수위를 조절해 왔던 제어 장치가 하나둘 무력화되거나 제거되고 있다. 지난 5월 31일에 개막되어 6월 2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안보회의, 일명 샹그릴라 대화가 그중 하나다.

21회를 맞이하면서 동아시아 안보의 제도화에 기여해 온 이 회의에서 올해는 미·중 간에 유례없이 날카로운 신경전이 펼쳐졌다. 포문을 열었던 것은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었다.

필리핀은 지금 지난 두테르테 정권 때와 달리 대중국 대결자세를 선명하게 취하고 있다. 필리핀의 태도 변화는 지난 4월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일본과 필리핀의 세 정상이 공동성명을 발표한 이래 확고해졌다. 이를 계기로 필리핀은 미국과 공동 군사훈련을 강화했으며, 미 육군이 지상발사형 중거리미사일 장치를, 비록 훈련 명목이긴 하나, 필리핀에 전개하는 것을 수용했다. 미·러 간 중거리핵전력(INF) 전폐조약이 실효한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기조강연에 나선 마르코스 대통령은 중국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스프래트리 제도(중국명 남사군도) 근해에서 중국과의 충돌이 격화하는 가운데, 만일 필리핀 측에 사망자가 발생한다면 이는 곧 '루비콘 강', 즉 전쟁의 강을 건너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필리핀은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며, 필리핀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있는 미국도 같은 기준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인식을 보이면서 미국과 필리핀이 공동으로 반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마르코스 대통령은 그동안 자제해 왔던 대만해협 문제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도 언급했다.

이에 대해 등쥔(董军) 중국 국방상이 발끈했다. 그는 대만 문제가 '핵심 중의 핵심' 문제라고 강조하면서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다. 중국 측 참가자인 허레이(何雷) 군사과학원 전 부원장까지 나서서, 마르코스 대통령의 연설을 '호전적'이라고 비난하고, 중국과 필리핀 사이의 '신사협정'을 최근 들어 필리핀이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응수했다.

일본 기하라 미노루(木原稔) 방위상도 등쥔 중국 국방상과의 회담에서 남중국해 정세에 대해 언급하고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 일본은 최근 미국 주도의 '격자형' 대중 억지 전략에서 핵심적 행위자로 부상하고 있으며, 매우 빠른 속도로 필리핀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대응에는 필리핀이 최근 영국, 호주 등과 함께 일본의 준동맹국 수준으로 격상된 현실이 반영되었다.

샹그릴라 대화에서 미·중이 직접 충돌하는 장면은 특히 아슬아슬했다.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현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유럽이나 서아시아와 무관하게, 아태지역, 즉 중국이 미국의 최우선 작전 전역(theater)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중국 측은 맹렬하게 반발했다.

유례없이 확대 강화되는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

이 회의에서 한·미·일의 삼각 안보협력은 다시 한 단계 높아졌다. 한국과 일본은 마지막 남은 현안이었던 초계기 사건에 대해 시비를 가리지 않은 채 봉합을 하고 군사안보 협력을 긴밀화한다는 데 합의를 끌어냈다. 양국 모두 국내적으로는 비판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지만, 미국은 크게 환영했다. 초계기 사건 봉합에 미국의 의향이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지 알 수 있다.

초계기 사건의 봉합이 지니는 의미는 아시아 안보회의 직후인 6월 3일부터 5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태평양 해병대 심포지엄(PALS, Pacific Amphibious Leaders Symposium) 2024'에서 확인되었다. PALS는 상륙군을 보유한 인태지역의 미 동맹국 및 우호국들이 참가하는 국제 안보회의다. 한국 해병대 사령부와 미태평양 해병부대 사령부가 공동으로 개최한 이번 대회에 일본 자위대 고위 장성이 처음으로 한국을 공개 방문했다.

이처럼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세 나라는 이번 여름에 공중, 해상, 수중, 사이버 등 동시다발 다영역 훈련 '프리덤 에지'를 처음으로 실시한다. 한·미연합훈련 '프리덤 실드'와 미·일 연례훈련 '킨 에지'에서 한 단어씩 따와서 만든 이름이다. 이와 동시에 북핵 대비 한·미·일 TTX(도상훈련)도 재개한다. 이는 2014년부터 실시해 온 것이지만 2020년 훈련이후로는 시행되지 않던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미·중 사이에 날카로운 설전이 벌어지고 한·미·일이 결속을 다지는 동안 남북관계는 가파르게 악화됐다. 지난 5월 10일 이후 재개된 탈북민 단체의 전단 살포에 대응하여 북한이 5월 28일과 29일, 그리고 6월 1일 두 번에 걸쳐 약 1000여 개의 오물 풍선을 날려 왔다. GPS 전파 교란 공격도 이어졌다.

이에 대응해 우리 정부는 9.19 군사합의 효력의 전면 정지를 선언하고, 탈북민 단체가 6일 새벽에 다시 대북 전단 살포를 강행했다. 9일에는 대북확성기를 설치하고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도 이에 반발해 또다시 오물 풍선을 날려 왔다. 대화의 통로는 막혀 있는 가운데, 긴장은 고조되고 있으며, 안전장치는 제거되고 있다.

지정학적 긴장 고조에 맞서는 글로벌사우스 국가들

그런 한편, 아시아 안보회의에서는 인도네시아의 프라보워 차기 대통령의 연설이 회의에 참가한 다수 국가들의 주목을 끌었다. "지정학적 긴장 고조에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은 환멸을 느끼고 있다"고 하여 군사적 대결이 아닌 외교의 기회 확대를 요구하는 국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다.

특히 아세안 국가들 사이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 일방적인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들이 많으며, 가자에서 전개되는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에 대해서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를 지지하는 미국에 대해서도 비판 여론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 안보회의는 미·중 갈등과 한·미·일 결속에 더해 글로벌사우스의 부상을 각인시켰다.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 주로 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에 위치한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는 우크라이나와 가자에서의 전쟁을 배경으로 국제정치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로 떠올랐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인도, 터키 등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요구하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했으며,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에서도 반이스라엘 태도를 명백히 표명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행위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지난 1월 26일 이스라엘에 제노사이드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명령한 데 대해, 원고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해서 글로벌사우스에 해당하는 많은 국가들이 이 명령을 환영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카림 칸 검사장이 하마스의 전쟁지도자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 체포장을 청구한 데 대해서도, 미국의 이중기준을 비판해 왔던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은 이 결정을 반기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 중국, 이란은 공공연히 미국과 서방의 질서를 거부하고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주창하고 있다. 이른바 'RIC' 국가들이다. 이 세 국가는 각각 양자 간 포괄적 전략동반자 협정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 구성원이기도 하다.

이란은 라이시 대통령의 리더십 하에서 동방정책을 펴며 서방과의 관계개선 노선에서 이탈해 BRICS, 상하이협력기구, 유라시아 경제연합에 합류했다. 이란의 가맹으로 이들 기구는 명실상부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이끄는 기구가 되었다. 라이시 대통령의 죽음은 이러한 추세를 변화시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다극적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중국과 러시아

5월 16일 베이징에서 발표된 중·러 공동성명은 2023년 3월의 공동성명에서 언급했던 다극화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성명은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과 그 리더 국가들의 실제 역량이 성장한 결과 다극적 세계질서의 윤곽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고 보고, 이러한 객관적인 요소들이 국제관계의 민주화 및 국제정의에 기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아가 성명은 "패권주의와 힘의 논리에 따라 사고하는 것에 익숙해진 국가들이 '국제법에 기반한 세계질서'를 훼손하고 이를 '규칙 기반 질서'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한 뒤, 러시아와 중국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다극적 세계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확인했다. 동북아시아에서 북한을 다극적 세계질서에 포섭하는 게 러시아의 역할이라면, 중국은 한국과 일본을 담당한 모양새다.

그로부터 열흘 뒤인 5월 26일에는 서울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열렸고, 27일에 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공동선언의 문안을 둘러싸고 발표되는 날 아침까지 조율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중국이 '비핵화 공통목표'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최종 문구는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는 문장으로 낙착되었다.

거꾸로 말하면, 이 세 가지 쟁점에 대해서는 생각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것에 불과했다. 한국 입장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의제인 한반도 문제에서 이를 "공통의 목표"로 설정하지 못하고, 서로 내세운 쟁점들을 각자 강조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던 것이다.

공동성명 초안에 있던 "힘과 위압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용인할 수 없다"는 내용도 중국 측의 반발로 삭제되었다. 공동성명에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규칙 기반 국제질서'가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질서'라는 표현으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이다.

'캠프데이비드 정신(The Spirit of Camp David)'에서 한·미·일이 공유하고 수호할 가치로 강조되었던 '규칙 기반 국제질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훼손하려는 패권주의의 논리에 불과했다.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질서'와 '규칙 기반 국제질서'는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개념이다. 그 커다란 간극을 메우는 데에서 중국 입장이 관철된 것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윤 대통령,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연합뉴스

한·중·일 정상회담이 암시하는 국제질서 변환의 방향

이번 한·중·일 공동선언은 한·중관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올인하여 북한과 중국을 고려 대상에서 지운 한국 외교가 받아들인 성적표였다.

우리 정부는 중국을 끌어들인 회담 개최 자체가 한·미·일 관계 강화의 결과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으나 한·미·일의 밖에서 국제정세를 바라보면, 회담에 참가한 중국의 의도가 보다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한다면 이제는 우리가 비운 운전석 자리에 일본이 들어앉을 수 있다는 것도 각오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한·중·일 공동선언이 나오자, 북한은 "누구든지 우리에게 비핵화를 설교한다면 가장 엄중한 주권침해 행위로 간주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런 한편 북한은 회담의 명칭을 그동안 '중국·일본·남조선 수뇌회담'이라고 쓰던 것을 '한·일·중 3자 수뇌회담'이라고 표현하여 변화된 입장을 보였다. 주최국을 먼저 언급하면서 일본, 중국, 한국의 순으로 개최된 것을 반영한 국제관례를 수용한 것이다.

남북 관계를 두 개 국가 간 관계로 규정한 데 따른 변화가 여기에도 반영되었다. 나아가 북한은 스스로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일원으로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은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에서의 전쟁으로 촉발된 국제질서 변환은 북한 입장에서 볼 때,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 적응하지 못한 실패를 만회할 기회로 보일 것이다.

글로벌사우스 외교로 새로운 질서 구축에 앞장설 때다

최근 우리 정부도 글로벌사우스 외교의 의미와 중요성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는 그 시험대가 될 수 있다.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서 자유와 인권, 규칙 기반 국제질서 등의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글로벌사우스 외교의 기초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가치외교의 깃발 아래 미·일에 올인하는 외교를 수정하지 못한다면, 한국 외교는 얼마 안 가 이중성과 한계를 드러내며 운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한·중·일 정상회담의 결과를 받아들고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했다면 이제야말로 미·일 올인 외교의 한계를 뛰어 넘어, 진정한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새로운 질서 구축에 당당히 나설 때다. 그것이 유럽과 중동의 두 개의 전쟁이 동아시아로 파급되는 것을 막고 한반도의 위기를 넘기는 길이다. 또한 세계질서 변환기의 위기를 다시없는 공고한 한반도 평화 구축의 기회로 만드는 길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외교의 최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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