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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업장 노동자 쥐어짜는 '다단계 하청구조' 더 이상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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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작은 사업장 노동자 쥐어짜는 '다단계 하청구조' 더 이상 안 된다

[배제와 차별을 넘어,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찾기] ①

작은 사업장이 왜 이렇게 많을까요? 어째서 법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걸까요? 작은 사업장은 정말 지불능력이 없는 걸까요?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찾기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작은 사업장을 둘러싼 숱한 의문과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 해답을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 연속기고를 통해 독자 여러분과 함께 찾아보려고 합니다.필자주

[배제와 차별을 넘어,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찾기]

① 작은 사업장 노동자 쥐어짜는 ‘다단계 하청구조’ 더 이상 안 된다 / 임용현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 사무국장

② 법은 왜 작은 사업장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가 / 조영신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 운영위원(법무법인원곡 변호사)

③ 지불능력을 이유로 배제될 수 없는 노동권에 대해 / 엄진령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 운영위원

④ 권리보장 요구의 목소릴 더 크게! 작은 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에 함께 나서자 / 이미숙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 위원장

▲반월시화공단 전경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

반월시화공단(반월국가산업단지와 시화국가산업단지를 통칭해 부르는 말)에 처음 와 본 사람들은 대부분 흠칫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인다. 우선 생각했던 것보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 연달아 놀란다. 공단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마저 든다. 낡고 색이 바랜 공장 외벽부터 군데군데 녹슨 철재 구조물까지, 영락없는 산업화 시대의 정체된 모습들 같다. 한 블록에 꼭 하나 씩은 있는 작고 허름한 식당 안에서는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와 사람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뒤섞여 분주한 느낌을 한껏 자아낸다. 여기서 수 킬로미터만 벗어나면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최첨단의 풍경이 펼쳐진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사실 누구나 이곳에 오면 그런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런 풍경에서 옛것의 정취를 느끼는 사람들도 더러 있겠지만, 공단에서 일하는 당사자라면 그와 비슷한 감정이라도 과연 품을 수 있을까? 세월 속에서 풍화되어버린 공단의 흔적들은 결국 이곳을 대하는 정부와 사용자들의 태도를 대변하는 모습일 따름이다. 그 흔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사업장을 둘러싼 고질적인 문제점들도 속속 드러난다.

대기업 위탁생산기지로 전락한 산업단지

반월시화공단은 조성될 때부터 서울에 흩어져 있던 공장들을 인근 지역으로 옮겨 '중소사업체 전문단지'로 육성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개발이 이뤄진 곳이다. 정부는 제조업 기반의 산업단지 터를 닦았고, 중소사업체들은 생산 활동에 필수적인 공장 부지를 비롯해 공업용수 공급시설과 오폐수 처리시설, 전기 및 통신시설, 가스시설 등 각종 기반시설을 장기간 저가로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처럼 산업단지가 제공하는 다양한 인프라와 집적효과는 숙련된 기술력을 보유했지만 자본력은 비교적 취약한 중소사업체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정부가 주도한 제조업 중심의 산업단지 육성계획이 이곳을 중간재, 부품, 소재 등을 만드는 작은 사업장들의 대단지화로 이끈 것이다. 그 결과 지금도 반월시화공단 입주기업 상당수가 기계 제조업, 전기전자 등 자동차 부품 관련 업종, 석유화학, 도금 및 염색 등을 주력 업종으로 삼고 있고, 사업체 규모는 50인 미만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국내 제조업의 중심축을 이루는 업종으로는 조선‧기계, 자동차‧자동차부품, 반도체, 전자‧전기, 철강, 석유화학 등이 있다. 반월시화공단 입주기업들이 종사하는 업종도 이와 상당 부분 겹친다. 각 업종을 대표하는 국내 기업들의 이름을 한번 떠올려 보자. 열거한 업종 순서대로 언급해 보면 HD현대중공업, 현대‧기아차, 삼성반도체, 삼성전자, LG화학 같은 굵직한 대기업들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그리고 이들 대기업은 대부분 수직계열화된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갖고 있다. 요컨대 원청 대기업이 하청업체를 통해 중간재나 부품, 소재 등을 공급받아서 본공장에서 최종적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을 다단계 하도급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쥐어짜기 시스템이 노동자 권리찾기 가로막는다

반월시화공단에 있는 한 자동차부품 2차 하청업체 C사의 사례를 보면 좀 더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진다. C사는 자동차의 속도를 조절하는 장치인 변속기용 기어부품을 생산해서 완성차 제조사인 A사에 공급하고 있다. C사는 2차 하청, 즉 1차 하청업체 B사로부터 재하청을 받아 기어부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수직사다리의 하단부에 자리한 기업이다. 다시 말해 A사와 부품공급계약을 맺은 기업은 1차 하청업체인 B사이고, C사는 B사와 부품공급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때 수직사다리의 정점에 있는 A사는 생산비 절감을 위해 B사에 저가 납품을 종용한다. B사가 직면한 단가인하 압력은 고스란히 아래(A→B→C)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A-B-C 원‧하청 기업 사이에서 다단계로 이뤄지는 생산구조는 고질적인 원‧하청 종속관계를 만드는 주요 토대다. B사, C사처럼 완성차에 부품을 조달하는 기업들 대부분은 작은 사업장인데, 이들 기업은 자동차산업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A사 같은 완성차 대기업과의 거래가 거의 유일한 판로이기도 하다. 독자적인 사업구조를 갖지 못한 B사나 C사로서는 낮은 협상력으로 말미암아 원청의 불공정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게 된다.

반면 A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수직계열화된 생산구조가 더할 나위 없이 효율적이다. 적기 생산을 위한 원활한 부품 조달이 가능하며,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단가 후려치기'를 통해 원청이 원하는 바를 뜻대로 관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쥐어짜기만 하면 결과물은 알아서 가져다준다.

결국 원청에 납품하는 부품사들은 각종 비용과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수직계열화된 생산구조에서 작은 사업장들은 경영상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데,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도 이 같은 원청의 '갑질'을 모르지 않는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좀체 입을 떼기 어려운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그런데 아래로 아래로 전가되는 비용과 위험 부담 책임은 원‧하청 기업 관계 안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원청 기업의 가혹한 쥐어짜기에 하청업체는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자신의 부담을 경감해 나간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빨리빨리' 속도전과 조기출근 등 '공짜노동'에 어느새 길들여진 까닭도 철저한 쥐어짜기 식 생산구조가 산업단지에서 기본값으로 여겨지고 있는 탓이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 개선, 정부가 나서야

반월시화공단이 어느덧 활력은 사라지고 생기 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이유도 결국 자구책을 마련할 역량도, 의지도 없는 중소사업체들의 민낯이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세기가 다 되도록 공장의 설비도, 기반시설도 도무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는 이유도 결국 마찬가지 아닐까. 대기업이 하청업체를 수탈하는 구조가 공고해질수록 노동자들의 일과 삶도 날이 갈수록 팍팍해진다.

정부가 이런 문제는 도외시한 채 기업 자율을 원칙으로 내세우며 '원‧하청 격차해소'를 부르짖는 것은 더욱 기가 찰 일이다. 원청의 수직계열화된 생산구조에 산업단지 입주기업 대부분이 편입돼 있는 현 상황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도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진짜 문제는 산업단지를 저임금‧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배후 생산기지로 활용하는 원청 대기업과 이를 본체만체 하는 정부에 있다.

특히 정부는 노후 산업단지 인프라‧정주여건 개선이 시급하다는 미명하에 입지 관련 규제완화를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당장 7월부터 입주 업종 제한이 완화되고 산업단지 내 카페, 체육관, 식당 등 생활편의시설 설치 면적이 늘어나게 된다. 즉 제조업 중심의 산업단지를 첨단‧신산업 중심으로 재편하고 산업용지도 다목적으로 개발할 수 있게 토지용도 변경을 간소화하겠다는 게 정부 정책의 골자다. 그동안 뿌리산업 집적 정책을 통해 수출과 고용의 메카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이곳을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이다. 이때 '미래 성장동력'은 정부의 재편 계획에서 가장 큰 관심사다. 자체적인 산업전환 역량이 없는 제조업 작은 사업장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미래 먹거리산업 위주로 산업단지를 재편하겠다는 정부 구상은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의 '소리 없는 구조조정'을 전제한 것이기도 하다. 반월시화공단을 비롯한 산업단지들이 고질적으로 겪고 있는 노후시설의 개선,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개선 없이 장밋빛 미래를 말하는 건 또 다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를 배제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산업단지 재편을 말하기 전에 '지금, 여기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보다 건강하고 안정적인 노동조건 보장을 먼저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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