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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하에서 벌어지는 기후위기에 주목하라

[초록發光] 철도 지하화 사업에 반대한다

한국에서는 "개발 효과가 '4대강 사업' 못지않다"고 호들갑을 떨 때(매일경제, 2008년 12월 16일 자), 해외에서는 지하공간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었다. 2010년 이후 대규모 민간 건설시장이 경색되면서 건설업계의 다음 먹거리는 공공 인프라가 되었다. 이때 맥락은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 인프라를 추가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수익을 내기 좋지만 이미 지상 인프라가 차 있는 수도권에 인프라를 건설하기 위한 방안이다. 이는 기온 조절의 용이함, 외부 충격의 안전 등을 근거로 억지스럽게 기후변화를 대응하는 데 지하공간이 유리하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조차 이를 기후재난에 취약한 지역의 인프라가 아니라 대규모 도시에 '여유 공간 확보'라는 맥락에서 바라보는 데서도 확인된다.

하지만 오송역 터널 참사에서 볼 수 있듯이 침수의 문제는 지하공간이 기후위기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코크의 포로는 최근 리뷰 연구에서 지하 교통인프라에 미치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증가하고 있는 홍수와 그에 비례한 위험도, 극단적인 기온 변화에 의한 교통 장비의 내구성(실제 시카고에서 진행된 실증조사에서는 도시 내 고온 토양의 경우 최대 12밀리미터가 부풀어 올랐다), 고습에 의한 지하시설의 부식 가속화, 해수면 상승과 여름에 추위가 발생한달지 겨울에 폭염이 생기는 이상 기온 등으로 정리했다. 시카고의 지하철 시스템인 시카고 루프가 기후변화에 따른 지하열섬 효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연구는 '지하에서 벌어지는 기후변화'를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 로드아일래드대 연구팀은 2015년에서 20년까지 범지구항법시스템과 간섭계합성개구레이더라는 관측 도구를 이용해 세계 99대 해안도시의 침하 속도와 면적을 조사했더니 중국 톈진은 1년에 5.22센티미터씩 가라앉고 있으며 서울 역시 0.66센티미터씩 가라앉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이유는 도시지역의 고질적인 지질학적 현상인 지하수 추출이지만 여기에 기후위기에 따른 해수면 상승이 가세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그린피스는 최근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해수면 상승과 홍수가 겹치면 2030년에는 주요 하천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저지대 지역이 물에 잠길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신화된 철도 지하화 사업

막스 베버가 근대화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로 제시한 것은 '탈주술화'였다. 기존 종교 등의 영향력으로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작동하던 사회가 이성에 의해 삶의 영역이 합리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탈주술화된 시대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성이고 이성은 공론장과 합리적 추론 그리고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강화된다. 이런 탈주술화는 단순히 사회가 탈 종교화되었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되었던 4대강 사업의 경우에는 과학적 증거에 의해 추진되지도 않았지만 이후 사업 효과에 대한 실증적인 검증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단지 막대한 경제적 편익을 줄 것이라는 환상에 도취된 사업에 가깝고 이를 '미신적 믿음에 의한 이성의 마비 상태'로 부를 수 있다. 경제적 편익이라는 것이 하나의 참고점이 되지 않고 판단의 유일한 근거가 되면 될수록 사회정책의 미신화는 심해진다. 우리는 가덕도 신공항을 비롯한 다양한 토건 사업에서 이를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종료한 21대 국회는 이런 미신화된 대규모 사업의 사례를 또 하나 남겼다. 지하철 지하화 사업이다. 지난 2024년 1월 9일 국회는 '철도 지하화 및 철도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소위 쌍특검 정국이라고 불리는 극한 대립 속에서도 해당 법률안은 총 262명의 국회의원이 출석한 가운데 찬성이 257명, 반대 2명, 기권 3명으로 통과되었다. 이 법률안이 여야 막론하고 지지를 받았던 것은 해당 법률이 전형적인 '총선용'이기 때문이다. 해당 법률은 민주당 김경협 의원 외에 민주당 의원 35명이 공동 발의한 2022년 법률안과 민주당 허종식 의원이 대표 발의한 2023년 9월 법률안 그리고 사실상 정부의 청부입법이라 할 수 있는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이 대표 발의한 2023년 11월 법률안 마지막으로 민주당 이인영 의원이 발의한 2023년 11월 법률안 등 4개 법률안이 병합되어 대안으로 제정된 것이다(2023년 11월 권영세 의원안과 이인영 의원안의 가장 큰 차이는 사업비 조성에 정부의 부담을 넣느냐 마느냐는 것이었고 이인영 의원안은 정부 재정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언론 등에서는 해당 사업이 최소 30조 수준에서 최대 80조까지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정작 해당 법률안에는 공통적으로 비용추계서가 첨부되어 있지 않다. 국회는 특히 재정이 소요되는 법률안을 제출할 때 반드시 비용추계서를 첨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재정지원, 부담금 감면, 민간자본 유치 사업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 항목을 담고 있는 민주당 이인영 의원 법률안의 비용추계서 미첨부 사유서를 보면 "의안의 내용이 선언적, 권고적 형식으로 규정되는 등 기술적으로 추계가 어려운 경우"(국회법 제79조의2에 의한 '의안이 비용추계 등에 관한 규칙' 제3조2항3호)이기 때문에 비용산정이 어렵다 말한다.

하지만 이미 2014년 5월에 최종보고된 '경부선(서울역~당정역) 지하화 기본구상용역'이 있다. 해당 용역은 이미 13조 원의 사업비를 추정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가급적 지하화 깊이를 얕게 하고 수반되는 보상비를 최소한 결과다. 게다가 서울시가 수행한 '지상철도 지하화 추진전략연구 보고서'에는 국철 지하화에 32조 6000억 원이 든다는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즉 이미 참조할 수 있는 사례가 있어 추계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재정 논란을 피하기 위해 비용추계서를 빼먹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그렇게 부담을 없앤 자리엔 '지역 단절 해소', '균형 발전 해소'와 같은 근거 없는 견해만 넘친다. 근거가 없는 견해는 '주문'에 가깝다.

▲국토교통부 오송천 철도건설과장이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대상 사업 선정을 위한 지자체들의 사업 제안 가이드라인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철도 지하화 대신 국민연금 투자

총선에 가려져 있었지만 연금 개혁 이슈는 해결되지 못하고 다음 국회로 넘어갔다. 가장 큰 쟁점은 보장성을 높이는 것과 그에 필요한 재정적 부담을 누가 질 것인가라는 점이다. 보장성 확대를 우선하는 입장에선 정부의 재정지출을 통해서 가입자의 부담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이를 비판하는 입장에선 정부의 재정지출도 미래세대의 부담이라는 논리를 편다. 이 평행선 같은 주장은 오로지 연금 개혁이라는 논리에만 빠져 있다는 점에서 거울상의 논리에 가깝다.

오히려 기후위기 시대에 한정되어 있는 재정을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분배할 것인가라는 고민과 함께 가야 한다. 단순화해서 보면 윤석열 정부가 민생대책으로 내놓은 GTX 총 사업비 134조 원의 절반에 달하는 재정투자 대신 연금에 투자하는 것이 타당하다. 비슷하게 수십조 원의 비용이 들어갈 철도 지하화 사업의 편익이 국민연금에 대한 선행적 투자의 편익보다 높지 않다면 이를 재고하는 것이 맞다. 기후위기가 연결되어 있듯이 재정의 구조 역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쪽의 대규모 재정지출을 두고 다른 쪽에서 재정이 부족하다 한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정부는 철도 지하화에 들어가는 비용이 국가가 빚을 내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2024년 2월 19일 자 대한민국정책브리핑). 하지만 통과된 특별법은 철도 부지를 유동화해서 채권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한다고 설계되었다. 그렇게 발행된 채권이 팔릴지도 모르겠지만 설사 팔린다 해도 채권발행액을 사업으로 환수하지 못하면 꼼짝없이 국가 재정이 들어가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철도 부지를 내놓아야 한다. 그러니까 철도 지하화 사업은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철도시설과 같은 중요 자산을 판돈으로 하는 도박이지만 민간사업자 입장에서는 철도 부지를 헐값이 매입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는 것이다. 애당초 민간투자사업의 취지가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는 것이라면, 추진하고 있는 철도 지하화는 높은 위험은 정부가 지고 수익의 안정성은 민간 기업이 보장받는 식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앞서 말한 2014년 연구용역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나온다. 특히 지방정부의 재정부담에 대한 부분이다.

"1. 사업의 실현 가능성 확보를 위해서는 매각 부지에 대한 선수요 확보 방안을 수립이 필요함 : 폐선부지 매각을 원형지 상태로 공공 택지 개발 공기업인 LH 공사, SH 공사, 경기도시공사 등에 사전매각하고 공공 택지개발 공기업이 택지를 개발해서 민간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선수요 확보 방안을 수립하였습니다.

2. 자금 부족 시 지방자치단체의 추가 출자 방안 등 자금 보충 계획 수립이 필요함 : 폐선부지 매각이 잘 안되어서 자금부족이 발생하는 경우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이기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자금 보충하는 것으로 '특별법'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며, 필요시 자금 보충은 중앙정부가 하는 것으로 반영하였습니다."

철도 지하화의 부담은 자칫 사업에 참여하는 공기업의 부담으로 전가될 공산이 크다. 철도 자산을 관리하는 국가철도공단의 부실화와 더불어 지하철도를 운영하게 되는 철도공사 역시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 그리고 철도 부지를 선매입할 수도 있는 공사들에도 피해가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 더 나아가 지방자치단체가 한번 시작된 사업의 덫에 빠질 경우에는 지속적인 재정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이미 지난 5월 7일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통합개발계획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기로 했다. 이 사업에 대한 책임은 지방자치단체가 지는 것이고 국토교통부는 제출된 사업에 대한 평가만 하는 식으로 물러나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즉 철도 지하화 사업은 국민연금의 고갈 이전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부실화를 불러올 수 있다

백번 양보해서 철도 지하화로 경의선 숲길 수준의 편익이 날 수 있다고 보자.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고 집값이 오를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수십조 원의 돈을 쓰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더 많은 국민들이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돕는 사회 보장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나은가. 특히 기후위기 상황을 고려하면 한번 시작할 경우 끝날 때까지 돈을 들이부어야 하는 대규모 토목사업을 섣부르게 시작해서는 안 된다.

철도 지하화에 반대한다

비용의 측면에서도 지하 인프라의 건설 비용이 상대적으로 지상 인프라에 비해 경제적 우위에 있는 것은 맞지만 이는 유지관리 및 내구연한에 따른 정비 비용에서는 역전된다. 현재 도로 분야의 경제적 타당성 조사의 기준이 되는 KDI의 '예비타당성 조사 수행을 위한 세부지침 도로, 철도 부문 연구'는 유지관리비 항목을 제시하고 있는데, 터널 구간의 도로는 고속도로와 일반도로의 일상보수비 중 수선유지비, 대수선비의 환기 및 방재시설 및 ITS 시설 정비 비용이 순수하게 추가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국토연구원의 '지하도로 건설에 따른 도시 부문별 효과 분석 방안'은 지하공간 개발에 대한 대외적인 호응과 추가적인 편익 산출 요소의 도입이라는 낙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교통인프라를 지하화했을 때 나타난 기존의 편익조차 제대로 실증화된 적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후위기는 우리를 단기적인 이해득실보다 좀 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변화에 주목하도록 이끈다. 또한 하나의 사업이 하나의 사업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어떻게 연관되고 영향을 주고받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철도 지하화의 문제는 단순히 철도 지하화의 찬반 문제로 축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쪽으로는 우리 사회가 아직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못한 지하 공간의 기후변화 영향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다른 쪽으로는 공공 재정 사용의 우선순위라는 측면에서 철도 지하화의 시급성을 묻고 오히려 기후 재난의 불평등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아무리 고민해도 철도 지하화는 불필요한 사업이면서 시급하지도 않을뿐더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 문제의 우선순위도 아니다. 그래서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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