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이란 반정부 시위의 또 다른 도화선이 됐던 16살 소녀 니키 샤카라미의 의문사가 이란혁명수비대(IRGC) 연계 보안 인력의 성폭력 및 폭행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기밀 문서를 확인했다고 영국 BBC 방송이 29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BBC가 확인한 이란혁명수비대 기록보관소에 등록된 2022년 반정부 시위 관련 "극비" 문서는 샤카라미 사건 관련 혁명수비대가 연 청문회 결과에 대한 요약본이다. 샤카라미는 2022년 9월20일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것을 마지막으로 실종돼 9일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
당국은 샤카라미가 자살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보안군이 가족에게 주검을 인계하지 않고 비밀리에 매장했다는 폭로가 나오는 등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또래 여성의 의문사는 이란 여학생들의 광범위한 시위 참여를 촉발했다.
해당 문서에 따르면 반정부 시위를 감시하던 보안팀은 샤카라미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행동과 반복적인 휴대전화 사용"을 근거로 그를 시위 "지도부"로 의심해 체포를 시도했고 샤카라미는 거의 한 시간 동안 이들에 쫓겨 도주하다 붙잡혔다. 이 상황은 실종 당시 샤카라미의 친척에 의해 나왔던 샤카라미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보안군에 쫓기고 있다고 말했다는 증언과 일치한다.
붙잡힌 샤카라미는 보안팀 차량에 구금됐다. 겉으로 드러난 표식이 없는 해당 냉동차량 화물칸에 보안팀 3명과 함께 실린 샤카라미는 처음엔 인근 임시 경찰 초소로 끌려갈 예정이었지만 너무 붐벼서 거절당했고 이후 차로 35분 거리의 구금 센터로의 이송도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고 구호를 외치는" 샤카라미가 다른 여성 구금자들을 선동해 폭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이후 보안팀이 혁명수비대 본부에 조언을 구한 뒤 샤카라미를 정치범 수감으로 악명 높은 테헤란 에빈 교도소로 이송시키는 과정에서 샤카라미가 욕설을 퍼부으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동승한 보안팀 아라쉬 칼호르가 샤카라미에게 "자신의 양말을 물려" 입을 막으려 했지만 발버둥은 계속됐다.
결국 다른 팀원 사데그 몬자지가 샤카라미를 깔아 뭉개 "위에 올라 앉은" 뒤에야 상황이 진정된 것처럼 보였지만 이후 샤카라미의 욕설이 다시 들렸다고 또 다른 팀원 베흐루즈 사데기가 증언했다고 한다. 냉동차량 안이 깜깜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칼호르가 휴대전화 불빛을 비추자 몬자지가 샤카라미의 "바지에 손을 넣은" 모습이 보였다.
BBC가 본 문서에 따르면 칼호르는 이후 팀원들의 자제심을 잃은 폭행이 시작됐다고 증언했다. 샤카라미를 곤봉으로 때리는 소리가 들렸고 마구잡이 폭행이 시작됐지만 샤카라미를 때린 건지 서로를 때린 건지도 몰랐다고 한다.
화물칸이 아닌 운전석 옆에 타고 있던 보안팀장 모르테자 잘릴이 운전사에 차를 세우라고 지시했고 그가 화물칸을 열었을 때 샤카라미는 이미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잘릴은 "상태가 좋지 않았던" 샤카라미 주검의 얼굴과 머리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이는 샤카라미 사망 당시 보도됐던 그가 "단단한 물체에 충돌한 것에 의한 다수의 부상"을 입어 사망했다는 사망 진단서 내용 및 주검에서 광대뼈, 코, 치아 골절과 두개골 부상이 발견됐다는 가족들의 증언과 일치하는 상황이다.
샤카라미에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지목당한 몬자지는 샤카라미의 바지에 손을 넣은 것은 부인했지만 샤카라미의 위에 앉은 상태에서 엉덩이에 손을 댔을 때 "흥분했다"는 것은 인정했고 이것이 샤카라미를 화나게 해 "그(샤카라미)가 내 얼굴을 찼고 나는 스스로를 방어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했다.
이후 잘릴은 혁명수비대 본부에 전화해 샤카라미 주검 처리와 관련해 상급 장교와 통화했고 해당 장교는 "이미 우리 기지에 사망자가 발생해 사망자 수를 20명으로 늘리기 원하지 않는다"며 주검을 "길에 버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BBC는 해당 문서가 성폭력으로 인해 화물칸에서 싸움이 일어났고 보안팀 공격이 샤카라미 사망의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보고서는 이 과정에서 "곤봉 3개와 테이저건 3개가 모두 사용됐고 어떤 타격이 치명타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BBC는 문서 작성의 토대가 된 샤카라미 죽음 관련 청문회가 5시간 가량 진행됐으며 가해자 중 누구도 처벌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샤카라미를 끌고 간 보안팀이 혁명수비대와 연계돼 있지만 때로 개별 행동을 하는 이란의 준군사 조직 소속으로 "필요한 약속과 보안 보장을 받는 것 이상의 후속 조치는 불가능했다"고 문서가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들과 통화한 혁명수비대 상급 장교도 서면 견책을 받는 데 그쳤다.
이란 반정부 시위는 2022년 9월 중순 히잡을 부적절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끌려간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사망 당시 22살)가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촉발됐다. 이란 전역으로 번져 노동자, 대학생, 청소년들까지 참여한 시위에서 여성들은 히잡을 벗어던지고 쿠르드족 페미니스트 구호인 "여성, 삶, 자유"를 외쳤다.
시위대는 진상조사 요구를 넘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퇴진, 도덕 경찰 폐지까지 요구했지만 이란 정부가 몇 달간 시위 참여자들을 폭력 진압하고 사형까지 집행하며 시위는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대규모 시위가 잦아든 이후에도 이란 거리 곳곳에서 여성들이 히잡을 쓰지 않은 채 걷는 모습이 목격되는 등 당국이 단속을 비교적 완화하는 듯 했지만 이달 들어 다시금 히잡 착용 단속이 강화되고 있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에 기반을 둔 이란 반체제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지난 주말 테헤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을 딸을 연행하려는 보안군에 어머니가 격렬하게 항의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 퍼졌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미사일 및 무인기(드론) 300기를 날려 공격한 지난 13일 이란에서 히잡 단속을 강화하기 위한 새 캠페인이 출범했다고 덧붙였다.
24일 <가디언>은 최근 도덕 경찰 등에 의해 체포된 여성들 및 그들의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눈 결과 여성들이 구금 상태에서 폭력과 모욕을 당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 중 한 젊은 여성은 끌려 가 8명의 요원들에 둘러싸인 채 욕설과 함께 다리, 배를 포함해 전신을 구타 당했다고 말했다.
연행됐던 또 다른 여성은 당시 구금 센터에 여성 40명 정도가 있었고 다섯 시간 가량 폭행과 모욕이 가해진 뒤 일부 여성들이 풀려났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그러나 한 이란 학생이 감시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알지만 "히잡을 쓰거나 정권의 규칙을 따르지 않겠다"며 계속 저항할 것을 선언했다고 전했다.
지난주 이란 법원은 2022년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음악을 발표한 유명 래퍼 투마즈 살레히(33)에게 사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26일 유엔(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이란 경찰이 "엄격한 히잡법에 따라 여성, 소녀, 그들을 지지하는 남성에 대한 폭력적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최대 징역 10년형 및 태형을 동반한 더 강력한 히잡 단속법이 승인을 앞두고 있다고 우려했다.
볼커 투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란 정부가 국제 인권 규범 및 기준에 따라 유해한 법률, 정책, 관행의 개정과 폐지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젠더 기반 차별 및 폭력을 근절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