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에 끌려 간 여성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이란 반정부 시위가 한 달 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시위에 참여한 10대 청소년들의 사망이 이어지면서 분노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청소년들의 시위 참여가 두드러지며 이란 당국은 체포한 청소년들을 정신병원으로 보낸 사실을 인정했다. 정부의 강경한 입장엔 변함이 없지만 정치 엘리트층에서 히잡 강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며 내부 분열 조짐도 감지된다. 이번 시위에 구심점이 없는 것은 정부의 진압을 어렵게 만들고 있지만 목표 달성도 쉽지 않게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제앰네스티는 13일(현지시각)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 달 째 이어지고 있는 이란 시위에서 적어도 23명의 10대가 진압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사망한 10대 중 20명은 남성이고 3명은 여성이다. 피해자는 16~17살이 대부분이고 11살 어린이까지 총에 맞아 숨졌다. 이번 보고서는 지난달 20일부터 30일 사이 열흘 간의 피해 상황에 대해서만 집계한 것으로 실제 피해 상황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유니세프도 지난 10일 캐서린 러셀 총재 명의로 성명을 내 이란 시위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살해 당하고 부상 당하고 구금됐다는 보고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데 대해 극도의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란에서는 지난달 16일 복장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가 구금한 뒤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22) 사건이 알려진 뒤 한 달 째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인권단체는 강경 진압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200명이 넘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앰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보안군이 발사한 총탄에 맞아 숨진 가운데 4명은 구타를 당해 숨졌다. 국제앰네스티와 노르웨이에 기반을 둔 이란인권단체(IHRNGO)의 자료를 종합하면 지난달 22일 알보르즈주 카라지에서 친구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한 16살 여성 사리나 에스마일자데는 보안군에게 곤봉으로 머리를 맞은 뒤 치명상을 입었고 그의 가족은 23일에 에스마일자데의 사망을 확인됐다. 보안군이 그의 머리를 반복해서 가격했고 피가 많이 났으며 병원에 이송되지 못한 채 인근 민가에서 치료를 받다가 그대로 숨을 거뒀다는 증언이 있었다. 보안군은 에스마일자데의 신원 확인을 위해 그의 주검의 얼굴 부분만을 보여줬고, 가족들은 이 때 그의 얼굴에 수많은 상처와 오른쪽 이마가 심하게 으스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달 7일 알보르즈주 지방 검사는 에스마일자데가 그의 할머니집 지붕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으며 보안군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것은 "적대적 매체의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지난달 20일 테헤란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16살 여성인 니카 샤카라미도 이날 밤 11시30분께 엄마에게 보안군에 쫓기고 있다고 다급한 전화를 건 뒤 실종돼 거의 열흘이 지난 29일에 가족에게 사망 사실이 알려졌다. 앰네스티가 검토한 매장 증명서에 따르면 샤카라미의 사망일은 실종된 지 하루 만인 지난달 21일이고 사인은 "단단한 물체에 충돌한 것에 의한 다수의 부상"이다. 주검을 확인한 가족들은 샤카라미의 광대뼈, 코, 치아가 부러졌고 두개골도 부상도 발견했다고 전했다. 이란 국영매체는 샤카라미의 죽음은 시위와 관련이 없으며 친척집 근처 건물 옥상에서 떨어진 것이 사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샤카라미의 어머니는 국영 매체가 보도한 영상 속 여성이 그의 딸이 아니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12일 니카의 어머니 나스린 샤카라미가 이 매체와의 통화에서 당국으로부터 그의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하라는 협박을 받고 있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그러나 이 통화가 도중에 갑자기 끊겨 버렸고, 이 번호로는 전화 연결이 더 이상 되지 않는다는 국영통신사의 음성 메시지만 나왔다고 덧붙였다. 앰네스티는 17살 여성 세타레흐 타지크와 16살 남성 메디 모사비 니코도 시위 중 구타에 의해 숨졌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니카 샤카라미와 사리나 에스마일자데가 이란 반정부 시위의 새로운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고 13일 짚었다. 매체는 이들의 초상이 새겨진 벽보가 이란 전역에 비밀스럽게 퍼지고 있으며 시위대가 이들의 이름을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에서 청소년들의 시위 참여가 두드러지는 가운데 당국은 체포한 청소년들을 정신병동으로 보내고 있다고 인정했다. 미국 CNN 방송은 유세프 누리 이란 교육부 장관이 11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구금된 일부 학생들을 "심리치료기관"으로 이송했으며 이는 그들의 "반사회적 성격"을 "개조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누리 장관은 구금된 학생의 수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이들의 정신이 "개조된 뒤 수업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위가 사그라들 조짐이 보이지 않음에도 이란 정부는 강경 일변도로 대응하고 있지만 지배계층 내에서 다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2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알리 라리자니 이란 전 국회의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극단주의적" 정책이 대중의 극단적 반응을 불러왔다며 히잡 단속을 비판했다. 그는 "히잡에는 문화적 해결책이 있다"며 "문화 현상이 널리 퍼졌을 때 강경 대응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1979년 이슬람혁명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히잡을 착용했다고 덧붙였다. 라리자니 전 의장은 에브라힘 라이시 현 이란 대통령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에 의해 지난해 대선 출마를 저지당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란혁명수비대(IRGC) 출신으로 수십 년 간 이란 정계의 핵심 인사로 평가 받았다. <가디언>은 이란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 "균열"이 일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CNN 방송은 이번 시위가 개혁 요구를 넘어서 이슬람공화국 자체를 폐지하고자 하는 봉기로 나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로함 알반디 런던정경대 역사학 교수는 이 방송에 "이는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아니다. 이는 이슬람공화국 종결을 요구하는 봉기"라며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봐 온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알반디 교수는 현재 이란 경제의 근간인 석유 산업 노동자들에게까지 번진 이 시위가 전 산업 부문에 걸친 총파업으로 번진다면 "국가가 완전히 마비되며 국가의 무력함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란 활동가들은 총파업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일부 상점과 석유 산업에서의 파업이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이란에서 석유 노동자들의 시위 가세는 1979년 이슬람혁명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뚜렷한 구심점이 없다는 것도 이번 시위의 특징이다. 영국에 기반을 둔 방송 이란인터내셔널은 13일 특정 지도자가 시위를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시위를 쉽게 진압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구심점이 없기 때문에 이슬람공화국 전복을 내세운 시위의 목표가 달성되기 더 어려워 보이며 설사 요구가 관철되더라도 이를 지속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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