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을 두고 한국 언론은 환호했습니다. 차별과 폭력, 저임금과 착취에서 벗어나려 한 아이슬란드 여성들의 파업은 성별임금격차를 비롯한 성차별을 개선하는 힘이었습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을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여성노동자들의 자리마저 삭제하려 합니다. 여성노동자들이 싸워 쟁취한 성과마저 지우려합니다. 이에 한국에서도 2024년 3월 8일 여성의 날을 여성파업으로 돌파하고자 합니다. 41개의 단체와 노조가 모여 2024여성파업조직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연재 기고 '역행하는 시대, 우리가 멈춘다'는 2024여성파업의 의미와 현재에 대해 말합니다.
인간은 의존하고 돌보는 존재다. 돌봄은 생명이 꺼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도록 하며, 인간을 안전문제와 오염, 위협으로부터 지켜준다.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이들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돌봄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살아간다. 돌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 목적을 굳이 규정한다면, 무한히 노동하며 부를 축적하는 것보다는 서로를 돌보고 사랑하는 정의(Justice)를 실현하는 것이 좀 더 그 존재 목적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돌보는 노동은 오랫동안 존중받지 못해왔다. 한국의 악명 높은 성별임금격차를 합리화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상당 부분 여성이 집안에서 하는 돌봄노동과 관련되어 있다. '여성은 집에서 돌봄 노동을 하기 때문에 직장 생활에 집중하기 어렵다'거나, '어차피 아이를 낳으면 양육 때문에 그만둘 것'이라거나, '남편이나 아버지가 직장에서 돈을 벌어 오니까 여자는 집에서 살림해도 먹고 살수 있다' 등의 말을 포함해서 말이다.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31.2%다. 즉 남성이 100만 원 받을 때 여성은 68만 8천 원을 받는다. 이는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임이 27년째 여러 매체를 통해 강조돼왔다. 그런데 사실 세계 어디에서도 성별임금격차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세계 최초의 여성파업으로, 그리고 성평등한 사회로 유명한 아이슬란드조차도 ‘21%의 성별 임금 격차를 부수자’는 슬로건을 걸고 2023년 다시 여성파업에 돌입했다.
사회는 여성이 집안에서 수행하는 무급노동을 차별의 근거로 삼고 하찮게 여기지만, 집안에서 하는 무급노동은 화폐로 그 가치를 전환해봐도 매우 높은 금액으로 나타난다. 2019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무급 가사노동의 화폐가치는 490조 9천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5.5%에 속했다. 성별로 살펴보면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이 356조 원으로 남성의 134조 보다 2.6배 많다.
윤석열 정부의 장시간 노동정책과 재앙의 성별성
한편, '집안에서의 무급노동이 엄청난 화폐가치를 갖는다'는 것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윤석렬 정부의 장시간 노동정책이 그렇다. 윤정부는 69시간 노동을 주장하다가 거센 반발을 맞고 꼬리를 내렸지만, 다시 60시간 노동정책을 가져오고 있다. 이는 그 자체로 재앙을 불러오겠지만, 재앙의 정도는 성별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한국은 성별 임금 격차도 심각하지만 그만큼 중대한 게 '가족 내 성별 무급돌봄노동 시간 격차'다.
통계청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경우도 무급 가사돌봄노동은 여자가 3배 이상 많이 한다(여자 187분, 남자 54분). 그리고 남편이 혼자 직장을 다니는 외벌이의 경우 여자가 6배 이상 가사노동을 하고(여자 341분, 남자 53분), 맞벌이 남성과 외벌이 남성의 가사 노동 시간 차이는 1분이다. 그렇다면 여성이 혼자 직장을 다니는 외벌이의 경우는 어떨까. 이 역시 여자 156분, 남자 119분으로 여자가 더 많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장시간 노동정책은 가사노동의 책임을 떠안고 있는 여성들에게는 더 큰 과로와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가령 생활시간 조사에서 나타난 경향성을 토대로 예측해본다면, 직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한 후 퇴근하면, 여성들은 '피곤함'을 무릅쓰고 어떻게든 아이 숙제를 봐주고 옷을 세탁할 것이다. 반조리 식품이라도 사다가 밥상을 차릴 것이다. 반면 남성들은 안 그래도 잘 하지 않던 집안일을 '피곤함'을 이유로 더 하지 않을 것이다.
임노동을 하는 여성뿐 아니라 전업주부도 마찬가지다. 상당수 전업주부들은 자녀나 손주를 돌보거나 질병이나 노화로 인한 가족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에 덧붙여 직장에서 장시간 노동으로 지쳐 퇴근하는 이를 보살펴 주는 시간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그 가족 구성원이 그나마 분담하던 가사돌봄 노동을 하지 않게 되어서, 더 장시간의 노동이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즉 임노동 시간이 늘어나며 발생하는 과로는 도미노처럼 가사돌봄노동의 과로를 야기한다.
덧붙여 한국의 노동운동에서 장시간 노동 문제나 이른바 워라밸 같은 것들이 충분히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것은 임금 문제가 있지만, 여전히 남성중심적 노동운동문화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즉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 누구의 고통이 더 가시화되고 중시되고 있는가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다.
과로라는 독성물질과 돌봄노동
게다가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윤 정부의 노동정책 개악 이전에도 이미 장시간 노동은 물론 산재, 불안정 고용, 고용 형태나 성별에 따른 차별 등으로 더 없이 나쁜 노동 환경에 놓여 있다. 이런 나쁜 노동 환경은 모두 그 자체로 독성물질이고, 그래서 한국은 상당수 노동자들이 일을 할수록 점점 더 골병이 드는 사회다.
내가 속한 ‘3.8여성파업조직위’에서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실태조사팀을 꾸려서 설문조사 및 면접조사(인터뷰)를 수행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이런 현실을 좀 더 확인할 수 있었다. 면접조사로 만났던 50대 여성 김명희(가명) 씨의 경우 20년 전 아이를 출산했을 때 이야기를 들려줬다. "애 낳고 다음날 산후조리원에 들어 갔는데, 회사 서류가 조리원으로 도착했어요. 내가 그 업무를 처리해 줘야 회사 일이 문제 없이 돌아가니까 계속 일했죠."
김 씨는 그때도 출산휴가는 있었지만 몸만 조리원에 있었지 회사 일을 내내 멈출 수 없었다. 아이를 육아하던 시절엔 퇴근하자마자 아이를 데려오고 먹이고 씻기고 집안일을 하고 나면 정작 자신은 씻고 침대에 들어갈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래서 자주 소파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서야 씻고 출근을 하는 날이 잦았다고 한다.
당시 김명희 씨의 유무급 노동 시간은 출퇴근 및 어린이집 이동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에 12시간 정도였다. 그렇게 두 아이를 다 키우고 나니 50대가 되었고, 지금은 골병이 들어서 회사도 그만두고 기운이 없어서 자주 누워 있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김명희 씨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노동 시간이 길기로 악명 높은 한국에선 상당수가 과로로 인해 아파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적절한 쉼과 돌봄이 절실하다. 정부의 기상천외한 장시간 노동정책은 이들의 골병을 심화시켜서 암이나 뇌졸중과 같은 심각한 질환으로 이어지게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아픈 이들의 자기 돌봄 태도도 성별화되어 있다. 적절한 휴식이나 음식을 관리하는 일을, 여성들은 스스로 하는 경향이 높지만 상대적으로 남성들은 타인의 손(주로 여성)을 빌어 한다. 이는 아픈 경우가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여성의 손으로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왜 노동이 아닌가
다소 다른 이야기지만 마트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외박>(김미례 감독)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감독이 투쟁하는 조합원의 집에서 조합원을 한참 인터뷰하고 있는데, 남편이 “물”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고, 조합원은 인터뷰하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남편에게 물을 떠다 준다.
장기 투쟁 사업장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 이외에, 가족의 음식이나 자녀의 숙제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 한다'. 작년 '덕성여대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연대' 활동 당시에도 일부 조합원들은 손주를 돌보러 가야 해서 조합원 교육 일정 등에 참여가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여성 노동자들의 차별과 고통의 문제는 집안에서의 무급 돌봄 노동 문제 해결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세계적으로 임금 노동을 하는 여성뿐 아니라 집에서 무급으로 가사돌봄 노동을 하는 전업주부들도 여성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무급 가사돌봄노동은 '노동' 영역 중에서도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노동이다. 어떤 노동보다 비가시화되어 있고 저평가되어 있으며, 사실 노동으로 명명된 역사도 짧다. 애초 이는 모성, 헌신, 성역할이었지 ‘노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무급 가사돌봄노동을 '노동'이라고 호명하는 것에 이견을 제기하는 이가 드물지만, 사실 한국 사회에서 이것을 노동으로 부르는데 이견이 없어진 것은 그리 길지 않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나는 여러 자리에서 이런 비난을 마주했다. "페미니스트들은 어머니나 며느리로서 하는 아름다운 도리를 굳이 '노동'이라고 명하며 살벌하게 갈등을 만든다." 지금으로선 믿기지 않겠지만 토론회, 강의, 뒤풀이 자리 등에서 비슷한 비난 혹은 '충고'를 자주 마주했고, 때로는 노동운동을 하는 동지들도 예외가 없었다.
지구가 사라지기 전 성평등이 올까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2022 세계성격차지수'(Global Gender Gap Report)는 여성과 남성이 평등에 도달하는 데 13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발표했다. 그때까지 지구가 존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한국은 1년 뒤도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절망감이 엄습한다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떠올려 보자. 세상은 분명 변하고 있다.
한국에서 '직장 내 성희롱 대책위'가 최초로 꾸려지고 소송이 등장한 게 1993년이다. 법원은 1994년 서울대 신 교수에게 3천만 원 지급 명령을 내렸고. 이 판결 직후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단어를 ‘희롱’하는 말들이 넘치게 돌아다녔다. "어깨에 손 올리면 3천만 원이냐", "이것도 성희롱이라고 할 거냐" 등등. 여전히 성폭력이 심각하고 다양한 젠더폭력이 일상인 사회이지만, 성희롱을 희롱하는 게 일상의 농담으로 회자되고 수용되던 시절은 저물고 있다. 세상은 느리지만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난 30년 수많은 여성들이 일상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외치고 투쟁한 결과다.
2024년 우리 사회를 만들어 온 여성들 그리고 성별이분법을 넘어서는 페미니스들이 여성파업으로 함께 하길 기대하고 있다. 직장에서 임노동을 하는 여성뿐 아니라, 엄마·아내·딸의 이름으로 가족 안에서 돌봄 노동을 수행하면서, 노동에 대한 인정도 받지 못하는 이들. 노동을 하고 있지만 노동이라고 존중받지 못하고, 파업권은커녕 최소한의 보상도 가지지 못하는 여성들,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지만 자신의 노동을 통해 가족과 사회와 세계를 만들어 온 여성들이 일손을 멈추면 어떻게 될까. 특히 우리가 같은 날, 2024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여성파업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멈춘다면 말이다.
망각한 여성 노동의 의미를 깨우는 파업
여성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받은 역사가 있었던가? 유급노동, 무급노동을 통틀어 단연코 없었다. 파업은 우리의 노동을 멈춤으로써 그 가치와 의미를 가시화시킬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다. 너무 익숙해져서 자연스러워진 것들은 투명해져서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우리는 몸으로 사는 존재지만, 제 기능을 하고 있을 때는 몸을 잊고 살기 쉽다. 그런데 몸이 해당 기능을 수행하지 않으면, 비로소 그 기관의 존재를 새삼 감각하고 소중함을 깨닫는다. 위장이 연동 운동을 하지 않고 멈추면, 잊고 있던 위장의 존재를 감각하게 되고, 음식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행위가 생명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야말로 온몸으로 깨닫는다.
지금의 세계는 여성의 유무급 노동으로 건설되고 유지되었지만, 세계는 우리의 노동을 의도적으로 망각해왔다. 여성들이 임금 노동은 물론 집안에서 무급 가사 돌봄 노동을 멈춘다면, 한국 사회는 무엇을 깨닫게 될 것인가?
※3.8 여성파업대회는 오는 3월 8일 낮 12시 20분 서울 보신각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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