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고 총선이 가까워오자, 정치의 계절이 본격화하고 있다. 신생정당을 하겠다는 이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다. 이미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50개가 됐으며, 창당준비위원회에 등록한 예비정당도 10개나 된다. 창당하려면 만만치 않은 과정과 절차, 사람과 돈이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50개의 정당 중에 대부분의 시민이 이름이나 들어본 것은 다섯 손가락 내외지만 말이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뜨거워지고 있지만, 정치로 인한 폐해도 심각해지고 있다. 연초에 야당대표 칼 테러가 일어나더니, 지난주에는 여당 국회의원 돌멩이 테러가 있었다. 정치가 점점 극단화하면서 말로 해야 하는 정치가 몸으로 하는 정치로 변하고 있다. 갈등과 대립, 분열을 조장해 온 정치인들의 자기업보, 자업자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대로 가면 우리 정치는 더욱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것 같다.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우리 사회는 민주공화정일까?
우리 사회가 점점 파괴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데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탓이 크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시민이 토종 씨를 뿌리고 키운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수입한 씨종자였다. 그 씨앗이 우리 땅에 맞는지 어떤지도 모른 채 이식 당했다. 그래서 1948년 정부를 수립하고 민주공화정을 본격화 한 지 7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우리 땅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다른 제3세계에 비해서는 양호한 상태를 보이고는 있지만 말이다. 민주주의가 제 땅에 뿌리 내리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민주주의는 그 땅에서 살고 있는 시민이 좋은 질문을 하고, 정치가 그에 맞는 행동과 실천을 해 나갈 때에 성장할 수 있다. 좋은 민주주의자 없이는 좋은 민주주의도 없기 때문이다. 출세주의, 경쟁교육, 국가주의, 입시교육, 돈벌이 교육에 매몰된 지난 교육은 좋은 시민을 양성하는 데에 큰 뜻이 없었다. 교육이 출세하고자 하는 소수를 만들어 내는 데에 뜻이 있었지, 다수의 건강한 평민을 양성하는 데는 뜻을 두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교육의 전면적인 전환 없이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제대로 된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질문하는 시민을 위해 질문을 하나 해보자.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과연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1조에 대해 질문을 해본 국민들은 얼마나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몇 해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에서 투표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주권이 없다. 헌법과 법률을 발의할 권리도, 발의한 헌법과 법률에 대해서 투표할 권리도, 약속을 이행하지 않거나 사고를 치는 국회의원을 소환할 권리도 없다. 대한민국 헌법1조가 제대로 의미를 가지려면 제③항에 "대한민국 국민은 국민발안, 국민투표, 국민소환의 권리를 가진다"라는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①과 ②는 비로소 유의미성을 지닌다. ③과 같은 구체성이 없이는 그저 빛 좋은 개살구에 가깝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50개의 정당 중에 지난 연말에 이름을 올린 '국민주권당'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아마 이런 문제의식과 질문 때문에 만들어진 신생정당으로 보인다. 이름처럼 국민의 주권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절치부심의 노력을 해줄 것을 기대해 본다.
민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선거법 개정부터
우리 사회의 정치가 엉망진창, 질타의 대상이 된 것은 민심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는 정치구조 때문이다. 매년 2월 초에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지수를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다. 매년 발표 결과를 보면, 상위 10개국은 완전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택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완전연동형은 민심만큼 정당이 국회의원을 가지는 구조이다. 이 제도를 채택한 나라는 민심에 밀착하는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도 시민사회와 진보정당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요구로 전체 국회의원의 15% 정도에 해당하는 47석을 가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했지만, 이 제도는 두 거대 정당의 횡포로 인해 표류하고 있다. 민심이 두려운 국민의힘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처음부터 반대했고, 민심과 권력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민주당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100% 비례대표제인 북유럽처럼, 50%인 독일처럼도 아니고, 15%를 가지고도 일부만 비례대표를 적용하는 이상하고 복잡한 제도다.
완전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택한 북유럽이나 스위스의 정치가 안정되고 사회가 통합된 것은 무게 중심이 아래, 즉 권력이 시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오뚝이가 쓰러져도 바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실현된 국가는 위기를 겪더라도 금방 회복할 수 있다. 이른바 회복탄력성이 좋다는 말이다. 반면에 무게중심, 권력이 위에 있는 독재국가나 전체주의 사회는 위기에 그대로 무너지고 만다. 독일의 히틀러나 소련의 스탈린 등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사례들을 보아 왔다.
지난 민주주의 역사를 보면 권력을 소수에서 다수로, 위에서 아래에 있는 평민에게 가지고 오는 역사였다. 역주행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역사의 긴 시선에서 보면 보다 많은 이들이 주권을 가지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정치발전의 중요한 계기를 맞은 민주당이 시민의 주권을 강화하고, 비례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선거법을 포함한 정치개혁을 진행해야 한다. 미약하나마 국민의 선택권을 강화하고 소수정당이 진입할 수 있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없애고, 과거의 병립형으로 되돌아갈 경우 민주당은 민심의 강한 역풍을 만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치는 시민에게 달려 있다
민주주의 지수조사에서 보는 것처럼, 민주주의의 성취가 높을수록 정치는 안정되고 사회가 통합된다. 이는 스위스처럼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시민에게 주권을 직접 부여하거나, 북유럽처럼 완전한 비례대표제를 통해서 가능하다. 시민에게 주권이 있으면 정치인은 민심에 어긋한 정치를 하기 힘들고,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순간 퇴출당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시민이 보다 많은 주권을 가지는 것은 안정과 통합된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지만, 이는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권력은 아비와 자식 간에도 나누기 힘들다'라는 말처럼 권력은 스스로 독점화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권력이 나쁜 권력자를 만날 때 독점화의 속도와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권력의 독점화를 막기 위해서는 종횡으로 견제와 균형의 제도를 만들고, 시민이 주권자의 위치에 당당히 서 있어야 한다. 시민이 스스로 주권을 확보하고, 주권자의 자리에 서 있지 않으면 주권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주권자의 길은 멀고 험하다. 시민은 당장에 선거법 개정부터, 멀게는 시민주권을 위한 헌법 개정까지 끊임없이 주권자로서의 공부와 행동을 해야 한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정치업자들이 주권자의 권리를 가로채 갈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를 만들고, 지키고, 키우는 일은 많은 이들의 수고를 필요로 한다.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시민 개개인이 직접 하지 않으면 신도, AI도,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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