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열린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정부의 현 정책 기조를 정당화하는 발언들을 내 놓았다. 올 한해 동안 '긴축 재정'을 상징으로 하는 경제 기조, 한미일 공조 강화를 상징으로 하는 외교 정책 등에서 성과가 있었다며 '자화자찬'성 메시지를 낸 셈이지만,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세계적인 경제 권위지인 이코노미스트지는 물가, 고용, 성장, 주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우리나라 경제를 OECD 35개국 중 두 번째로 평가했다"며 "지난 정부와 달리 우리 정부는 민간의 활력을 바탕으로 시장경제 원칙과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한 결과, 오히려 역대 어느 정부에 비해 높은 고용률과 낮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윤 대통령은 또 "15개월간 이어진 무역 적자는 지난 6월부터 흑자로 돌아섰고,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300억 불 규모로 예상된다"고 전망하며 "내년에는 수출 개선이 경기회복과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외교 정책과 관련해서도 윤 대통령은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는 국민의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고, 후생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국가들과 강력히 연대하고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에 매진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제가 경제를 외교의 중심에 두고 많은 기업인들과 함께 쉴 새 없이 해외시장을 누빈 것은 '순방이 곧 일자리 창출이자 민생'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순방 성과를 강조했다.
긴축 기조에도 물가 불안정, 내수 위기…수출 호조는 '기저 효과'에, 내년 경기 전망도 ↓
하지만 윤 대통령의 자평과 달리 경제 상황과 관련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특히 서민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물가와 관련한 통계는 정부의 자찬을 무색케 한다.
12월 들어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3.2%를 기록해 1년 8개월만에 안정적 수치를 나타내긴 했지만, 한국은행은 "국제 유가 하락으로 석유류 하락 폭이 확대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중동 정세 불안정 등으로 유가 상승 요인은 계속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다.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9.5로 전월보다 2.3%포인트 올랐지만 여전히 100 이하에서 맴돌고 있다. 경제 전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소비자 체감 물가는 더 불안정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물가 상승 부담'을 이유로 긴축 재정 기조를 고수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가 문제보다 경기 침체가 더 심각한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내수 경제에 빨간 불이 켜진 상황은 긴축 재정 기조에 의문을 품게 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4년 1분기 제조업 경기전망지수(BSI)'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 전망치(84)보다 낮은 83으로 나타났다. 3분기 연속 하락세다. BSI는 100 이하일 경우 해당 분기의 경기를 이전 분기보다 부정적으로 본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대한상의 보고서에 따르면 63.5%의 기업들이 연초 설정한 목표치보다 경영 실적이 미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유는 '내수 부진'이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내년 상반기에는 내수 중심으로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라며 "높은 물가와 금리로 인해 기업들의 심리가 지나치게 위축되지 않도록 물가 관리뿐 아니라 소비 및 투자 활성화 정책을 통해 민간의 역동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무역수지도 자찬할 때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부터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섰다고 강조했지만, 지난해 3월부터 15개월 연속으로 누적된 무역적자는 '역대급'으로 꼽힌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발발 이전인 1995년 1월~1997년 5월 이후 최장기 기록이다. 지난해 10월부터 12개월 연속 감소하던 수출 실적이 올해 10월부터 플로스로 전환했지만, 수출 증가세가 저조했던 전년도의 '기저 효과'라고 보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한국 경제 전망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LG경영연구원이 지난 2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내년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8%로 제시했다. 이는 한국은행의 내년 전망치인 2.1%보다 낮은 수치다. 민간 분야에선 내년 경제 전망을 더욱 어둡게 보고 있는 셈이다. 내년에도 1%대 성장률을 기록할 경우 '저성장'이 고착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PF 부실 문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한국 경제의 잠재 위험 요인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과 가계부채를 꼽은 바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부채는 2218조 원 수준이다. 정부의 긴축 재정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 새 총부채 비율이 상승한 것은 OECD 소속 31개국 가운데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부채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부동산 문제가 꼽힌다. 하지만 정부는 '김포 서울 편입' 등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감을 부추기는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빚 내서 집 사는' 상황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PF 부실도 문제다. 당장 시공능력평가 16위의 태영건설이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조만간 워크아웃을 신청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은행권과 재계는 긴장 중이다.
경제부총리 출신 김동연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 거꾸로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내고 경기도에서 정부의 재정 정책 등에 반발해 '확장 재정' 기조를 천명한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을 두고 "돈을 써야 할 경제위기에 나라 살림을 줄였다"고 비판했다.
김 지사는 2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대한민국이 거꾸로 갈 때 경기도는 바로가기 위해 애썼다. 돈을 써야 할 경제위기에 나라 살림을 줄였다. 기후위기 대응 등 미래 문제에서도 역주행하고 있다"며 현 정부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경기도는 달랐다. 재정의 역할을 확대했고 RE100 등 미래도 대비했다. '경기도가 희망이다'라는 사명감과 책임감은 더욱 커졌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신재생 에너지로 가지 않으면 모든 길이 막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인데 윤석열 정부는 역행하고 있다. 공공과 시장의 중간 영역으로 경제를 진작시키고 성장하게 하는 사회적경제는 아예 용어 자체를 없애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지사는 "경기도는 달랐다. 재정의 역할을 확대했고 RE100 등 미래도 대비했다. '경기도가 희망이다'라는 사명감과 책임감은 더욱 커졌다"라며 "정부가 못한 일을 경기도가 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하지 못한다면 경기도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신재생 에너지나 사회적경제 모델이 다 경기도로 몰려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경기도는 일종의 망명정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 지사는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시계제로' 상태다. 정부의 진단도, 처방도 다 틀렸다. 경제까지 이념에 경도돼 무능의 극치로 가고 있다. 가계부채, 부동산PF 부실 등 위험 요인이 한가득이다. 말로만 하는 경제운용은 안 통한다. 이미 시장 신뢰를 잃었다. 이제는 여야정이 함께 컨티전시 플랜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