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시인 고은(90)의 신간을 출간했다가 여론의 반향 끝에 신간 공급을 일시 중단한 실천문학사가 고은 시집 <무의 노래> 판매를 재개했다.
13일 출판계 등에 따르면 실천문학사는 지난 7월 말부터 <무의 노래> 공급을 재개했다. 현재 교보문고, 알라딘 등 주요 서점의 온라인 판매사이트에서도 <무의 노래> 소개와 주문 페이지를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실천문학사는 지난 1월 고은 시인의 신간 시집 <무의 노래>와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를 출간, 지난 2017년 성추행 폭로 이후 문단을 떠나있던 고은 시인의 문단복귀를 알렸다. 그러나 '성폭력 사실에 대한 사과도 없이 고은의 복귀를 도왔다'는 거센 여론과 문화계의 비판이 이어지자 같은 달 해당 신간들의 시중공급을 중단했다.
다만 당시 윤한룡 실천문학사 대표는 "공급 중단은 여론의 압력에 출판의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이 날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며 '고은 복귀 반대' 여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는데, 결국 이후 약 반년 만에 고은 시집 판매 재개가 이뤄진 셈이다.
실천문학사는 지난 4월에도 고은 복귀에 대한 반대 여론이 "왜곡"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며 차후 행보에 대한 자체 설문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당시 실천문학사는 지난 1월 <뉴스페이퍼>가 진행한 고은 복귀 관련 설문조사(반대 99.2%) 결과를 두고 "본사 출간 전 조사나 (1월) 13일 <뉴스토마토>의 50% 반대 여론조사와는 매우 다른 결과로 고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 출판사는 지난 4월 '출판의 자유권에 대한 설문조사'를, 5월에는 '출판의 자유권리 억압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 설문 조사'를, 6월에는 '왜 하필 고은 시인과 실천문학만 가지고 그러는지요?'라는 제목의 설문 조사를 차례로 실시했다.
당시 실천문학사 측이 게재한 설문조사 문항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출판사는 "언론들이 고은 시인의 5년만의 신간 시집 출간을 두고 '고은 사과 없이 5년만에 문단 복귀'란 제목을 붙여 마치 실권자가 복권된 것처럼 자극적인 프레임을 씌워 기사화했다"라며 "고은 시인은 시인을 은퇴한 적도 시인 자격을 박탈당한 적도 없으며, 그렇다고 탈퇴한 문단 단체에 복귀한 것도 아니다. 이런 '제목 뽑기'를 선생님은 주관적 프레임 씌우기로 보시나" 묻는 등 고은 복귀에 대한 언론보도를 비판하는 태도를 보였다.
윤 대표는 시집 판매재개에 앞서 발행된 계간 '실천문학' 봄여름호(147호)에 '출판과 언론의 자유 충돌과 공존의 길'이라는 글을 게재하고 "고은 시인의 시집 출간은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시집 판매재개 직후인 지난 7월 26일에는 경기도 양평에서 고은 시인의 구순을 축하하는 문집 헌정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문학전문매체 <뉴스페이퍼> 등에 따르면 이 행사에는 고은 시인 본인을 포함해 200여 명의 문인들이 참석했다. 헌정문집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유시춘 EBS 이사장, 임진택 경기아트센터 이사장, 황대권 작가, 이승철 한국작가회의 이사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문단의 원로로 꼽혀온 고은 시인은 지난 2017년 최영미 시인이 시 '괴물'을 발표하며 그의 과거 성추행 사실을 폭로해 문단과 멀어졌다. 이후 고은은 2018년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고 최 시인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이후 2019년 고은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법적 분쟁은 마무리됐다. 다만 고은의 공식적 사과 표명은 이후로도 없었다.
<무의 노래>가 처음 출간됐던 지난 1월 당시 최영미 시인은 <헤럴드경제>에 기고한 칼럼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에서 "권력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며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권력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는 지켜볼 것"이라고 고은 복귀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당시 문화연대 등 문화예술단체들도 "고은의 문단 복귀는 괴물의 귀환"이라며 고은의 성폭력 사건과 실천문학사 등 그를 두둔하는 일부 문학계 구성원들을 "썩어가는 환부"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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