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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배송 뒤에 더위로 쓰러지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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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로켓배송 뒤에 더위로 쓰러지는 '사람'이 있다

[인권의 바람] 사람이 일할 수 없는 물류센터, 생명보다 이윤인 기업 쿠팡

"오후 5시 45분에 현장에 들어가면 사우나실로 입장하는 기분이 듭니다. 얼음생수를 마시며 일을 해도 온도 29도에 습도 70%, 체감온도 30도를 견디던 몸은 이미 지쳐있습니다. 식사시간까지 땀을 흘리며 일하다 현장을 나가면 살에 화상을 입은 듯한 통증이 느껴집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이하 노조)는 폭염대책이 없는 쿠팡을 규탄하며 "산업안전보건규칙대로 휴게시간 보장하라"는 요구로 8월 1일 하루 파업했다. 위 발언은 해당 하루 파업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오후조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의 말이다. 노조는 지난 7월 26일부터는 쿠팡 인천 4물류센터 앞에서 폭염대책과 휴게시간 보장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출퇴근시간에 맞추어 서명운동을 했다. 퇴근한 노동자들은 땀에 젖은 앞머리를 털고 손선풍기와 부채를 흔들면서 물류센터를 나왔다. 그들은 한 손에 꼭 아이스크림을 쥐고 있었다. 2021년 설립 이후 노조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폭염대책에 대해 쿠팡이 조치랍시고 내어준 아이스크림이다. 쿠팡은 에어컨을 설치하고 법적으로 보장되는 휴게시간을 달라는 노조의 요구에는 귀를 막았다.

더위 먹지 않는 쿠팡이었으면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기온 34도가 넘는 무서운 폭염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이들 중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있다. 노조가 서명운동을 하면서 이들에게 '내가 느끼는 체감온도'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몸이 폭발할 것 같아요", "현기증 날 정도"라며 '40도 대의 체감온도'를 말했다. 여러 사람들이 "너무 더워"라고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이 절규로 보였다.

다른 물류센터와 다르게 쿠팡에는 에어컨이 없다. 선풍기만 있을 뿐이다. 그나마 노조 설립 이후 문제제기가 되면서 고양센터, 동탄센터 등 에어컨이 생긴 몇몇 센터들이 있긴 하다. 그조차 한 층이나 한 작업 구역에 제한적으로 설치되어 문제는 여전하다.

에어컨이 없으면 바람이라도 통하게 환기라도 잘하지 않을까 싶지만, 현장에선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특히 노조가 농성을 하고 있는 인천4센터의 경우 환기가 되지 않아 고온에 습도 문제까지 있다. 비가 올 때 창가에 적재된 상품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창문을 모두 닫는 것이다. 여름 장마철이면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무더위를 견딜 수 있는 건 선풍기뿐인데 휴게시간도 없다. 천막 또는 컨테이너형 휴게공간이 있지만 휴게시간이 없거나 있어도 10~15분으로 짧아 이용할 수가 없다. 산업안전보건규칙 566조는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날엔 1시간마다 10분씩, 35도 이상인 날엔 15분씩 쉬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하루 파업을 했던 8월 1일에 인천4센터 4층은 기온 34.2도(오전 10시 기준)에 체감온도는 35도인데 휴게시간은 1회, 20분뿐이었다.

이러한 더위에. 대책 없는 노동환경에서. 노동자들은 온열질환 등 건강상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일에 집중이 어려워져 산재가 일어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실제로 2022년 여름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온열질환으로 쓰러져 응급차에 실려 간 적이 있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동료가 더위에 쓰러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쿠팡은 온열질환 산재 신청자가 없다며 현장에서 온열질환의 노동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한다.

▲9일 서울 시내의 한 주차장에 세워진 쿠팡 배송차량들 모습. ⓒ연합뉴스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

택배를 받기까지 보이지 않는 과정에는 택배 노동자들과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노동이 있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와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산재사고, 집단감염 등 일터에서의 사건들이 사회적으로 알려지면서,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엔 잘 보이지 않았던 택배 물류센터 노동환경과 조건이 드러났다.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생활물류센터 종사자 노동인권상황 실태조사'는, 물류센터 노동자의 야간노동과 장시간 노동(평균 12시간), 높은 노동강도 등 열악한 노동환경을 밝히고 있다.

물류센터 노동자들 다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쿠팡의 경우 물류센터를 직접 운영하면서 일용직까지 직접고용을 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계약직 고용 형태가 많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2014~2022년 고용형태공시 원자료에 따르면, 고용규모가 늘어난 쿠팡풀필먼트(쿠팡 물류 자회사)의 2018년 정규직은 8222명 규모로 소폭 늘었지만, 기간제 비정규직은 2만 3489명 규모로 더 현저하게 늘었다.

물류센터 일이 상시·지속업무임에도 쿠팡은 기간제 비정규직만 고용한다. 게다가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기간 2년을 채우지 못하도록 1년이 안 되는 기간으로 쪼개기 근로계약을 고집하고 있다.

쿠팡은 물류센터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노동 현장에서는 이들을 통제를 하면서 이윤 챙기기만 하고 있다. 물류센터에 있는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노동을 이어가고 새로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속 고용된다.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통합물류협회 앞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택배없는 날 쿠팡 동참 촉구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이 쓰러진다

"쿠팡은 누구 하나 쓰러지기 전에 휴게시간 보장하라."

인천4센터 앞 노조 농성장에 걸려있는 현수막이다. 핸드폰 몇 번의 터치만으로 우리는 물건이나 음식을 빠르고 쉽게 받을 수 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온라인 쇼핑 이용이 많아졌다. 우리는 '로켓배송'이란 속도와 '택배'라는 편리함, 그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쉽게 잊는다.

기업은 이윤을 남기기만 하면 되기에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 마치 누구 하나 쓰러지면 다른 누구를 다시 구하면 된다는 것처럼. 특히 쿠팡은 언제나 물량이 많기 때문에 쓰러질 사람을 걱정하고 쓰러진 사람을 챙기기보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노동자를 갈아 끼우는 것이 편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물류센터의 부품이 아니라 사람이다. 물류센터는 부품이 아닌 '사람'이 노동하는 일터여야 한다. 사람이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꾸려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한편 매년 8월 14일은 '택배 없는 날'이다. 2020년 고용노동부와 한국통합물류협회, 택배 4사가 '택배 종사자의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택배‧물류 노동자들의 휴식을 위해 2020년부터 도입된 기념일이다. 그러나 쿠팡은 오는 8월 14일 정상영업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쿠팡 노동자들은 이날 전국의 택배 물량이 모두 쿠팡으로 몰릴까 걱정이다.

폭염대책을 마련해야 함에도 무책임하고, 노동자들의 휴식에도 무관심한 쿠팡에 대해 노조는 8월 14일 택배 없는 날 '쿠팡 불매'를 제안하고 있다. '생명보다 이윤인 기업' 쿠팡을 불매하여, 더위를 견디며 노동환경을 바꾸려는 노동자들에게 힘을 보태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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