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지킴이날'인 22일 서울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서 조선실록을 목숨 걸고 지켜낸 정읍사람들, 특히 안의와 손홍록 선생을 선양하기 위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창립식을 가졌다.
정읍시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이하 조선실록)'은 국보 제151호이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적인 기록물이다.
조선 제1대 왕 태조부터 제25대 왕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 간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태조에서 명종에 이르는 조선 전기 200년을 담은 조선실록을 지켜 낸 곳이 바로 정읍이다.
창립식에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모임의 고문을 맡은 박영일 전 쌍용양회 대표, 안의 문중 대표 안성협씨, 손홍록 문중 대표 손상호씨, 이학수 정읍시장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이 함께 했다.
특히 이홍식 연세대 명예교수, 이정수 변호사, 오천진 수빈운수 대표 등 뜻을 같이하는 50여명도 동참했다.
이들은 앞으로 조선실록 이안(移安)과정 웹툰 제작 등을 통해 홍보에 주력하고 안의와 손홍록 선생 선양사업과 그들의 고향인 옹동과 칠보 소재 학교 장학사업 등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평소 기록문화, 특히 조선실록에 관심이 높았던 박영일 고문은 "세계적인 기록유산을 간직하고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를 지켜 낸 분들에 대해서 조명하고, 그들의 노고에 대해서 잊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창립 취지를 밝혔다.
조선의 역사가 기록된 조선실록은 4대 사고(史庫)인 춘추관, 충주·성주·전주사고에 분산시켜 보관할 정도로 철저한 관리 속에 지켜져 왔다.
그러나 1592년 4월 임진왜란 발발 20여 일 만에 성주사고, 충주사고, 춘추관 등에 보관돼 왔던 조선실록은 불에 탔고,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본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당시 전주사고에는 조선실록 800여 권을 비롯 '고려사' 등 국가 주요 서적이 보관되어 있었고, 경기전에는 태조의 어진 등이 봉안돼 있었다.
이에 같은 해 6월 22일(당시 음력 기준) 정읍의 선비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은 실록을 전란의 위기로부터 지키기 위해 마을사람 20여명과 함께 전주사고에 보관돼 있던 실록을 정읍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겼다.
이후 더 깊은 산속인 은적암, 비래암 등으로 옮겨가며 1년 여 동안 지키면서 매일의 상황을 '임계기사(壬癸記事,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도 남겼다.
두 사람은 실록이 익산과 아산, 인천을 거쳐 강화부까지 옮겨질 때도 사재를 털어 동행하면서 실록을 지켜 냈다.
전쟁이 끝난 후 조선왕조는 전주사고본을 토대로 복본(複本)해 춘추관, 마니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 사고 등 좀 더 안전한 깊은 산중에 보관해 왔다.
한국전쟁 등의 우여곡절 끝에 조선실록은 1997년에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만약 이들이 실록을 지켜내지 못했다면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의 역사가 모두 소실돼 오늘날 온전한 조선왕조실록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이러한 의미를 높이 평가해서 문화재청은 2018년 전주사고에 있던 실록과 어진을 정읍, 즉 내장산으로 옮긴 6월 22일(물론 당시 기준 음력)을 문화재 지킴이의 날로 지정했다.
올해 문화재지킴이의 날 뜻깊은 행사(안의․손홍록선생 선양 모임)가 열린 배경이다.
이학수 시장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나라를 구하고 역사와 문화재를 지킨 안의․손홍록을 중심으로 한 많은 정읍인들의 의롭고 용기 있는 행동은 우리 후손들이 기리고 이어가야 할 정신이다"고 강조했다.
또 "더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조선왕조실록 이안 재연 연구를 시작으로 정읍문화원을 통해 매년 이안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내년부터는 이 사업을 더욱 확대해 전주시와 인근 지자체 문화원과 협력해 전북, 나아가 국가 차원의 큰 행사로 키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시는 최근 내장산 조선왕조실록 보존 터로 가는 탐방로 내 여섯 곳에 손홍록과 안의을 비롯한 일행들이 어진과 실록을 이안하는 행렬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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