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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또 위기…'리더 이재명'이 새겨야 할 리더십 열쇳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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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또 위기…'리더 이재명'이 새겨야 할 리더십 열쇳말

[프레시안 books] <리더의 언어사전>

벌써 몇 번째 리더십 위기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취임 후 10개월 동안 '이재명 리더십'은 위기가 아닌 적이 없을 정도로 잦은 풍파를 겪었다.

당 대표 선출과 동시에 가시화된 사법 리스크, 그리고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에서 단행된 당헌 80조 개정으로 이 대표는 '사당화' 논란에 휩싸였다. 급기야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무더기 이탈표가 나오며 리더십의 위기는 절정에 치달았다.

이후 두어 달 회복기를 거치는 듯하던 이재명 리더십은 다시 위기를 맞이했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과 김남국 코인 사태에 대한 늑장 대응, 그 직후 이어진 이래경 혁신위원장 낙마 사태에 이 대표의 리더십은 연거푸 도마 위에 소환됐다. 지금 당내에서는 비(非)이재명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퇴진론이 들끓고 있다.

일련의 사태들을 살펴보면 국면마다 위기의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체포동의안 표결 시점까지는 이 대표 개인 신상과 관련된 위기였다면, 그 다음부터는 지도력에서 빚어진 위기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종식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판은 이제 시작 단계이고 조만간 국회에 두 번째 체포동의안 청구서가 날아들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체포동의안 표결 당시보다 지금이 더 큰 위기일 수 있다는 얘기다.

당 대표의 리더십 위기가 일상화되면서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당혹감마저 읽힌다. 경기도지사 시절 지자체장들 가운데서 낭중지추 존재감을 뽐냈던 그가 당 대표로선 영 맥을 못 추고 있으니 의아하다는 반응들이다.

모두 위기라 말하고 누군가는 퇴진을 운운하지만, 현재 이 대표 리더십에 특별한 변화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충격의 체포동의안 표결 이후 이 대표가 낮은 자세로 확 달라진 모습을 보인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몇몇 의원들 사이에선 지금이 위기인 줄 모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뒷말도 나온다.

이재명 리더십은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이 대표는 내년 총선까지 당을 이끌 수 있을까. 이 대표와 당 지도부에 이재명 리더십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줄 책 한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여러 기업에서 리더십 강의 등 기업 교육을 기획해 온 서양 고전학자이자 철학자 김동훈 퓨라파케 대표의 <리더의 언어사전>(민음사 펴냄)이다.

김 대표는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한 수사학자로서, 이 책에서는 리더십과 관련한 25가지 키워드를 골라 어원에 충실한 설명을 곁들여 제공한다.

▲<리더의 언어사전> ⓒ민음사

'피스티스' 부족에서 비롯된 이래경 낙마 사태

이재명 리더십을 돌아보기에 앞서 해야 할 첫 번째 질문, 과연 '리더'는 누구인가. 저자는 무엇인가를 정의할 때 가장 기본적인 접근 방법은 그 어휘를 분석하는 것이라며, "리더는 어원에 의하면 '리드'를 하는 사람, 즉 인도자, 안내자가 기본적인 뜻이 된다"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안내자인 리더는 우리를 어디로 안내하는 것일까. 저자는 "인생은 아름다움 자체를 바라봄으로써만 살 만하다"라는 플라톤 <향연>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그리고 여기서 '아름다움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바로 리더라고 말한다.

"리더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바라봐야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고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보았던 아름다움을, 타인에게 가르치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알려준다."(p23)

달리 표현하면, 리더는 "자신이 본 것이 있기 때문에 보여 줄 것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질문. 그렇다면 무엇이 리더를 만드는가. 저자는 세 가지 단어를 제시한다. 바로 설득력, 신빙성, 신뢰감이다. 그리스어에는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단어가 있으니, 그것은 '피스티스(πίστις)'다.

"설득과 신뢰가 있는 공동체는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설득과 신뢰라는 상호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리더의 자격 요건을 갖춘 것이다. 반면 피스티스가 없으면 독선적 리더, 권력형 리더가 되거나 혹은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p33)

피스티스 즉 설득력과 신빙성, 신뢰감은 조직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곤 한다. '9시간의 대소동'으로 끝났던 민주당의 첫 혁신위원장 인선 과정을 대표적인 피스티스 실패, 부족 사례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이 대표는 지난 5일 혁신위원장으로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을 임명했다. 그러나 임명 직후 '천안함 자폭' 등 이 이사장의 과거 발언이 알려지며 자질 논란이 일었고, 결국 임명 9시간 만에 이 이사장은 자진 사퇴하고 말았다. 앞서 연달아 터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김남국 코인 사태의 타개책으로 꺼내든 혁신위원장 인선 카드가 더 큰 위기를 부른 자충수로 돌아온 셈이었다.

이미 알려졌듯 이 이사장 인선은 이 대표가 직접 수소문한 끝에 이뤄졌다. 대부분의 지도부 구성원은 혁신위원장 발표 전날 저녁 인선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했다. 피스티스의 하나인 설득력이 발휘되지 않은 것이다. 이에 한 지도부 일원은 이 대표를 향한 항의 차원으로 다음날 최고위원회의를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갑석 최고위원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조금 더 전에 (논의)해서 조금 더 풍부하게 이분(이래경)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지를 주었더라면 결과적으로 이런 인사 참사도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이 든다"라며 인선 과정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신빙성, 신뢰감 문제도 표출됐다. 혁신위원장 임명 발표 당시 이 대표는 인선 배경에 대한 설명을 아꼈다. 알려진 정보라고는 '원로들의 추천이 있었다'는 정도였다. 그러니 인선 배경을 두고 각종 추측이 난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과거 이 이사장이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 대책위원회'에 이름을 올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대표가 혁신위를 통해 '친명 체제 강화'를 꾀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기에 이르렀다.

"피스티스가 없으면 독선적 리더, 권력형 리더가 되거나 혹은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이래경 낙마 사태가 이 대표에게 남긴 교훈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가 16일 국회 당 사무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전이 불분명한 이재명의 '이기는 민주당'

다시, 리더의 정의로 돌아가 보자. 저자는 리더에 대해 "자신이 본 것이 있기 때문에 보여 줄 것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리더는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보다'라는 뜻의 라틴어 '비데레(videre)에서 온 말이 바로 비전(vision)이다. 즉, 리더는 비전을 가진 사람이다. 리더의 가장 큰 자질로 비전, 즉 보는 것이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설령 이 대표가 피스티스 없는 독선가라 할지라도, 그가 제시한 비전이 명확하고 수긍할 만한 것이라면 당 구성원들은 이 대표의 독선을 감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당의 미래에 대한 이 대표의 비전이 무엇인지 그리 분명치 않아 보이는 데 있다.

"당 대표 (취임) 이후에 미래비전을 제시할 몇 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민주당이 그런 것을 제시하지 못했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호흡을 가다듬고 전략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서 민주당이 나아갈 방향과 앞으로 2022년에서 앞으로의 미래한국 30년, 저는 이러한 것이 모토가 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SBS 라디오, 2022.12.7.)

"국민이 생각할 때는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게 뭐 있지? 측근들 방탄 빼고 한 게 뭐 있지? 그러면 이거를 계속 이 상태로 갔을 때 민주당의 지지도, 그리고 민주당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겠는가. (중략) 공정과 정의는 사라지고 정치 훌리건에 기대는 듯한 모습만 보이니 사당화가 매우 걱정된다."(이원욱 의원, CBS 라디오, 2022.12.7.)

이 대표의 취임 100일에 나온 당내 평가들이다. 두 가지 평가를 종합하면,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의 상(象)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단 것이다. 즉 민주당의 미래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는 지난해 8월 전당대회 출마 선언 당시부터 나온 지적이었다. 당 대표 출마 선언 당시 이 대표가 내건 슬로건은 '이기는 민주당'이었다. 후보의 비전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선거 슬로건인 바, '이기는 민주당'이 그가 국민과 당 구성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미래비전인 셈이었다.

"비전은 조직이 나아가야 할 장기적인 목표와 바람직한 미래상(象)이다. 그 조직의 장래는 경영인이 비전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서 조직에 대한 미래 청사진이 있는지 여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p123)

저자에 따르면 비전이란 리더가 보여주는 바람직한 미래상이다. 그렇다면 비전에는 필연적으로 무엇이 바람직한지, 즉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기는 민주당'이라는 슬로건 안에서는 리더가 추구하려는 가치를 유추할 수 없다. '이긴다'는 것은 민주당이 어떠한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결과일 따름이다.

또렷한 상(象)이 그려지지 않기는 출마선언문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표의 당 대표 출마선언문을 보면 이 대표가 그리는 민주당의 비전,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을 쉽게 종잡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시대적 과제와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민주당을 바꾸고, 정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겠다", "국민이 '그만 됐다' 할 때까지 '민주당'만 빼고 모든 것을 바꾸겠다"며 '바꾸겠다'는 것을 누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변화 방안으로 당원 지위 강화, 계파 정치를 배격한 통합 정치 등을 언급했다.

당심과 민심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하는데, '국민 눈높이에 맞추겠다'면서 '당원 지위 강화'를 하겠다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또 당원 지위 강화는 필연적으로 계파 간 갈등을 부를 것임이 분명한데 어떻게 '통합 정치'를 하겠다는 건지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이재명이라는 리더가 보여주고 싶은 민주당의 미래상이 무엇인지,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알쏭달쏭하기만 한 것이다. 이렇게 비전이 모호한데 '이기는 민주당'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연합뉴스

'제2의 박지현' 사태는 없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당내서 벌어지는 혁신 논쟁 또한 예견된 일이라 할 수 있다. 리더가 보여주는 비전이 모호하니, 무엇을 어떻게 바꾸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15일 이 대표는 새 혁신위원장으로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임명했다. 혁신 작업의 첫 난관인 인선을 마무리했으니, 당내에선 혁신 노선을 둘러싼 논쟁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것이 혁신의 길일까. 친명계가 주장하는 대의원제 폐지일까. 비명계가 주장하는 팬덤과의 결별일까. 아니면 제3의 길이 있을까.

이 대표는 혁신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김 교수와 새 혁신 기구에 맡기겠다고 선언했다. "이름부터 역할까지 모든 것을 맡기겠다"며 "혁신 기구의 개혁안을 전폭 수용하겠다"고 했다.

당원 투표를 통해 선출된 당 대표가 자신의 고유 권한을 누군가에게 이양한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 있다. 자신의 리더십 위기를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이 이 대표에게는 기회일 수 있다. 리더십을 재평가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유권을 위해서 보고 시에 보고자에게는 의사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권한(임파워먼트)이 주어져야 한다. 보고는 커뮤니케이션의 구체적인 예로 조직의 비전 달성 방법에 대한 전략적 설명과 조직 구성원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실천을 가능케 해야 한다."(p277)

보고자에게 권한을 부여했다는 점에 비춰 볼 때, 이 대표는 일단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공언한 대로 쇄신안을 전폭 수용하는 모습까지 보인다면, 이 대표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도는 급상승할 것이다. 위기가 기회로 전환되는 셈이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다. 이 대표는 이미 한 번 실패의 경험이 있다.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이 대표는 당 쇄신을 위해 청년 정치인 박지현을 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 추천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이 성 비위 의원에 대한 징계 등 급진적 행보를 보이자 이 대표는 사실상 지지를 철회했고, '박지현표 쇄신'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제2의 박지현 사태'는 없어야 한다. 그것만이 위기에 빠진 당도 살리고 이 대표 자신도 살리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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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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