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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을 지금처럼 뽑으면 '정해진 미래'는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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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을 지금처럼 뽑으면 '정해진 미래'는 뻔하다

[박해성의 여의대교] 선거제도 개혁 없으면 '답정너 양당구도'

얼마나 관심 있게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여의도는 19년 만에 열린 전원위원회로 제법 떠들썩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에 관한 것으로, 국회의장의 제안에 따라 전체 국회의원이 나흘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였거든요.

정치가 돌아가는 현장을 지키는 이들이 언론사에서 국회로 나와 있는 정치부 기자들입니다. 국회 공보실 등록을 기준으로 하면 115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들이 얼마나 정치의 실상을 제대로 전달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출입기자의 숫자만 보면 우리 국회가 엄밀하게 감시당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가 있었습니다. 요즘 논의되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휴대전화 웹 조사입니다.

몇 가지 결과를 살펴볼까요? 먼저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96%로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정치 양극화 해소(68%, 복수 응답)'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습니다.

지역구 관련 현행 소선거구제 찬성은 30%, 중·대선거구제 변경 의견은 61%였습니다. 선거구를 어떻게 정할지는 선거제도 개편안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의석수 관련입니다. 의원 정수를 유지하는 선에서 비례대표 비율을 확대하자는 의견은 55%, 정수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모두 늘려야 한다는 의견은 45%로 조사됐습니다. 국회의원 증원에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로 볼 때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입니다.

일반 국민은 선거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지난 3월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 결과를 보겠습니다. 응답자의 57%가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는 데 찬성했습니다. 현재가 적당하다는 응답은 30%였습니다. 52%가 현행 소선거구제를 선호한다고 밝혔고, 중대선거구제를 찬성하는 비율은 32%에 그쳤습니다.

국회 출입기자들과 일반 국민 의견은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기자들이 가진 관심과 정보의 크기 때문이겠죠. 전체 대상자의 53%인 609명이 이번 조사에 참여했을 만큼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전문적인 의견을 구하고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며 다양한 관점으로 사안을 보게 됩니다. 우리 선거제도의 장단점, 정치행태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한 구체적인 인식이 개편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들도 대부분 선거구제 개편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꾸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우리는 하나의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한 명의 당선자를 배출하는 현재의 소선거구제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소선거구제는 유권자가 이해하기 쉽고 간편한 제도이긴 하지만 분명한 단점이 있습니다. 대표성과 비례성 문제입니다.

모리스 뒤베르제(Maurice Duverger)라는 프랑스의 정치학자를 소개합니다. 그는 소선거구제·단순다수대표제는 양당제를, 중대선거구제·비례대표제·결선투표제는 다당제를 지향한다는 입론을 제시했습니다. '뒤베르제의 법칙(Duverger’s law)'이라고 합니다.

​소선거구제가 양당 체제를 낳는 메커니즘은 두 종류로 구분했는데, 기계적인 기능(mechanical effect)과 심리적인 기능(psychological effect) 입니다.

소선거구제에서는 제3당이 존재감을 찾기 어렵습니다. 제3당의 의석수가 항상 득표율에 비해 적기 때문이죠. 제1당은 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가져갑니다. 뒤베르제의 법칙에서 말하는 '기계적인 기능'이라는 기제입니다.

지난 총선 지역구 선거 결과를 살펴봅시다. 지역구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50%, 미래통합당 41%, 정의당 2%입니다. 득표율에 비례한 의석수를 가정해보면 더불어민주당 127석, 미래통합당 104석, 정의당은 5석이 됩니다.

실제로는 더불어민주당이 163석, 미래통합당은 84석을 차지했습니다. 제3당인 정의당은 단 한 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습니다. 정의당은 2%의 득표율로 0.4%의 의석 점유율밖에 얻지 못한 것입니다. 기계적인 기능이라는 메커니즘, 이해 가시죠?

심리적인 기능은 '전략적 투표행동'입니다. 흔히 사표(死票) 방지 심리라고 합니다. 제3당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표가 버려지는 걸 막고자 당선 가능성이 있는 제1당이나 2당의 후보자에게 투표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게 다시 양당 체제를 공고히 하는 기제가 되는 것입니다.

양당 체제는 나쁜 걸까요? 우리의 정치 현실을 봅시다. 강성 팬덤과 극단적인 이념 정치, 양극화와 무한 정쟁입니다. 정치 불신은 날로 커지고, 국민은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하는 선거에 내몰립니다.

미국은 대통령제, 영국은 입헌군주제로 서로 다른 권력 구조를 가진 나라지만,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로 우리나라와 같습니다. 이들 나라도 양당제가 공고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정치가 극심한 갈등과 진영대결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소선거구제의 문제가 오랜 기간 제기돼 왔지만, 개편되지 못하는 현실적인 이유는 기득권 지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룰을 정하는 국회의 대다수 의원이 각자의 소선거구에서 다시 출마해야 당선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제3당에 자리를 내어줄 마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변화가 필요합니다. 조금 어려운 주제입니다만, 선거구제 개편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민이 감시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뽑은 대표자의 행동이나 정치 시스템을 관심 있게 들여다봐야 책임 있는 정치, 민주적 거버넌스를 위한 조건을 잘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진보적 견해와 사회 정의에 대한 헌신으로 잘 알려진, 미국 대법관을 지낸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D. Brandeis)의 말로 글을 맺겠습니다. 싫다고 눈을 감아버리거나 욕만 하고 있으면 병폐는 없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햇빛이 최고의 살균제이다(Sunlight is said to be the best of disinfectants)."

▲ 지난 12일 국회 전원위원회가 열렸다. 미래의 유권자들인 초등학생들이 방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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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티브릿지 대표는 여론조사 전문가이자 정치·선거, 빅데이터, 공공정책 분야의 컨설턴트입니다. 2019년부터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2년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지역산업·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아 국가적 과제 해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직업인으로서, 비판적 시민으로서의 감수성과 현실을 직시하는 균형감각을 신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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