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순 씨는 디자인 일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었다. 장민순 씨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꿈꾸었다. 방에 최종 꿈을 적어 붙여둘 만큼 디자인을 사랑했다. 언니 장향미 씨가 만난 동생의 동료들은 모두 장민순 씨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디자인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열정적인 장민순 씨의 모습이 그려진다.
"디자인 일을 되게 좋아했어요. 자신이 디자인 전공을 한 사람은 아니니까 기본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본인 스스로 계속 배우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졸업하고 학원 다니면서 학원에서 웹 디자인을 배운 거예요. 그래서 회사 들어가고 나서도 전시회나 디자인 관련된 강연도 다니고. 계속 공부하고 그런 걸 좋아했어요."
장민순 씨는 가볍게 드라이브나 당일치기 나들이를 즐기고 명절 연휴가 길게 있을 때는 몇 박 며칠로 가족과 여행을 다녔다. 2017년 9월, 여러 차례 반려되다가 어렵게 얻게 된 한 달 휴직 중 언니 향미 씨와 함께 호텔로 여행을 갔다.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디자인해서 가보고 싶었던 호텔이었다.
"동생이 엄청 좋아했어요. 출국할 것도 아닌데 출국하는 것처럼 캐리어도 끌고 공항버스도 탔어요. 동생이 너무 신나하는 거예요. 근데 제가 거기서 호텔 조식을 안 먹었어요. 조식은 따로 돈을 내야 하는데 동생이랑 저랑 많이 먹는 스타일도 아닌데 뷔페에 몇 만 원씩 내고 먹느니 차라리 그냥 그 돈 가지고 맛집 가서 따로 먹자고 했죠. 그게 너무 후회되는 거예요. 저는 다시 여기에 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다시는 못 가죠."
디자인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으로 가족의 퇴사 권유에도 일을 그만두지 못했던 장민순 씨. 향미 씨는 동생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기대했지만, 추억의 상상으로만 남겨두게 되었다.
법을 지키지 않는 회사와 처벌하지 않는 사법기관
과로를 입증하기 위한 출퇴근 기록, 업무기록 등 자료는 회사에 있었다. 회사가 장민순 씨의 과로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들을 감추려 했기 때문에 대책위는 증거보전절차를 통해 회사 안에 있는 자료를 확보하려 했다.
"회사가 반박을 했지만 (증거보전) 판결은 저희가 이겼어요. 제가 요구한 증거를 달라고 했는데 회사가 미루다가 마지막 기한이 돼서야, '출퇴근 기록은 없다. 우리는 그런 걸 기록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생 PC가 켜져 있는 때 돌아가는 로그를 줬는데 파일이 아니라 종이로 출력해서 966장을 줬어요. 피해를 입증해야 되는데 회사는 엉터리 자료나 주고. 결국엔 어떻게 증거를 찾았냐면 동생이 집에서도 계속 일을 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동생 노트북에 회사 업무 기록이 남아 있었어요. 회사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셈이죠. 집에서도 계속 일 시켜야 하니까."
향미 씨는 에스티유니타스 노동자 30여 명을 만나 인터뷰하며 장민순 씨가 어떤 일을 했는지 등 증거들을 모았다. 대책위는 향미 씨가 시민사회단체에 상담을 받으면서 장민순 씨로부터 받았던 3년 치 교통카드 내역을 분석했다. 교통카드 내역은 성실했던 장민순 씨의 출퇴근 시간을 파악하고 장시간 노동했던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핸드폰 메신저에 남아있던 친구와의 대화에서 많은 업무량과 직장 내 괴롭힘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은 증거자료를 가지고 대책위는 고용노동부에 회사의 연장근로시간 위반 등을 고발했다.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이하 강남지청)은 장민순 씨가 세상을 떠난 지 3개월 뒤에야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다. 강남지청은 자료 미제공 등 에스티유니타스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압수수색을 하기도 했다. 연장근로 제한 위반, 최저임금법 위반, 임금 체불 등 7개 위반 사항이 적발되었는데 2016년 근로감독 결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강남지청은 특별근로감독조사 결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회사에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범죄 사실은 인정되지만, 근로조건 개선과 유가족의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 등을 참작해 기소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회사는 어떠한 법적 처벌도 받지 않았다.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회사의 잘못
"산재 인정을 받기 전에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어요. 근데 너무 황당했던 건 제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 대표가 제 앞을 지나갔거든요. 근데 모른 척하고 그냥 쓱,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쓱 지나갔어요."
장민순 씨의 죽음이 알려지고 강남지청의 특별근로감독과 압수수색이 이뤄진 후 여론의 비판이 이어지자 회사는 마지못해 사과에 나섰다. 2018년 7월 12일 회사는 유족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노동환경 개선과 괴롭힘을 했던 상사에 대한 "응분의 조치"와 산재신청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회사는 그 상사에 대한 징계를 했다고 하지만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 알 수 없는 형식적 조치일 뿐이었다.
회사는 외부 법무법인과 진상조사단을 꾸려 자체적으로 조사했다며 장민순 씨의 과로를 부정했다. 회사의 주장은 장민순 씨의 죽음 이전 3개월 동안 노동시간의 평균이 과로로 인정받는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과로로 인한 업무상 질병(뇌혈관질병 또는 심장질병)은 발병 전 12주간 노동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된다.
회사의 주장처럼 장민순 씨의 2017년 10~12월 평균 노동시간은 평균 60시간을 초과하지 않았다. 2017년 11월에 한 주마다 약 10시간 연장근로를 했고 12월에는 탈진해서 매일 지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점은 11월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연장근로와 야근이 있었다는 것이다. 3개월 평균으로 계산했을 때 압축 노동이 드러나지 않는 평균의 허점을 회사는 이용했다. 그러나 향미 씨와 대책위가 모은 자료는 압축 노동과 과도한 업무량, 직장 내 괴롭힘 등 과로 사실을 밝혀내 회사의 주장을 무력화했다.
"질판위 심사에서 끝날 때쯤 '하고 싶은 말 있으시면 해보세요'라고 했는데 사실 준비해간 말이 있었어요. 그 말을 하려는 순간 그냥 너무 서러운 거예요. 산재 인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제 동생이 살아오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산재 신청하는 유가족들은 내 가족이 개인적으로 나약하거나 문제가 있어서 죽은 게 아니고 회사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거라는 것을 인정받는 명예 회복이 제일 큰 이유거든요. 질판위에서 불승인할 수도 있었겠죠. 그랬다면 저는 끝까지 갔을 거예요. 그럴 생각이었어요."
장민순 씨의 사망에 대한 산재 인정은 그의 명예 회복을 위해 중요했다. 향미 씨와 대책위는 과로하게 한 회사에 죽음의 책임이 있음을 사회적으로 분명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장민순 씨가 입사 전 치료를 받았던 우울증이 과로와 가중된 직장 스트레스 등으로 악화 되는 등 업무와 사망에 인과관계가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2019년 10월 16일 근로복지공단은 장민순 씨의 업무상 재해에 의한 사망을 인정했다.
사회적 타살 과로자살
한국 사회에서 학생은 '아파도 학교에서 아프고 죽어도 학교에서 죽어라'라는 말을 듣는 것처럼 노동자에게는 '죽어도 회사에서 죽어라'는 것이 작동하는 것 같다. 아파도 쉴 수 없는 사회, 과로를 버티지 못하면 나약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사회에서 과로사‧과로자살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한편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과 자살에 대해 개인이 버티지 못한 잘못이라 취급하는 사회에서 우울증과 자살의 위험 앞에 있는 사람들이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
<2022 자살예방백서>에서 2020년 경찰청 변사자통계에 따른 동기별 자살 현황은 기타, 미상을 제외하면, 정신적·정신과적 문제가 38.4%으로 가장 많고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는 3.9%로 작은 수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신적 문제나 가정 문제 등이 직장‧업무상 문제로 발생한 것인지는 모르는 것이다.
<2021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보건복지부)>에 따르면, 52.4%의 자살사망자가 죽음 전 직업 스트레스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로자살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다른 통계들을 통해 과로자살한 노동자의 수가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주 69시간 노동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던지면서 노동시간이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 노동시간에 대한 사회적 환기는 자연스럽게 과로사‧과로자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간이 흔히 주 단위로 말해지고 있지만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준은 하루 8시간이다.
여러 노동 현장에서 만연한 포괄임금계약으로 장시간 노동이 부추겨지고 있는 가운데 하루 노동시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강화된다면 과로로 인한 질병과 죽음을 예방할 수 있다. 노동시간은 일상 영위와 건강에 연결된 권리의 문제라는 점에서 잘 지켜져야 한다. 기업의 생산과 성과가 아닌 노동자의 일상이나 건강을 중심으로 노동시간이 논의된다면 우리는 과로하며 죽어가는 많은 노동자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 현행법은 과로에 대한 개념이나 판단요건을 정하고 있지 않다. 과로사‧과로자살은 장시간 노동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심리적 부담을 갖게 되는 업무량, 직장 내 괴롭힘, 높은 노동 강도 등 신체적인 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과로도 있다. 이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도 명시되어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 3] <개정 2019. 7. 2.>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제34조제3항 관련)
1.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가. 다음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원인으로 뇌실질내출혈(腦實質內出血), 지주막하출혈(蜘蛛膜下出血), 뇌경색, 심근경색증, 해리성 대동맥자루(대동맥 혈관벽의 중막이 내층과 외층으로 찢어져 혹을 형성하는 질병)가 발병한 경우에는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다만, 자연발생적으로 악화되어 발병한 경우에는 업무상 질병으로 보지 않는다.
1) 업무와 관련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정도의 긴장ᆞ‧흥분‧ᆞ공포‧놀람 등과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로 뚜렷한 생리적 변화가 생긴 경우
2) 업무의 양ᆞ‧시간ᆞ‧강도ᆞ‧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 등으로 발병 전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이 증가하여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ᆞ정신적인 과로를 유발한 경우
3) 업무의 양ᆞ‧시간ᆞ‧강도‧ᆞ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 등에 따른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로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ᆞ정신적인 부담을 유발한 경우
동생의 유지를 이어가겠다는 언니
"많이 바뀌었죠. 목소리를 내야 할 때는 내게 됐죠. 이게 너무 부당하다는 것을 제가 겪으니까 알겠더라고요. 너무 부당해요. 산재를 내가 입증해야 된다는 것도 말도 안 되고. 그런데 이것을 얘기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아직도 '네 가족이 그렇게 될 때까지 넌 뭐 했냐'는 이런 댓글 쓰는 사람들이 많고요."
동생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향미 씨는 동생의 동료들을 만나 인터뷰했고 에스티유니타스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내성적이고 앞에 나서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여러 기자회견과 토론회 등 여러 자리에서 발언도 했다.
향미 씨는 동생의 문제가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과로 자살의 상황에 놓일 수 있기에, 누구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과로 자살 때문에 잃을 수 있기에 이 문제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 과로사‧과로 자살 유가족 모임(이하 유가족모임)과 노동 안전 관련 단체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21년 3월 향미 씨도 함께하고 있는 유가족모임은 책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를 출판했다. 가까운 이를 과로로 잃게 된 이들에게 산재 인정 등 실질적인 도움과 위로를 건네고 있다. 책은 과로로 사망한 고인과 유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있어 앞에 나서서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고 회사로부터 증거를 구하기 힘들어 산업재해보상 신청 자체가 적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숨겨져 있는 죽음을 생각할 때다.
"제 동생이 아닌 누구라도 그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소중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더 이상 없도록, 저처럼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고통 속에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잘못된 시스템의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장민순 씨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던 때 언니 향미 씨의 발언이다. 기업의 성장은 갈리고 과로하는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비참한 현실을. 과로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로 함께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되새긴다. 더 이상 과로로 쓰러져가는 사람들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마음, 성장이 아닌 생명의 관점으로 노동환경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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