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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탈시설이 가능한가? 독일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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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탈시설이 가능한가? 독일에서 길을 찾다

[장애인 운동, 독일에 묻다 ③] 탈시설 핵심은 '자기결정권'이 있는 주거

[장애인 운동, 독일에 묻다] 지난 연재 

☞ ① 열차·트램 운행 막은 독일 '전장연', 그들이 독일을 바꿨다

☞ ② 한국의 1년 장애인 예산, 독일 1개 도시에도 못 미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장애를 가진 독일인 중 다수가 집단 '시설'에 거주했다. 70년대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당시 독일 사회의 많은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장애를 가진 청년들도 '자신이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만드는' 삶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자기결정권이 있는 삶 운동(Selbstbestimmt-Leben-Bewegung)'에 참여한 청년 장애인들에게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주거'는 반드시 마주하고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그들에게 대형 주거 시설에서의 삶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독일의 주요 복지 단체 중 하나인 디아코니(Diakonie)가 80년대 장애인 주거 시설의 평균적 모습을 조사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이들 시설에서는 16명 이상이 함께 생활했으며 3명 이상이 한 방을 사용했다. 시설에선 20시 이후 외부 출입을 금지했으며 거주자는 20시에서 21시 사이 취침에 들어야만 했다. 80년대의 장애인 주거 시설이 60년대나 70년대에 비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생활공간은 아니었다.

1970년대부터 장애인 당사자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인물들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부모나 시설을 떠나 새로운 주거 공간을 찾아 떠났던 경험이 하나의 도전이자 개척의 사례로 등장하곤 한다. 그들에겐 자신을 '환영하는' 주거지를 찾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휠체어 같은 이동 보조수단을 사용하는 장애인에게는 이동에 물리적 장애가 없는 배리어프리 거주 공간을 찾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특히 생활과 이동에 있어 타인의 도움을 받고 살았던 중증장애인이 가족이나 시설을 벗어나 생활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주거 공간에서도 과거와 같은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했다.

▲지난 2월 2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오세훈 서울시장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의 면담. 이날 오 시장 등 서울시 측은 전장연 등 진보적 장애인 단체가 제시하는 탈시설 요구가 "장애인들의 적응 문제나 국가재정적인 문제로도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장연 측은 "당장 내일부터 모든 장애인들을 (시설 밖으로) 내보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2009년 오세훈 시장의 재임당시부터 '20년간 준비하자'라고 말해왔다"고 답했다. 탈시설에 대한 기본적인 논의조차 부족한 상태인 한국에서 탈시설의 길은 난망한 상태다. 글의 필자 김인건 자유기고가는 독일 사회가 먼저 개척하고 있는 '탈시설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연합뉴스

독일 장애인들, '탈시설'의 길을 개척하다

우베 프레베르트(Uwe Frevert)는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시설 외부 장애인을 위한 지원 단체를 만들었다. '자기결정권이 있는 삶 운동'에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프레베르트는 1979년 다른 장애인 동료들과 함께 독일 최초의 방문 요양 및 활동 지원 단체인 '통합 후원 협회(Die Vereinigung Integrationsförderung e.V., VIF)'를 창립했다.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던 프레베르트는 활동 보조기구와 타인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고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의 장애로 인해 그를 포함한 3명의 형제는 어머니와 함께 뮌헨에 있는 페니히파라데(Pfennigparde) 재단의 장애인 재활 센터에서 생활했다. 페니히파라데 재단의 재활 센터는 당시로서는 장애인이 가족과 함께 거주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 아파트와 병원 및 요양 설비를 갖춘 발전된 형태의 시설이었다.

하지만 프레베르트가 성인이 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다른 가족 및 어머니가 시설을 떠나고 혼자 남게 된 프레베르트는 가족이 함께 살던 기존 아파트에서 장애인 활동 지원을 하던 비장애인 친구와 함께 주거공동체를 구성하려 계획했다. 하지만 재단은 입소자들에게 '가족이 아닌 비장애인'과 시설 안에서 주거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시설은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이유였다.

결국 그를 포함해 가족 외 비장애인과 함께 거주하기를 원했던 시설 내 다른 장애인 청년들이 시설 외부로 주거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시설 외부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요양 및 활동 보조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통합 후원 협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자기결정권이 있는 삶 운동'에 참여했던 장애인 당사자들은 여러 도시에서 장애인 방문 요양 및 활동 지원 단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자립적인 삶을 위한 정보 제공 온라인 플랫폼인 '파밀리엔라트게버(Familienratgeber)'의 2022년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의 40% 정도가 24시간 요양 및 활동 지원을 하는 시설이 아닌, 개별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며 방문 요양 및 활동 지원을 받고 있다.

그 중 주거공동체(Wohngemeinschaft)는 성인이 된 장애인이 부모의 집이나 시설이 아닌 곳에서 독립적인 삶을 누리면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을 누린다는 점에서 늘어나고 있는 주거 형태다.

가족이 아닌 2명 이상의 인원이 주방 및 거실, 욕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한 집에 거주하는 주거공동체는 특히 대학생에게 인기 있는 주거 형태다. <슈피겔>의 보도에 따르면 주거공동체에 사는 대학생 비율은 2018년 기준 30.8%로 부모와 같이 사는 경우(25.2%)나 기숙사에 사는 경우(13.9%)보다 높았다.

주거공동체는 가족과의 주거 형태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집세 부담을 나누고 공동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청년들에게 인기 있는 주거 형태다. 주거 공동체의 종류도 다양해서 대학생 주거 공동체뿐 아니라, 직장인, 노인, 다양한 세대로 이루어진 주거 공동체 등 여러 형태가 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통합 주거공동체인 'WG neuhausen'의 모습. ⓒ게마인삼 레벤 레아넨(Gemeinsam Leben Lernen e.V.) 홈페이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통합 주거공동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거주하는 통합 주거공동체(Inklusive WG)도 다른 주거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공유한다. 하지만 통합 주거공동체는 다른 형태의 주거공동체보다 더 많은 공동체 경험을 제공한다.

통합 주거공동체의 가장 흔한 형태는 일상생활에서 돌봄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과 도움을 줄 수 있는 비장애인 대학생이 함께 거주하는 것이다. 1989년에 만들어진 뮌헨 노이하우젠의 주거공동체가 그랬다. 노이하우젠 주거공동체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통합 주거공동체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이곳을 처음 만들었던 루디 작(Rudi Sack)은 바이에른 방송(Bayerischer Rundfunk)과의 인터뷰 당시 ‘어울리던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며 통합 주거공동체를 만들었던 단순한 동기를 설명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그는 독일 개신교 계열의 '게마인삼 레벤 레아넨(Gemeinsam Leben Lernen e.V. =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협회에서 활동하며 장애인 친구들을 사귀었다.

현재 노이하우젠의 주거공동체에는 5명의 발달장애인과 4명의 비장애인 대학생이 함께 살고 있다. 2020년부터 이곳에 살고 있는 페터는 주거공동체에 사는 것이 시설에 사는 것에 비해 ‘스스로 결정하고 참여할 수 있는 일이 많아 좋다’고 이야기한다.

주거공동체의 중요한 원칙은 자유롭게 공동체의 활동을 함께 결정하고, 업무를 분담하는 것이다. 구성원은 업무를 분담해 장보기, 요리, 청소 등의 일을 해결한다. 이들은 함께 저녁 메뉴를 결정하고 함께 계획을 짜서 외출하기도 한다.

페터는 발달 장애 외에도 신체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식사나 양치 같은 일상적 활동에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주거공동체의 비장애인 대학생들은 집안일뿐만 아니라 장애인 거주자를 돕는 일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통합 주거공동체에 거주하는 비장애인의 경우 집세를 면제 또는 감면받는 경우가 많다.

이 비용은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개인예산(Persönliches Budget)에서 나온다. 2008년부터 시행된 개인예산제도는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예산 내에서 활동 도움 등 원하는 서비스에 대해 제공자 혹은 제공처에 직접 비용을 지불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통합 주거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 본:진(Wohn:Sinn = 주거:의미)의 자료에 따르면 독일엔 대략 50~70개 정도의 통합 주거공동체가 있을 것으로 파악된다. 통합 주거공동체는 노이하우젠의 경우처럼 사회복지 단체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지만, 개인들이 모여서 만드는 경우도 있다.

통합 주거공동체 외에도 장애인만으로 구성된 주거공동체도 존재한다. 이 역시 사회복지 단체에서 운영되는 경우도 있고 장애인의 부모나 장애인 당사자 등 개인이 스스로 조직해 만든 경우도 있다. 장애인만 거주하는 주거 공동체의 경우 사회교육 전문가 같은 관리자가 상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통합 주거공동체 또한 전문 인력의 도움을 받지만 이들이 상주하지는 않는다.

▲ 독일 개신교 계열의 '게마인삼 레벤 레아넨(Gemeinsam Leben Lernen e.V. =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협회는 협회 이름에 담긴 '함께'의 의미에 대해 "장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지위의 차이 없이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게마인삼 레벤 레아넨(Gemeinsam Leben Lernen e.V.) 홈페이지

아직은 미완인 독일 탈시설 … 핵심은 '자기결정권'

독립적인 주거 형태에서 요양이나 활동 지원을 받으며 생활하는 장애인의 숫자는 과거보다 늘어났지만, 이들 대부분은 신체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성인 발달 장애인의 경우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살거나 시설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통합 주거공동체나 장애인 주거공동체에서 생활하는 발달 장애인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숫자가 많지는 않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본:진의 자료에 따르면 독일의 성인 발달 장애인 8명 중 4명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으며, 3명은 시설에서 살고 있다. 겨우 8명 중 1명만이 주거공동체를 비롯한 독립적인 생활공간에 살면서 요양 및 활동 보조 지원을 받고 있다.

높은 수준의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 특히 발달 장애인의 경우는 여전히 시설 외 다른 곳에서 거주할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장애인 주거 시설도 그사이 많은 변화를 겪어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거주 인원이 많은 시설의 경우도 주방이나 거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생활하는 소규모 그룹을 만들어, 거주자들로 하여금 자율적이면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거주자들은 주거 그룹 내에서 활동과 업무를 함께 결정하고 참여한다. 또한 거주자는 개인마다 방을 따로 쓰며 자신의 방은 자유롭게 꾸밀 수 있다.

지난 3월 독일인권연구원은 독일의 장애인 통합 상황을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독일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중요한 생활 영역에서 비장애인과 같은 선택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에게는 자기 결정권을 가진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주거 영역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은 여전히 주거 시장에서 ‘원하는 주거 공간을 선택하는’ 일에 큰 제약을 받고 있다. 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독일의 주택 50가구 중 1개만이 장애인이 이동의 제약을 받지 않는 배리어프리 주거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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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건

한국과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독일에서 10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외부인의 시선으로 독일 사회를 관찰하고 있다. 독일 사회의 소식을 한국에 전하거나 텍스트를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무엇이 어떻게 전달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지속 가능한 삶’이란 키워드로 독일에 사는 한국 녹색당원들과 만든 <움벨트>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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