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김광동 신임 위원장이 '대구 10월 항쟁'을 두고도 "무장폭동이자 반란사건"으로 평가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지난 2010년 1기 진실화해위가 10월 항쟁 희생자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추모사업 진행을 권고한 것과는 상반되는 인식이다. 진실화해위는 현재 대구 10월항쟁 관련, 유해발굴 사업과 조사도 진행하고 있어 향후 진실화해위 활동에 김 위원장의 역사 인식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레시안>의 취재를 종합하면 김 위원장은 2013년 <시대정신>에 기고한 '한국현대사 연구의 방향과 과제'에서 "1946년 대구 10․1사건이나 1948년 제주 4․3사건. 혹은 여수와 순천지역의 제14연대 반란 등은 모두 공산 전체주의로 갈 것이냐, 자유민주체제로 갈 것이냐를 다투는 무장폭동이자 반란사건이었다"라고 규정했다.
김 위원장은 "미숙한 정부에 의한 과잉진압이나 무고한 희생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적되고 바로 잡혀져야 마땅한 것"이라면서도 "공산전체주의를 지향했던 세력이 자유민주적 대한민국에 대항했던 사실이 흐려지거나 본질이 호도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민간인에게 자행된 국가폭력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대구 10월항쟁 등이 '무장폭동이자 반란사건'이라는 인식을 명확히 드러낸 것이다.
김 위원장의 인식은 2010년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대구10월사건 관련 민간인 희생 사건'에 나온 결과와는 상반된다.
1기 진실화해위는 당시 진실규명 보고서에서 1946년 대구 10월 항쟁을 "해방 직후 미군정이 친일 관리를 고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을 강압적으로 시행하는 것 등에 불만을 가진 민간인들과 일부 좌익세력이 경찰과 행정당국에 맞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대구 10월 항쟁이 단순한 '공산전체주의 지향 세력'의 시위가 아니라 "식량난이 심각한 상태에서 미군정이 식량공출정책을 가혹하게 했던 것" 등이 원인이었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경찰청과거사위 또한 2006년 보고서를 통해 대구 10월 항쟁의 원인을 "근원적으로는 미군정의 식량정책의 실패, 좌익의 세 확장 운동과 노조총파업 집회, 경찰의 발포 등이 도화선"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진실화해위는 대구 10월 항쟁 당시 군경이 적법한 절차 없이 민간인을 희생시켰음을 확인하고, 민간인 희생자 155명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아울러 10월 항쟁 당시 민간인 희생 사건의 일차적 책임은 "민간인을 법적 절차 없이 임의로 살해한 현지의 경찰에게 있다"라고 명시했다. 또한 국가와 지자체에게 유가족 추모사업 지원, 지역공동체가 진실을 기억할 수 있게하는 역사기록 수정 및 등재 등을 해야한다는 권고했다.
그러나 1기 진실화해위의 결정과 달리 김 위원장의 대구 10월 항쟁에 대한 인식은 불과 6개월 전인 지난 6월, 기독교 매체 <월드뷰>와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당시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이던 김 위원장은 <월드뷰>와의 인터뷰에서 "공산주의자들은 그 전에 수많은 대한민국 건국 저지 투쟁"을 벌였다면서 "10월 1일 대구사건, 남로당 2.7투쟁,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 등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이러한 움직임은 "전면전 이전에 공산주의 체제로 떨어뜨리기 위한 모든 노력"이라고 규정하며 "본질적으로 김일성이 대한민국을 공산화 시키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고도 주장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제주4.3사건을 언급하며 "진압하는 과정이 과잉되었고 또 무차별적인 측면이 있어서 다수의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그것까지 우리가 보듬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보상까지 진행하자는 것"이라면서도 "사건의 본질과 성격은 공산주의자들의 공산화 투쟁적 성격이 분명"하다고 명시했다. 즉 제주4.3항쟁, 대구10월항쟁 등이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이라는 인식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문제는 김 위원장이 2년간 이끌 2기 진실화해위에서도 대구 10월항쟁과 관련된 조사는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진실화해위는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일대에서 '보도연맹/10월항쟁' 유해발굴 조달 계약을 진행 중이다. 해당 부지는 희생자 유해 발굴을 통해 진실규명 신청 사건의 '실체적 증거'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내년 1월 보조사업자가 선정되면 10월까지 유해발굴 사업이 완료된다.
또 진실화해위는 대구 10월 항쟁 희생자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조사를 진행중에 있다.
진실화해위는 1946년 10월부터 1949년 7월까지 대구지역 민간인들이 군경의 토벌 작전이나 좌익혐의자 색출과정에서 국군,대구 경찰 등에 의해 적법절차 없이 희생된 사건에 대해서도 조사 개시 결정을 내리고 조사를 이어 나가고 있다. 민간인 희생자 진실규명 등 활동을 이어나가야 하는 진실화해위 위원장이 대구 10월 항쟁은 '무장폭동이자 반란사건'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앞서 김 위원장은 제주4.3에 대해서 '공산주의 폭동'으로 표현하고, 광주5.18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도 '헬기사격 증거가 없다'는 식의 발언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진실화해위는 4.3 사건이나 5.18 사건하곤 아무 관계가 없는 위원회'라는 해명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대구 10월 항쟁은 진실화해위가 현재도 조사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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